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지도 가까운 중국 사랑 관련된 내용들 오늘 하려고 이렇게 여러분들 모셨고요.
사실 정말 기본적으로 중국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기본기를 다질 때 들을 수 있을 만한 내용으로 시작을 하려고 하는데 전반적으로 딱 기본적으로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알아야 될 내용들에 대해서 다뤄볼 거예요.
일단 중국 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세요? 어떤 단어나 인상이나 아니면 알고 있는 정보들 대 이게 가장 이미지가 큰 것 같아요.
진짜 큰 나라다라고 하는 생각이 굉장히 큰 것 같고 우리가 우리랑은 떨어져서 사실 생각할 수가 없는 나라잖아요.
중국은 굉장히 가까운 나라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나라이고 심지어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국이 세계 경제대국 2위라고 하는 사실은 그냥 자명한 사실이고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모르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부분이라는 거.
중국은 굉장히 넓은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타이완이나 요 아래쪽에 있는 섬까지 포함해서 오늘날의 중국의 영토가 구성이 되죠.
동서 간의 시차가 사실 4시간 이상이 날 정도로 정말 넓은 땅이고 우리가 중국 사람 하면 딱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민족들이 중국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을 뭐라고 부르냐면 다민족 국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몇 개의 민족이 구성되어 있는지 알고 계세요? 맞아 56개의 민족이 살아가고 있어요.
56개의 민족 중에서 중국의 전통 민족을 한족이라고 부르는데 전체의 90% 이상을 한 족이 차지하고 있고 그래서 이제 중국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사람들은 한족인 거고 하지만 이 안에 다민족 국가 안에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외모나 생각하지도 못했던 역사적인 배경으로 중국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흉노족도 당연히 있고 티르 크기나 아니면 장족이라고 불리는 티베트 족도 있고 우리가 오늘 중요하게 또 배우게 되는 몽골족도 요 하나의 일파로 들어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주민등록증이 있으세요? 우리나라에는 주민등록증이 있지만 중국에는 거인 등록증이라고 하는 게 있죠 거미 등록증이라고 하는 게 있어서 워낙에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민족이 조선족이라든가 관련된 민족이 표시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민족도 다양하고 영토도 넓은 만큼 역사적으로도 정말 길고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선생님 먼저 한번 근대 현대 빼고 앞에 점 근대는 쭉 한번 왕조를 써볼게요.
하나라부터 시작해서 상나라, 주나라, 춘추전국 이걸 통합한 게 진나라였고 초안지의 시대가 잠깐 있지만 그다음에 다시 통일왕조 한 나라로 이어지고 한 나라 다음에 위진남북초
위짐 남북조를 수나라가 통일하고 수나라가 다시 단명왕조 이 수나라를 당나라가 이어받고 당나라 망하고 난 다음에는 5대 1국의 혼란기가 이어지고 그 이외에는 이거를 속나라가 통일하고 이 속나라가 있었던 시기에 거란족의 요나라, 탕구트족의 서하, 여진족의 금나라 그런 다음에 몽골족의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그러고 난 다음에 여기까지가 전근대사고 그다음에는 근대사 현대사로 이어지죠.
사실 하나라부터 청나라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길고 복잡하고 많잖아.
심지어 이제 동일식의 우리나라를 생각을 하면 우리나라는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그다음에 뭐로 이어지죠? 그렇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으로 이어지고 통일신라 발에 이어지고 고려 조선
손가락을 5개만 이용을 하면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동일식의 역사가 전개가 되는데 이렇게 많은 왕조가 쓰여질 정도로 중국사 자체는 흥망성쇠가 굉장히 다채롭게 이어지면서 많이 나타났다는 거를 알 수가 있죠.
심지어 중국 사에서는 글자가 한 글자인 왕조랑 여러 글자인 시대가 있는데 둘 사이의 차이는 한 글자가 바로 통일 왕조 여러 글자가 분열 시기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까지를 보는 시대가 한나라 때까지인데 대략적으로 하나라 상나라 이 시기에는 황어, 명 4대 문명이라고 하는 황어 문명이 꼽히었고 여기에서 특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게 바로 주나라였어.
