가나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리퍼블릭 오브카나 가나 공화국입니다.
가나의 국기는 빨강, 노랑, 초록 세 가지 색상의 중앙에는 검은 별이 있는데요.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은 식민지 시대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빨강은 독립 투쟁에 필요해 노랑은 앞으로 잘 될 거라는 희망을 나타내는 황금을 초록은
농업이 잘 되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중앙에 있는 검은 별은 범아프리카 주의의 상징으로 아프리카 노예 문제 개선을 위해 힘썼던 마커스 가비가 만든 흑인 수송선의 이름 선에서 따왔는데요.
위치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으며 코티드부아르, 브리키나, 파소, 토고와 인접해 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 약 3천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요.
참고로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천만 명이죠.
1년 gdp는 2017년 기준 약 473억 달러로 이는 세계 83위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우즈베키스탄, 리투아니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가나 근처에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프랑스를 쓰지만 가난은 영어를 쓰는데요.
가나는 토그와 함께 독일 식민지에 속해 있었다가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에 영국과 프랑스가 양분하면서 가나는 영국, 토고는 프랑스에게 지배당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70% 정도의 국민이 기독교를 믿고 있고 내부에는 카톨릭과 개신교가 각자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다음으로 큰 세력으로는 이슬람교로 이슬람 신앙으로서는 온건한 수니파 세력이라고 합니다.
가난은 종교적 자유도로서는 어느 정도 안정화된 수준으로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편이라 종교 갈등이 대체적으로 없는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가나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8세기경부터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시기부터 이미 나이저 강을 중심으로 농업을 행하던 원시 부족 공동체가 모여 살면서 지역의 발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지중해 및 이집트와의 지속적인 교류 덕분으로 북부의 문화와 종교, 물산이 전파되면서 손인 쾌족이 가나 왕국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후 쇠망하는 가나 제국을 멸망시키고, 말리 지역을 중심으로 만리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말리 제국은 농업이 번창하고, 이슬람교를 믿었으며,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왕조들과도 활발하게 교육하면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말리 제국이 독재자의 끔찍한 통치로 인해 쇠퇴하자, 15, 16세기 서아프리카 지역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무슬림 왕국인 송가이 제국이 이 일대를 접수하게 됩니다.
송과의 제국은 이슬람 교세를 더욱 확대하고, 부패 척결을 비롯, 정치, 농협 분야의 개혁을 감행함으로써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왕위 계승 문제로 나라가 여러 소국들로 분열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유럽 열강의 침략이 가장 먼저 닿았던 곳이 바로 지금의 가나 지역입니다.
포르투갈은 대항해를 시작한 15세기 중엽 가나 땅에 도착해서 가나의 황금 원성을 착취해 갔습니다.
17세기부터는 포르투갈이 세방하고, 세계 해양 패권을 장악한 네덜란드가 가나 지역을 점령하고 본격적인 노예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영국, 프로이센, 독일에 이르는 여러 유럽 열광의 지배를 받으며 자원가, 인력 수탈을 당하다가 1957년 드디어 독립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가나가 독립한 해는 1957년으로, 튜니지와 모로코에 비해 1년 늦지만, 북아프리카 이슬람 동맹이 아닌 나라로서는 가장 먼저라고 합니다.
당시 독립운동을 주도하며 실질적인 가나의 독립을 이끌어낸 지도자 카메 응크루마는 1960년 가나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재임 기간 동안 무시무시한 독재 정치로 인해 가나의 정치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가난은 독립 이후 불안정한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고 1990년대가 될 때까지 수차례 쿠데타로 몸살을 앓다가 1992년 헌정 복귀가 완료되었습니다.
1992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가나의 정치는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으로, 대통령이 국가원수 및 행정부 수반입니다.
임기는 4년으로 보통 선거로 선출되며, 입법부는 단원제로, 4년 임기의 국회의원 230명으로 구성됩니다.
총선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며,
주요 정당은 중도 우파 성향의 npp 신애국당과 중도 좌파 성향의 ndc인 국립 민주의회가 팽팽한 여당, 야당의 자리를 놓고 의석수를 차지하는 형국입니다.
가나 공화국의 경제는 80년대 초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성장이 정체되었지만, 2천년대부터는 자유시장 경제 개혁과 imf의 지원을 거쳐서 경제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나 공화국 역시 여느 나라 못지않게 빈부 격차가 커서 상류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크지만,
그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덜한 편입니다.
상위 10%가 소득의 13%를 차지하고 있는 편으로, 극빈층은 인구의 3%, 실업률은 1.9%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나의 주요 산업은 가나 초콜릿은 아니지만, 카카오는 비중 있는 수출 작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카카오의 수출은 총 수출액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커피, 바나나 등이 수출됩니다.
최근 들어서는 캐슈넷이 주목받고 있어, 앞으로도 가나의 수출 장물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
가나는 아프리카 내륙국 중에서는 정치 체제가 안정된 편에 속하고, 부패 인식지수는 이탈리아보다도 높은 국가로, 현재는 gdp가 낮은 편이지만, 앞으로는 아프리카 내에서는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국가라고 합니다.
