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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대부분의 민족들은 자신들만의 신을 갖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현대인들보다도 더욱 신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신은 자연 그 자체였으며 자연 현상의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며 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종교 행위를 하고
그것에 근거한 신화를 세워 나름의 체계로 세상을 바라보았죠.
통상적으로 현생 인류 spinspins arects부터 매장 풍습에서 비롯된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이 종교적 관점으로 발전했다고 여겨지는데 그로부터 수십만 년 후까지 인류가 자연과 세상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떠돌며 오늘 먹으면 언제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수렵 채집 생활에서 어느 날 누군가가 발견한 종자와 열매의 관계를 바탕으로 가이 혁명이라고 불릴 만한 농업 생산을 시작함으로써 농업에 적합한 지역에 정착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생활로 접어들면서 인구가 폭증의 문명이라는 것이 발달합니다.
그렇게 발달한 여러 문명 중에서도 수천 년이 지난 기원전 600년경에 그리스 밀레치스에 세상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던 탈레스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아쉽게도 탈레스는 세상에 근원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가 특별한 점은 첫째 기록에 남았다는 것과 둘째 그가 살던 시대에 다른 사람들이 해석한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세계와 그리스에 살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세상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했습니다.
모든 자연물은 각각 신이 있고 그 신의 행동에 따라 변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윌 듀런트의 철학 이학이라는 책을 보면 그때 그리스인들의 인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데 태양을 헬리오스 또는 아폴론 바다를 그 자체로 오케아노스 또는 포세이돈이라고 부르며 태양 바다 그 자체를 신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들의 변화는 신들의 변화인 것이지 당시에는 그럴 듯한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이라는 호기심 가득한 존재가 납득한하기에는 역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던 것일까요. 여기에서 탈레스는 어쩌면 철학과 과학사의 시작을 연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만물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 팔레스가 그 이전에 우주가 신들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고 움직인다는 것을 부정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인간 외적인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자연 현상을 해석하려 시도한 최초의 선구자입니다.
팔레스는 신화가 아닌 과학의 영역에서 사물을 이해하려 한 것입니다.
탈레스는 자연을 관찰하고 자신이 관찰한 정보를 바탕으로 세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 것인데 동물도 양수 속에 들어 있고 인간도 찌르면 피가 나오며 씨도 까보면 축적하고
땅도 파보면 물이 나오는 등 아마도 물기 없이 이루어진 것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이런 주장을 했음직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는 틀린 주장이지만 중요한 것은 주장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자신이 관찰한 바에서 얻은 경험적 근거로 가설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직접적인 사형 선고 원인 중 하나가 신을 믿지 않았다.
부정했다. 다른 신격을 수용했다.
신성 모독자인데 그럼에도 탈레스의 주장이 나와 이를 계승하는 학파까지 형성했다는 것은 tls 당시까지는 그리스 사회가 비교적 자유로운 주장이 교환 가능했던 사회였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자유로운 사유와 주장이 가능했던 사회라면 이러한 제대로 된 과학 철학이 그리스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짧으면 마케도니아 길면 로마가 점령해 그 맥이 끊길 때까지 수백 년을 발전하게 되는데
그 이후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과학과 철학은 다시금 아뭇길을 맞아 그리스 이전으로 후퇴하게 되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고대 그리스에서 끊어진 고리를 이어 발전하게 됩니다.
수백 년의 시기를 잃어버린 것이 경제 사상사를 주제로 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를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는 이런 태도가 다시 없기를 바라
오늘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1 탈레스는 기록된 최초로 이전 세계가 신의 의지에 해석했던 우주와 자연 현상들을 우주와 자연 내부에서 해석하려 한 그렇기 때문에 과학과 자연 철학의 시작으로 상징되며 경제학 또한 텔레스의 사유에서 그 학문적 형식을 빌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번외편
인류가 구석기 시대에 수렵 채집을 거쳐 신석기 시대의 농경사회로 들어오면서 수렵 체집 시기에 비해 안정적으로 막대한 양의 식량 생산이 가능해진 구석기 시대에는 자연에서 주어진 먹을 것들로만 생활을 했기에 썩는 식량을 비축할 수 없었고 제철이 아니면 먹지 못했으나 신석기 시대에 농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양질의 토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자를 늘려가며 동작할 수 있고
척박한 토지도 각종 관계 수리 시설을 만들어 어느 정도 농사 짓기에 적합한 땅으로 만들 수 있었기에 일정 부분 수확량의 예측과 잉여 생산분의 비축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잉여 생산분의 비축은 인구를 늘리고 계급을 분화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도시가 생기고 문명을 이루게 됩니다.
인구가 늘기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해질 경우 이웃 도시나 문명을 침략해 생산물로 약탈하거나 토지를 빼앗고 다른 부족들을 노예로 만들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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