주나라는 상나라에 비해서 영토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지게 되면서 고민을 했던 게 왕의 통치 권력이 지방까지 미쳐야 되는데, 지방까지 치기가 어려우니까 고민을 했던 거죠.
그래서 왕이 고민을 해냈던 방안이
바로 나를 대신해서 통치할 사람을 지방에 보내는 봉건제였었죠.
나를 대신해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운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 왕이.
그래서 지방에 있는 땅을 나눠주는 거야.
그러면 토지를 나눠줄 때 가장 믿을 만한 사람한테 나눠줄 수 있겠죠 이렇게 보통은 혈연적으로 토지를 나눠주게 돼서 이 제도를 혈연적인 봉건제라고 합니다.
그렇게 토지를 받은 당시에 왕의 혈연 관계로 맺어 있는 사람을 제후라고 불렀고
제우는 이 땅 안에서는 왕처럼 살 수 있는 거니까 엄청난 권력을 얻은 거잖아.
그래서 이거에 대해서 왕에게 군사적인 어떤 전쟁이 나거나 하면 단걸음에 달려와서 충성을 다하겠다라고 하는 맹세를 하게 되죠.
이게 바로 봉건 제도의 기틀이었는데 당시에 두 나라가 망하게 됐던 분기점이 됐던 것도 이 봉건제랑 관련된 사건이었어.
실제로 주나라가 몰락하던 시기에 유왕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이 유왕이 포사라고 하는 미녀를 너무 많이 사랑했던 거지.
근데 포사는 전혀 평상시에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근데 그런 거 있잖아 어떤 사람도 웃는 모습이 더 예쁘지 않아요? 더 잘생기고 예쁜데 인상을 이렇게 미간에 주름이 가도록 쓰고 있어도 저렇게 예쁜데 살짝만 웃으면 얼마나 예쁠까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국에 광대들을 다 불러모아서 당시에 포사를 웃기려고 해봤는데 전혀 웃지를 않았던 거예요.
그 상황에서 이 시기에는 전쟁이 나면 지금처럼 전화나 어떤 통신으로 알릴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으니까 산에다가 이제 불을 피우게 되는 봉화를 통해서 전쟁이 난 걸 알렸는데
어떤 봉아를 한 사람이 잘못 올리게 됐는데 그거를 보고 전국에 있는 제후들이 땅을 받고 군사적 충성을 맹세했으니까 너도 나도 수도에 몰려들어가지고 왕을 지키려고 무장하러 온 모습을 본 거죠.
이걸 보고서 봉어가 잘못 올라갔어라고 얘기를 했더니 제호들이 너무 허탈해 하는 걸 보면서 포사가 까르르 웃은 거야.
이거를 보고
진짜 웃으니까 훨씬 더 예쁘구나라고 하는 생각에 거짓 봉아를 계속해서 올리게 되고 거짓 봉아를 올리게 되면서 마지막에 진짜 견융족이라고 하는 이민족이 쳐들어왔을 때는 어떤 제후도 이거에 대해서 성심성의껏 도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 나라가 무너지게 그렇게 시작됐던 분열기가 바로 춘추전국 시대였고 춘추전국 시대를 그래서 최초의 분열기라고 부릅니다.
굉장히 작게 쪼개져 있을 때는 200개까지도 나라가 쪼개져 있었는데 이 춘추전국시대의 분열기를 최초로 통일했던 인물이 바로 여러분들 사실 모두 다 알고 있는 진시왕이죠 진나라의 진시왕 우리가 중국의 통치자는 황제라고 부르지만 이것도 다 진시황제 때 시작이 된 거죠.
황제라고 하는 칭호 자체를 진시왕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고 당시에 이 진시황제 때는 그런데 통일의 원동력이 됐던 강력한 법치가 문제였어요.
강력한 법을 통해 통치했기 때문에 진나라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할 수는 있었지만 역으로 너무 단단하면 부러진다고 이게 문제가 됐던 거죠.
여러분들이 사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정말 그럴 일 없어요 여러분 없겠지만 너무 가지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어.
