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엘론 세계 최강의 군대를 이끌고 광활한 영토를 차지한 몽골 제국의 창시자 칭기즈칸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원래 칭기즈 칸의 어머니가 될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옹기라트 부족의 여인으로 메르키트족의 귀족 예케칠레도와 본인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될 사람은 잘생긴 데다 마음씨도 좋았습니다.
당시 몽골의 풍습은 신랑이 대리 사이를 지내며 일정 기간 친정에 헌신하는 것이 신부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그녀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꿈꾸며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쪽에서 또 다른 부족이 나타났습니다.
보르지긴 오버 키아트 시족의 족장이었던 예수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두려운 마음으로 그들이 그저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우와 열라 예쁘네. 저 여자는 오늘부터 내 거다.
그들은 말을 달려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여자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남자는 잡히면 무조건 죽습니다.
호엘로는 남편에게 먼저 달아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도 새 신부를 두고 도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호일루이 남편이 타고 있는 말렁덩이를 때려 달아나게 했습니다.
예수 개인은 호일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나와 열라 예뻐서 마음에 든다.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오늘부터 내 마누라 할래 아님 그냥 여기서 돼질래? 호일로는 그날로 예수계의 마누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테무지,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오치기 등 내 아들을 얻었습니다.
테무지는 훗날 칭기즈칸이 됩니다.
한편 호엘눈을 빼앗겼던 메르키트 족은 보복을 다짐합니다.
결혼을 앞둔 신부를 잡아가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테무진이 어디에 사는지 확인한 그들은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갔습니다.
테무진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달아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보르테를 빼앗겼습니다.
아버지가 한 일을 이제는 아들이 당한 것입니다.
대모지는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어렵고 힘겨운 세월을 이겨내고 세력을 만들어 결국 메르키트를 정벌하고 끝내는 아내를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임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낳은 아이가 칭기즈칸의 첫째 아들 주치였습니다.
사람들은 수근거렸습니다. 메르키트 족에게 납치된 후 임신되었는데 저희가 진짜 간의 아들이 맞을까?
징기즈카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 문제를 걸고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라 믿었고 또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후계 자리를 다투어야 할 주치의 형제들은 입장이 달랐습니다.
끊임없이 그의 전통성을 제기하며 테크를 걸었습니다.
이처럼 몽골인에게 여성은 약탈의 대상이었습니다.
부족의 여성을 약탈하면 또 그 복수로 다른 여성을 약탈하고
약탈당한 여성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서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매우 괴로운 시간을 견뎌내야 했을 것입니다.
징기즈카는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훗날 약탈혼을 금지시켰습니다.
유목민존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삼국지를 보면 조조와 원소가 작당하여 혼인하는 새 신부를 납치하고 겁탈하려는 장면이 묘사되기도 합니다.
손책과 주윤우, 미녀 자매, 대교와 소교를 납치하여 혼인합니다.
한국사에는 보쌈이 있습니다. 남의 집에 사는 여자를 보자기에 싸서 납치하는 행위인데 사실 보쌈은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고려는 여성들의 재혼이 자유로웠지만 조선은 달랐습니다.
유교 정신으로 과부는 늙어 죽을지언정 결코 재혼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재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보쌈이었습니다.
강제로 잡혀가 살자고 하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뭐 이런 명분을 내세운다면 과부도 새로운 남자와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에는 당연히 모든 나라가 납치혼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유목문화권은 아직도 납치온이 전통이라며 대낮에도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합니다.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이나 알라카추라는 전통 결혼 문화가 있는데 뜻은 자아 달아나기입니다.
전통 문화는 개불 명백한 중범죄입니다.
과정은 대략 이러합니다.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발견합니다.
가서 고백을 합니다. 거절당합니다. 남자는 방법을 바꿉니다.
친구들과 납치를 모의합니다. 여성을 납치하고 집으로 갑니다.
가족들은 신부감이 왔다며 기뻐합니다.
여성은 싫다고 발버둥치지만 결혼 승락을 뜻하는 쉰 두 권을 강제로 씌워 혼인을 성사시킵니다.
한편 여성의 가족들은 실종 신고를 합니다.
경찰은 오랜 전통이고 흔한 일이라며 가볍게 무시합니다.
이곳 여성들의 전체 결혼 중 20% 즉 다섯 명 중 한 명이 알라카추로 인한 강제 결혼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이 끝까지 저항하자 살해되는 범죄가 있었습니다.
국민들의 강력한 규탄에 2013년 키르기스스탄은
알라카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였습니다.
유목민의 전통이라며 이러한 악습을 묵인한 예는 또 있습니다.
바로 손님에게 마누라 빌려주기 과객혼입니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외부 사람이 부족이 사는 곳을 지나갑니다.
손님은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합니다.
남자는 허락합니다. 손님이 천막으로 들어섭니다.
그런데
천막 안에는 남자의 아내가 있습니다.
손님은 깜짝 놀랍니다. 남자에게 가서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따집니다.
남편은 별일 아니니 사양 말고 편안히 쉬다가라고 합니다.
손님은 기뻐하며 다시 들어갑니다. 여성도 손님과 잘 것인지 선택권은 있었습니다.
마음에 들면 자신의 이름을 말해줍니다.
그것이 관계를 허락한다는 신호였습니다.
남자는 멀리 나가 있어 두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줍니다.
남자는 밖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쓰디슨 담배한테 태우면서 마음을 달랬을까요? 남편이 나서서 모르는 사람과 마누라의 잠자리를 준비한다니 지금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참으로 비인간적인 풍습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유목민들은 초원에서 살았습니다. 강수량이 적은 지역이므로 농사를 짓기에는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주로 소, 말, 양 따위를 키워 필요한 식량과 생필품을 만들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축들이 풀을 엄청나게 많이 뜯어먹기에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는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초원을 찾아 이동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지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간단하게 설치하고 이동할 수 있는 천막 생활을 했습니다.
문제는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 했기에, 서로 뿔뿔이 흩어져 이웃이 없었습니다.
부족의 구성원은 대부분 가족이었습니다.
가족끼리 잘 살면 되지라고 하시겠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결혼입니다.
이웃이 있어야 남녀들이 서로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해야 애를 낳고 부족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이 없습니다. 가족들 뿐입니다.
어찌 해야 합니까? 오늘날처럼 나 혼자 산다 뭐 이래야 합니까?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수 개인처럼 다른 부족의 여자를 납치해 와서 살거나 아니면 가족들 중 누구와 결혼하거나.
가족과의 결혼은 심각한 유전적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유전학적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낳은 자식들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 곳에서 손님이 온다면, 남편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마누라와 관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낳고 부족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오늘은 유목민들의 납치혼, 과객혼에 대하여 보고드렸습니다.
과개혼도 일부 옛 유목민들의 풍습이지,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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