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 최후의 순간 여포는 조조에게 제안을 합니다.
나를 받아주시오. 나와 함께 하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습니다.
천하를 노리고 있던 조조에게 이것은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조조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결국 여포를 죽이고 맙니다.
수많은 항장들을 받아들인 조조가 왜 여포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까요? 여포를 꼭 죽일 필요까지 있었던 것일까요?
198년 조조는 여포를 토벌하기 위해 출진합니다.
조조가 합의성에 도착했을 때 여포에게 항복을 촉구합니다.
여포는 백물루 위에서 군사들에게 말했습니다.
경들은 서로 공격하지 마시오. 나는 응당 명공에게 자수할 것이오.
진궁이 말리며 말했습니다.
역적 조조가 어찌 명공과 같습니까? 오늘 항복하는 것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것과 같으니 어찌 몸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여포는 이미 원술과 연합하였고 몰래 빠져나가 원술에게 원군을 요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책이 실패했고 여포는 감히 다시 빠져나갈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여포는 아무 도움도 없이 세 달 동안 조조군과 대치했습니다.
성안 군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여포의 장수 우정
송원 위족이 진궁을 포박하고 그 군사들을 이끌고 투항했습니다.
결국 여포는 부하들과 함께 백문루에 올랐으나 군사들이 포위되어 위급해지자 끝내 내려와서 항복하였습니다.
이렇게 조조는 마침내 여포를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사로잡힌 여포는 흔히 알려진 대로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까지도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조조에게 자신을 받아달라고 간청을 하게 됩니다.
여포는 포박된 채로 조조를 향해
명공이 근심하던 것이 나 역포인데 이제 내가 이미 항복했으니 천하에 걱정할 게 없소이다.
명공이 보병을 이끌며 내게 기병을 이끌게 한다면 어찌 천하를 평정하지 못하겠소이까
라고 제안합니다. 이에 고민이 된 조조가 옆에 앉아 있는 유비에게 정중히 의견을 구하고, 유비는 점장케
공께서는 동태사와 정건 양의 일을 잊으셨는지요
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삼국지나 후한서 어디에도 조조가 유비에게 의견을 물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고민하는 조조를 바라보고 있던 유비가 얼른 먼저 나서서
탁과 정원의 일을 잊지 마셔
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조조가 물어보자 마지못해 대답한 것이 아니라 유비가 먼저 저 놈 죽이셔 라고 선방을 친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인자 유비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여포 역시 다른 항장들의 경우와 유사한 듯 싶지만 몇 가지의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당시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습니다.
포위된 후 항복한 자는 사면하지 않는다.
조조는 여포가 항복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썼지만 여포는 투항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항복하기 전에 무려 3개월 이상 토위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 아군의 사기를 위해 적장을 처형합니다.
둘째, 유비의 말은 어찌 됐던 조조가 정원이나 동탁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정원과 동탁 모두 여포를 잘 대접했지만 결국 여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여포는 당연히 죽어 마땅합니다.
문제는 왜 조조는 여포의 제안에 처음에 주저했는가입니다.
분명 이 여포의 말은 조조의 마음을 움직일 뻔했습니다.
여포는 당시 중원 최강의 맹장입니다.
직접 맞붙어 고생한 조조가 이 점은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천하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여포를 받아들이지 않고 꼭 죽여야 될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유비의 동탁과 정원 살해 이야기 때문에 조조가 진심 쫄았던 것일까요? 여러 정황상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조가 항복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대했던 사례를 살펴보면 그들이 유용하기만 하면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장수는 항복 과정에서 아들과 조카, 아끼던 맹장전이를 죽였고, 조조 자신도 거의 죽일 뻔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다시 항복했고, 놀랍게도 조조는 그를 용서하였습니다.
이 모든 계책을 냈었던 가우 역시 데려다가 오랫동안 요긴하게 써먹습니다.
통상 장수들이 조조에게 저항하거나 뒤통수를 치더라도 그들이 항복하는 한 조조는 웬만하면 그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여포만 예외였을까요?
곰곰히 생각해 보면 동탁 역시 여포가 정원을 죽이고 온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동탁 본인이 계책을 써서 사주한 것이고, 정원의 목을 가져온 여포를 받아들입니다.