그럼 사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형벌은 처벌을 받더라도 감옥에 갇혀 있거나 라고 하는 거를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만약에 물건을 훔치면 코를 영원히 상실한다던가
손을 영원히 상실한다든가 우리가 다른 어떤 괴생명체여서 다시 이게 생겨나는 게 아니잖아.
인간은 유한한 존재니까 귀를 잘린다든가 하면 사실 그거에 대해서 죄를 저지른 거는 잘못됐지만 이거에 대해서 이렇게까지라고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진나라에서는 그런 신체형이 굉장히 강력하게 남아 있었어요.
얼굴에 문신을 새긴다던가 아니면 귀를 자른다던가 발의 뒤꿈치 부분만 절단한다든가 하는 형벌들이 있었고 이런 가혹한 통치랑 더불어서 역사 속에 정말 특이한 법칙이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하면 빨리 망해.
진나라도 마찬가지로 대규모 토목 공사를 했고 단명 왕조가 됩니다.
이 상황 속에서 진나라가 망하고 한 나라가 건국하기까지의 시기를 초한지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걸 항상 가르쳐주면 한 나라 초기의 시대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당시에 딱
2개로 나뉘어 가지고 대립하던 인물들이 있었어요.
바로 초나라에 항우와 한 나라의 유방이 있었던 거지.
항우와 유방 같은 경우에는 객관적인 스팩만 딱 두고 오면 이건 누가 봐도 그냥 황후가 이기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 사실 상황이었어요.
항후 같은 경우에는 정말
좋은 집안에 요즘 그게 제일 중요하잖아 그냥 잘 타고 태어나는 거 잘 태어난 좋은 집안에 정말 잘생긴 고 키도 여러분 이 시대에 184cm였다고 하니까 오늘날에 2m를 넘는 사람을 보는 정도의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 고대 시대였으니까 거기에다가 정말 절세 미녀라고 하는 우희가 여자친구였어요.
말도 굉장히 명마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고 유방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는 특출 나지 않은 집안에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우리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한량과 비슷한 이미지 어떤 거야 그런데 역사 속에서 승자는 유방이었거든.
두 사람의 사실 차이점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거죠.
항우 같은 경우에는 주변의 부하들한테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게 내가 방금 낸 의견이 어라고 물어봤고 유방 같은 경우에는 자기의 부하들한테 너의 의견은 어때라고 하는 거를 물어봤을 정도로
두 사람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걸 알 수가 있죠.
항우는 너무 완벽주의적인 사람이야. 자기 스스로도 완벽하기 때문에 간혹 선생님들 중에 서울대 나오시고 공부 너무 잘하셨는데 학생들이 이해 못하는 걸 이해 못하시는 분들이 있으시잖아.
왜냐하면 이해를 못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항우 같은 경우에 딱 그래서 왜 부하들은 나만큼 못하지 라고 하는 생각으로 좀
질책하는 타입이었고 유방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부족한 점을 정말 적재적소에 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등용하면서 이길 수 있었던 당시에 이 초안지의 시대에서 정말 유명한 전투가 있는데 완전히 승계가 한 나라한테 이제 기울어져 있었던 상황이었어.
그 상황 속에서 초나라의 군사들을 한 군데다가 몰아넣고 한 나라 군사들이 이렇게 에워싸고 있었던 거야.
그 와중에 그냥 초나라를 쳐들어가서 초나라 군사들을 초전 박사를 낸 게 아니라 사방에서 정말 구슬픈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왔대.
여러분들 군대 안 가 군대 군대를 안 가보셨지만 우리가 막 진짜 군대 머리 깎고 갈 때 노래가 집도 나와 열차 타고 노래가 들려오면 굉장히 울컥하고 슬픈 것처럼 초나라 병사들도 싸울 의지가 하나도 안 생기는 거죠.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서 엄마 보고 싶고, 자기 부인 보고 싶고, 자식 보고 싶다라고 하는 생각에 완전히 전위를 떨어뜨려 놨고 여기서 나오게 된 사자성어가 사면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린다라고 하는 사면 초과가 나오게 됩니다.