무나 가나는 축구를 상당히 잘하기로 유명합니다.
2005년부터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빅 클럽인 첼시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던 마이클 에시 선수가 가장 유명한 가나 출신 축구 선수입니다.
일반인들도 축구를 굉장히 사랑해서, 이곳 사람들은 돌맹이 4개로 골대를 만들어 놓고 아무 곳에서나 축구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가나의 피파 랭킹은 37위로, 코티드부아르에 이어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2위에 해당하는 높은 순위입니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8강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가나의 전통 음식으로는 졸로프와 반쿠가 있습니다.
졸로프는 가나식 볶음밥으로, 쌀과 토마토, 양파와 고추 등을 함께 볶아서 카레가루와 같은 향신료로 맛을 낸 쌀 요리입니다.
반코는 옥수수 가루와 카사바 가루를 발효해서 만들어 먹는 일종의 빵입니다.
간한 음식은 되게 생선이나 공유가 골고루 나오는 편인데요 상당히 자극적인 음식이 많은 편인데다 향이 강한 향신료를 즐겨 사용합니다.
2018년 한 연구센터에서 조사한 리서치 자료에 의하면, 가나공화국의 성인 인터넷 사용률은 약 39%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는 남 아프리카 공화국, 세네갈, 튀니지, 나이지리아에 이어 인터넷 이용률만 따지면 4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가격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휴대폰 보급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며, 아크라 같은 대도시에서는 lte를 사용한 정보 산업도 크게 성장 중에 있습니다.
흡연을 하지 않는 문화가 있어 흡연율이 매우 낮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대부분 이민자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는 교육률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해, 세계적으로 교육의 질은 46위를 달성할 정도로 높은 편입니다.
가나 국민들은 소득의 40%에 가까운 금액을 교육에 투자한다고 하는데, 나라는 매우 빈곤하지만 어떻게든 좋은 곳으로 유학을 많이 보내려는 열혈 학부모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거의 국가를 탈퇴하는 수준으로 유럽이나 미국 등으로 유학을 많이 간다고 하는데,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코피아난 역시 도망치듯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마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관광업은 가나의 주요 외화 소득원 중 하나입니다.
주요 관광 상품으로는 생태공원, 역사 유적, 관광, 스포츠 관광 등이 있습니다.
가나이 해변에는 14개의 큰 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는데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친절한 서비스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한국과의 직항 항공편은 아직까지 없어서 두바이를 경유해서 가야 하고, 아직 무비자 협정을 맺지 않아 가나를 여행하고자 할 때에는 관광청에서 관광비자를 꼭 발급받아야 합니다.
가나 출신의 잘 알려진 인물로는 샘 오취리를 이야기 안 할 수 없겠죠 1990년생으로 대한민국 정부 국비장학생에 선발돼서 서강대학교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게 됩니다.
언어 능력이 뛰어나서 자신의 부족어인 아카노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 그리고 한국어에 능통합니다.
까부는 성격으로 다소 무친 감이 있지만 외모는 상당히 잘생긴 편에 속하고 심지어는 몸짱이기도 합니다.
가나 공화국 부족 중에서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아칸조계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대학 교수, 아버지는 한국에서 자동차를 수입해 가나에서 판매하는 집안의 경제력은 좋은 편으로 짐작됩니다.
한국에서는 비정상회담 출연하며 인지도가 높아졌으며, 그 외에도 섬마을 쌤, 진짜 사나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국경없는 포차 등에 출연하며 한국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 출신으로 또 잘 알려진 인물로는 2018년 80세의 나이로 사망한 유엔의 7대 사무총장 코피아난을 꼽을 수 있는데요.
코피아나는 정치인, 외교관, 경제학자이며 유엔 사무총장 중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으며 2001년 가나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1983년 영국 식민지였던 골드코스트에서 유력한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금요일에 태어난 소년이라는 의미인 코피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식민지 상황을 몸소 느끼며 성장했지만 변화는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미국에서 학살을, 스위스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으며 세계보건기구에서 행정예산 담당관으로 유엔에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1990년 이라크에 억류된 외국인 석방을 위해 후세인과 협상을 해서 900여 명의 유엔 직원을 포함해 외국인 구류자의 협상을 성공시켜 인정을 받게 되는데요.
코피 하나는 노벨 평화상 수상 당시 유엔 개혁, 에이즈 확산 방지, 빈곤 퇴치, 아프리카 내전 등의 지역 분쟁 중재 등의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나공화국과 가나 초콜릿 사이의 관계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죠
1964년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가나 초콜릿은 1975년부터 한국의 롯데제과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는데요.
실제로 가나공화국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아프리카는 세계 최고 최대의 카카오 생산지이고 특히 가나는 세계 2위의 카카오 생산국으로 국가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 양질의 카카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초콜릿의 주 원료인 카카오 고염분 함량이 35% 이상 포함되어 있어야 진짜 초콜릿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현재 시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가나 초콜릿 제품의 성분을 보면 카카오 버터 대신 팜유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엄밀히 말하면 준 초콜릿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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