사실 조조가 여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조조가 여포를 잘 몰랐으면서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조조는 여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준다면 여포가 만족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하게 알았습니다.
추후 적벽대전 직전에 노숙이 손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조조에게 항복한다면 조조가 당신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요?
이것이 조조가 처했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여포는 정원의 주부였고, 정원의 지위는 병주자사이자 기도이였습니다.
동탁은 정원의 군대를 합병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여포를 유도하여 정원을 죽였습니다.
여포가 정원의 머리를 동탁에게 바친 후 동탁은 여포를 정원의 직위였던 기도이로 임명합니다.
정원의 군 지휘권을 그대로 여포에게 돌려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여포는 중랑장으로 승진합니다. 그 당시에는 장군이 많지 않았습니다.
자체적으로 병력을 거느렸던 제우들과 달리 주자사는 병력을 거느린 장군이 되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포는 결국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한 나라의 규율에 따르면 공덕이 없으면 직위를 수여할 수 없습니다.
여포의 공덕은 무엇일까요? 동탁에 합류하기 위해 정원을 죽인 것이 그의 위대한 봉덕입니다.
이 시점에서 동탁은 여포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지만 정원은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여포의 품격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아무리 받을 것이 없더라도 자신의 죽음을 의를 잊고 배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단지 동탁이 여포 같은 사람을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탁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옆으로 움직여 데려올 수 있었으며, 배신 전까지 잘 써먹었습니다.
동탁은 성미가 급하고 화가 나면 작은 일로도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는 여포를 아들처럼 대했지만 사소한 일에 화가 나 수극을 뽑아 여포에게 던진 일도 있었습니다.
여포는 또한 동탁의 시비와 사통하며 언젠가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항상 걱정했습니다.
여포는 매우 걱정되어 동양 사람인 사도 왕윤에게 털어놨습니다.
왕윤은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여포를 꼬셔서
동탁을 죽이자고 청했습니다.
여포가 부자 사이인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라고 대답하자 왕유는
그대의 성은 여인이 본래 혈연도 아니고 거기다 지금 죽음을 걱정할 겨를도 없는데 무슨 부자지간이라 하시오
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침내 여포가 제안을 수락하고 손수 칼로 동탁을 찔렀습니다.
왕유는 원래 사도였지만 동탁이 이제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그가 최고 관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왕유는 여포를 분이 장군 가절로 삼고 1회는 30에 비견되도록 하였으며, 운으로 올려 봉하여 함께 조정을 장악했습니다.
이렇게 왕유는 동탁보다 여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조조는 여포의 항복을 수락했을 때 여포에게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칭호의 경우, 여포는 이미 제후입니다.
조조가 과연 그에게 이보다 더 높은 칭호를 줄 수 있겠습니까? 직위는 다른 사람의 직위를 빼앗아서 여포에게 줄 수도 있지만
칭호는 그렇지 못합니다. 한 황실이 아직 건재한 이상, 이미 제후인 평도 여포에게 더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지위도 그렇습니다. 조조는 이미 그에게 좌장군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여포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탐욕스러운 여포에게 죽이지 않은 것이라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며
기병대장 정도를 맡기면 과연 여포는 진심으로 수락을 할까요? 또 다른 문제는 보다 실질적인 병력 운용 문제입니다.
조조가 감히 여포에게 병권을 맡길 수 있을지 여부입니다.
병력 운영에 관해 조조의 부하들은 유능하였지만 여포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조이 정권은 장수태바니조시 하우이 일족 들릴 정도로 권력 배분에 민감했습니다.
조조에게는 호표기병이라는 정예 부대가 있었습니다.
이 그룹의 리더는 조진, 조유, 조순 등이었습니다.
조순이 죽은 후에는 조조가 직접 이 부대를 이끕니다.
혈족 장수에게만 맡겼던 이 정예 부대를 조조가 과연 여포에게 맡길 수 있었을까요? 결론적으로 조조는 여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미 제후급 거물인 여포의 마음을 얻으려면 더 큰 것을 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항해 책봉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여포는 욕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가 욕심과 계략으로만 움직이지 않고 일말의 신의를 가진 좀 더 진실된 무장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러한 어려운 시기에 여포는 조조 휘하에서 정말로 큰 일을 이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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