이후에는 당연히 이제 초나라가 완전히 지게 되고 우이랑 항우도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게 그 내용인데 소설 초안지랑 관련된 내용이 있어요 소설 속에 여기에 좀 각색한 내용이 항우는 자존심이 굉장히 센 인물이어서
이 상황을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패배를 지켜보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소설에서는 뭐라고 묘사를 하고 있냐면 항우는 스스로 남아서 자살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명마 추한테 명령을 내려가지고 자기 말한테 우희만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라라고 이제 얘기를 했는데 말은 자기 주인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고 하질 않았대요.
그 상황에서 우희는 자기의 이제 사랑하는 남자한테 정말 발목을 잡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단검으로 목을 찔러서 자살했다라고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이걸 기반으로 여러분들이 봤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유명한 패양 별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는데 그 표양별이라고 하는 경극의 주요 내용도 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스토리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중국의 놀이가 있는데요 혹시 아세요?
맞아 맞아. 너무 장기가 있어 장기.
여러분 장기에 돌 색깔이 나뉘어져 있는 거 알아요? 빨간색 돌이 있고 파란색 돌이 있는데 고수가 좀 더 잘 두는 쪽이 빨간색 돌을 짓고 좀 더 못 두는 쪽이 파란색 돌로 하게 되는데 실제로 빨간색 돌이 초한지의 시대에서 승기를 잡았던 한나라를 뜻하고 이 패배를 했던 초나라가 파란색 돌로 이제 남아 있게 된 거죠.
그렇게 해서 한 나라의 고조 유방이 한 나라를 열게 되는데 한 나라에서는 정말 빼놓지 않고서 반드시 기억해야 되는 전성기의 황제가 있습니다.
전성기의 황제고 대외 침략 전쟁을 굉장히 많이 수행했던 사람이었어요.
대외 침략 전쟁을 수행을 많이 해서 우리 역사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인 게 고조선을 멸망시켰던 인물이죠.
이런 사람의 이름에는 항상
이 글자가 들어가게 되는데 엄청나게 잘 싸웠던 사람이니까 한 나라의 무죄라고 불리는 인물이야.
한나라 무죄 같은 경우에는 잘 싸웠던 인물임인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고민이 있었어요.
당시의 고민이 중국 진나라부터 한나라까지 북방 민족 중에서 흉노족이 굉장히 강하게 압박을 해오고 있었거든.
이 흉노족 때문에 사실 사자성어 천고마비에서 계절을 표현할 때 천고마비가 생겨났을 정도로
천고마비의 뜻이 그거잖아. 하늘이 녹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 되면 흉노가 쳐들어올까 봐 두려워라고 말하던 데서 천고마비가 남아있게 된 건데 당시에 흉노적으로 어떻게 하면 토벌할 수 있을까를 고민을 했는데 아무리 한무제식이 한 나라여도 흉노랑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는 거야.
여러분들 누구를 무조건 싸워서 이겨야 되는데 내 힘으로는 안 돼.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거로 생각할 수가 있겠지.
한무제도 당시에 생각을 했던 게
한 나라랑 손을 잡고 흉노를 치자라고 하는 동맹을 맺는 나라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했는데 당시에 서쪽 어디쯤에 있는 월지라고 하는 나라가 흉로랑 전투를 벌였는데 월지가 패배를 하게 됐고 이 패배를 했을 때 월지 사람들이 모두 다 존경하는 월지의 통치자 왕의 해고를 전리품 삼아서 술잔으로 술을 부어서 마셨다는 얘기
전해져서 이 나라라면은 진짜 우리나라 못지않게 흉노랑 싸우고 싶겠구나라고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이 서쪽 어디쯤에 있는 월지를 찾아서 동맹을 제안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야 되는데 선뜻 사실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
왜냐면 이 사막길 자체가 죽음의 길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바로 이 건너가는 길 위에는 흉노족이 있어가지고
가다가 중간에 걸리면 너네 치러 가려고 이러다가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누구도 사실 나서려고 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장건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청을 해서 떠나게 됩니다.
지금이야 gps가 있어가지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지만, 이 시기까지만 해도 월지가 서쪽 어디쯤에 있다라고 하는 것밖에 모르던 상황이었던 거죠.
장건이 떠나는데 아니나 다를까 월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흉노족한테 사로잡히게 돼.
흉노족한테 사로잡혀서 무려 10년의 시간을 흉노의 인질로 잡혀서 사는데 그 와중에 흉노족의 부인도 없고 아이들도 낳아서 살게 되는데 여러분들이라면 어떨 것 같아요? 사실 그냥 흉노족이 어우러져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자기의 이거를 잊지 탈출을 해서 월지에 도착을 해서 월지에 이렇게 동맹을 맺자고 했는데 월지에서 그럴 생각이 없는데
우리는 지금 여기서 너무 잘 살고 있어라고 하는 답변을 줬던 거야.
지금이면 여러분들 진짜 카톡으로 10초면 끝나는 얘기였는데 이게 10년의 시간이 걸렸던 거지.
그래서 동맹을 맺지 않겠다고 합니다라고 하는 답변을 가지고 다시 돌아올 때 또 한 번 잡혀가지고 3년을 체류해 있었고 13년 만에 귀국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모든 경험이 헛된 경험이 없다고 하잖아.
실제로 장관의 경험도 그랬던 거죠. 월지에 다녀오는 와중에서
서역 그러니까 중국의 서쪽 지방에서 중국의 물품이 얼마나 비싸게 팔리는지 서역 지방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가 있었고 그래서 흉노족보다 빠르게 서역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길인 비단길을 그다음에 개척을 하게 됐던 거죠.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실크 로드를 개척을 하게 되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흉노도 토벌 할 수가 있었어.
근데 이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돈을 썼기 때문에 당시에 이 재정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정말 백성들에게 필요로 하는 물품을 팔기로 결정을 합니다.
국가에서만 팔기로 생각을 했던 거야.
우리나라에도 그런 품목이 있었거든. 지금은 민영화가 됐지만 여러분 예전에는 담배랑 인삼은 담배 인삼 공사에서 전매를 했죠.
근데 우리가 전매 특허 하면 여기에서만 팔 수 있는 이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당시에 전매제가 시행이 되는데 여러분들은 뭐 없으면 못 살아요 소가 근데
요즘에 소금 소금 가지고 다니면서 막 먹고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소금이 생명과도 같은 거였어.
바로 소금인 염과 철 철은 당시에 무기로도 쓰이고 농기구로도 쓰이고 다양하게 쓰였으니까.
소금이 사실 얼마나 중요하냐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서양에서도 소금 자체를 월급으로 받았어.
그래서 소금을 월급으로 받던 게 셀러리움이라고 불렀는데
그게 오늘날의 우리 급여로 생활하는 샐러리맨의 기원이 되기도 하죠.
염철 전매제를 시행했다. 한 나라가 망하고 난 다음에는 흉노족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은 북방 민족이 내려왔어.
이 북방 민족들에 의해서 원래 중국의 전통 민족인 한족이 또 남쪽으로 대거 이동을 하게 되면서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하는 혼란기의 시대가 이어지게 되죠.
다시 이 위진남북조를 통합했던 왕조가 수나라인데 수나라도 단명 왕조거든.
그럼 여러분들 떠올릴 수 있지 뭐를 했을까?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였지. 유명한 거 뭐 있죠 여러분 수나라에서는 대우나를 건설했어.
그래서 수나라 하면 딱 떠올리면 좋은 키워드가 물흥물망이라고 해서 물로 흥하고 물로 망했던 나라 대오나를 건설하고 엄청 번성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 대오나를 통해서 군수물자 이동을 해가지고 고구려를 침략을 했을 때 어떤 전투에서 패배했을까?
살수대첩에서 그렇게 수나라가 망하게 되고 당나라가 등장을 하게 됩니다.
당나라는 부명을 알아야 하는데 우선적으로 정말 유명한 정치적 전성기를 이끌었던 당태종이 존재하고요.
그리고 문화적 전성기로는 당현종이 존재했죠.
중국의 역사 속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면은 항상 이렇게 설문조사를 할 때 3위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 당태종이요.
이 당태종의 본명이 이세민인데 피휘법이라고 하는 게 있어.
너무 존엄한 사람의 호칭이기 때문에 그거를 피하자라고 하는 뜻에서 왕의 이름 그러니까 당태종의 이름에 들어가는 세민의 글자를 일반 사람들이 쓰지 못하게 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거야.
왜? 지금도 너무 존경하는 축구 선수나 야구 선수가 은퇴하면 그 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남겨놓는 것처럼 세민을 못 쓰게 했던 거지.
새를 못 쓰게 했던 대표적인 게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 보살인데 한동안은 관은 보살이라고만 이야기를 하게 했고 또 다른 걸로
우리가 백성 민자를 이때의 시기에 바꿔서 인자로 바꿔서 사용했던 시기가 이어졌던 거죠.
워낙에 존경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문화적인 전성기를 구가했던 당현종이었는데 당현종은 정말 전성기의 피크를 이룬 사람이자 당나라가 망하게 되는 분기점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박현종이 사랑했던 사람이
보통의 사랑이 아니었었거든. 당현종이 사랑했던 사람은 양귀비였는데 당현종이랑 양귀비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이였었죠.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이였는데 그것도 극복했고 나이 차이도 너무 많이 났어요.
34살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이제 빠지게 됐는데 당연정이 양귀비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까 양귀비에게 국가의 중요한 일들을 모두 다 넘기게 되고 사실 제일 중요한 국가의 일은 뭘까?
제가 생각하기엔 인사권인데 그치 어떤 사람을 어디에 제대로 임명하느냐가 공정성과 또 연관되어 있으니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인사권까지도 양개비에게 많이 일임을 했고 그래서 양귀비가 당시에 총애하면서 많이 등용했던 인물이 바로 알록산이라고 하는 사람이었어요.
알록산은 직업은 군인인데 당시에는 변방을 지키는 군인들을 절도사라고 불렀어요.
근데 양귀비가 알록산을 총해해서 알록산을 막 중요한 자리에다 다 앉히는데 알록산이랑 경쟁 구도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 거야.
양귀비의 오빠였던 양국충이었어. 이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떨 것 같아요? 여러분들 생각하기에 안 좋아? 이 두 사람 사이가 완전히 깨지게 되면서 알록산이 삐끗 나가게 되면서 난을 일으키게 되는데 절도사들에 의한 난이었던 안사의 난이었어.
알록산
사사명의 난이라고 하는 뜻으로 안사이난 그리고 안사이난을 분기점으로 해서 당나라는 몰락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절도사들에 의한 혼란기인 5대 식국 시대로 가는 거지.
5대 식국 시대를 통합했던 게 속나라였는데 송나라를 건국한 사람이 송태조 조광윤이라고 하는 사람이었고 이 사람이 절도사 출신이었어요.
여러분들 학교에 학생 주임 선생님 무서우세요? 근데 학생부 주임 선생님이 만약에 학생부 주임 선생님이 주요한 것들은 이제 노는 학생들 기강 잡고 문제 안 일으키게 하시는 거잖아.
근데 학생 주임 선생님이 진짜
학창 시절에 너무 노셨던 분이야. 그리고 나중에 정신 차리시고 회개하시고 막 회계까지 하셔가지고 이제 공부해가지고 학생 중심 선생님이 됐다면 학교에 애들이 어떻게 말썽을 부리는지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겠죠 당시에 송태조가 그랬어.
절도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절도사가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된다는 거를 너무 잘 알았고 그래서 역으로 자기도 절도사 출신이지만 절도사들이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그 권한을 약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던 거죠.
나라에 군인들이랑 글 읽는 선비들이 있는데 글 읽는 선비들만 등용을 하고 이 절도사들을 완전히 내치는 정책을 취했던 거예요.
당시에 이런 정책을 문치주의 그러니까 글로 흥하는 사람들만 등용했던 문치주의라고 하는데 문치주의를 취하니까 당연히 뭐는 약해질까? 국방력이 약해지죠.
국방력이 약해지니까 거한 족 쳐들어오고, 탕구트족 쳐들어오고, 여진족이 쳐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요나라랑 금나라는 중국의 일부 지역까지 장악해 가게 됩니다.
근데 여러분 알죠? 싸움도 비슷비슷해야 사실 싸움이 일어나는 거지.
압도적으로 강하거나 압도적으로 약하면 싸움 자체가 안 되잖아.
당시에 압도적으로 강한 북방 민족이 나타나면서 그냥 이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되어 버린 거야.
당시에 나타났던 민족이 몽골족이었고 몽골 부족을 통합했던 인물이 신기즈칸입니다.
그리고 칭기즈칸의 후예 중에 한 명인 쿠빌라이칸이 원나라를 건국하게 되는데 친기즈칸부터 얘기를 해줄게.
친기즈칸은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부족장의 아들이면 요즘으로 치면 어쨌건 간에 도지사의 아들로 태어난 건데 굉장한 금수저 아니야? 생각할 수 있지만 신기지카는 인생 자체가 도전이었을 정도로 너무나 힘들게 살았던 사람이었죠.
체이즈칸의 인생에 3가지 위기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첫 번째 위기가 자기의 아버지 부족장이었던 아버지가 9살 때 돌아가신 거였어요.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9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부족원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그냥 쥐고기 먹고 풀뿌리 막 해서 먹고 하면서 굉장히 목숨을 진짜 이어나가면서 살아나갔던 거죠.
이게 첫 번째 위기였고 두 번째 위기는 칭기즈칸이 일생을 통틀어서 가장 사랑했다라고 하는 보르테와의 일화인데
아주 일찍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보르테가 경쟁 부족에게 납치를 당한 거야.
근데 몽골 부족에서 여자를 납치하고 약탈한 건 너무 흔한 일이야.
그 상황에서 보르테가 납치를 당했는데 신기즈카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이고 보르테를 다시 구출해 오겠다라고 결심을 했던 거죠.
근데 이게 다른 몽골 부족원들에게는 비웃음을 살 만한 일이었대.
여자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다고 이런 생각을 하던 사람들이었던 거지.
근데 이 보르테를 구출해 오기 위해서 자기 힘만으로는 좀 부족하니까 칭기즈칸의 피를 나눈 의형제가 자무카라고 하는 의형제가 있었는데 이 자무카의 부대랑 연합을 해서 보르테를 구출을 해온 거지.
구출을 해왔는데 왜 위기일까? 생각할 수 있잖아 근데 보르테의 뱃속에는 납치당했던 경쟁 부족 적장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상황이었어.
너무 괴로울 것 같지 않아? 이게 몽골의 역사를 기록한 원조 미사에 기록이 되어 있는 내용인데 생각을 해봤어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할 것 같아요? 키울 것 같아 나의 아이로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한다면 칭기즈칸도 딱 이런 선택을 했어.
그래서 낳게 한 다음에 자기 아이 그래서 첫째 아이 주치가 바로 이렇게 태어난 아이였죠.
세 번째 위기는 이 자기의 정말 둘도 없는 친형제 같은 자모카와의 싸움이었는데 자모카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다는 걸 느낀 거야.
자무카 부대랑 칭기즈칸 부대랑 같이 연합작전을 수행을 했더니 칭기즈칸이 보통 인물이 아니었을 거 아니야 엄청난 카리스마의 사람들을 휘어잡는 리더십이 있으니까 자무카 부대에서 이탈해서 칭기스칸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지.
둘 사이에도 균열이 생기면서 자무카가 하늘 아래 2개의 태양은 있을 수가 없고, 나는 태양이고 싶고 저쪽 태양을 없애야 된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선전 포고를 하고 서로 전투로 들어갔는데 신기지칸이 의외로 마음이 약한 부분이 있어서 처음에는 자기가 너무 믿고 의지했던 자모카랑 싸우는 걸 선뜻 수행하지를 못했대.
그래서 계속해서
막 결상전을 피고 피하고 피하다가 나중에 결국에 그냥 칭기즈칸이 아예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던 게 자모카가 칭기즈칸의 부하를 인질로 삼은 다음에 속에서 삶아 죽인 일이 발생을 했어요.
이걸 기점으로 칭기즈칸이 싸움은 피할 수가 없다라고 하는 생각에 잠무카랑의 싸움에서 이기게 되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칸의 자리에 등극하게 되죠.
칸은 이제 북방 민족에서 최고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고 그렇게 칭기즈칸이 칭기즈칸과 칭기즈칸의 아들들 또 그의 아들들이 이룩했던 몽골 제국의 크기는
세계에서 제일 넓은 영토를 가졌다라고 말하는 게 대형 제국이잖아 형제 이제 1, 2위로 기록이 될 정도로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이 있잖아.
사막을 제외하고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의 3분의 2를 차지했었다 라고 하는 대기록을 남기게 되죠.
몽골 재고는 어떻게 이렇게 잘 싸웠을까를 생각을 하면 말 타고 다니잖아.
근데 말을 타고 다닐 때 중요한 게 기동력인데 빨리 갈 때 중요한 게 식량 공급이 또 중요하잖아.
그래서 고급 부대가 중요하고
그래서 몽골 부족은 항상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음식 문화가 발전해 왔어.
예를 들어서 말 안장에다 고기 넣어놓고 자연스럽게 다져질 거 아니에요 여기에다가 밀가루 같은 거를 섞어서 야크 기름에다가 볶아낸 게 타타르 스테이크라고 불리면서 교역 과정 속에서 이게 독일에 함부르크 지방으로 넘어가서는 함박 스테이크의 원형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여러분들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진짜 좋아하거든 육포 같은 것도 고기를 말려서 가지고 다니고 너무 배가 고프면 이런 북방 민족이 양고기를 진짜 많이 먹었잖아요.
군모에다가 뜨거운 물 부어서 양고기를 데쳐서 먹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샤부샤부 같은 음식들도 여기서 나오게 되죠.
그런 음식 문화로도 남아 있을 정도로 유명했던 부족이었어요.
그러다가 칭기즈칸의 후예였던 쿠빌라이칸이 중국 전역을 장악하면서 세웠던 게 원나라입니다.
원나라는 왜 그렇게 빨리 망했을까? 당시에 원나라 같은 경우에도 지배층이 돈을 흥청망청 써서 티베트 불교라든가 이런 데 굉장히 돈을 많이 써서 경제에 대한 개념이 발전이 안 돼 있을 때는
돈이 부족해 돈을 찍어내면 되지라고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당시에 원나라에서도 지폐가 교초라고 하는 게 있었는데 교초를 막 찍어냈어.
돈을 찍어내면 돈은 수량이 많아지게 되고 많아진 것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죠.
얘가 떨어지면 반비례 관계로 물가가 오르게 되면서 원나라가 빠르게 멸망하게 된 거야.
몽골 족의 나라가 무너지고 중국의 전통민족 한 쪽이 명나라를 세우게 되죠.
명청 시대는 조금 간략하게 볼 건데 명나라는 쇠퇴하게 됐던 원인이 우리나라랑 관련이 있어.
우리나라에 일본이 쳐들어왔던 임진왜란이 발생을 했을 때 명나라에서 지원병을 보내줬어요.
그러면서 너무 많은 돈을 쓰게 됐고 여기에 신경을 쓰는 동안 북방에서는 다시 이 금나라를 세웠던 여진족 여진족을 계승했던
이 사람들이 흥기를 하게 되면서 힘을 장악을 하게 되면서 청나라까지 세우게 된 거지.
그러면서 명나라가 무너진 거야. 그래서 조선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명나라가 돈을 많이 쓰면서 쇠락하게 되고 청나라가 만주족이 세운 성나라가 권력을 장악하고 왕조로 이어가게 됩니다.
그니까 이민족이 통치하는 나라인 거잖아.
근데 통치를 진짜 잘했어.
강건성세라고 불리듯이 강의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면서 전성기가 엄청나게 이어지게 됐고 실제로 오늘날 중국은 56개 다민족이랑 같이 살아나가야 되니까 어떻게 하면 얘네가 하나도 안 튀어나가고 같이 잘 살 수 있지를 고민할 때 제일 많이 연구하는 중국에서 실제 국가 정책으로 제일 많이 연구하는 시대가 청나라예요.
이민족으로 한족을 잘 통치를 했으니까 근데 이렇게 아무리 잘 통치를 해도 시대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겠죠.
영국의 침략 속으로 근대사로 넘어가게 되는데
근대사의 포문을 알리는 사건이 아편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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