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고기는 돼지고기입니다.
2018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돼지고기와 닭고기 소고기를 제치고 약 50%에 달해 그중에서도 삼겹살 사랑이 유별난데요.
삼겹살은 돼지의 뱃살 부위를 말합니다.
비계와 살코기가 세겹으로 층층이 이루어져 있어 삼겹살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삼겹살과 돼지고기가 언제나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선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소고기와 양고기를 대접하라 15세기 초 명에서 조선 사신을 맞이할 때 명 황제가 지시한 내용입니다.
조선인은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을까요.
곧 이어 한국인들은 육식을 즐겼습니다.
고대의 돼지는 소와 함께 하늘의 신께 바쳐지는 희생 재물이었습니다.
때문에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죠. 제사가 끝난 뒤에는 희생 제물을 요리해 함께 나눠 먹었는데요.
고구려의 맥적이 대표적인 제사 음식입니다.
맥적은 돼지고기를 간장이나 된장에 재운 뒤 숯불에 구워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고구려만의 요리는 아니었고 유목민들에게선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요리였죠.
하지만 4세기 무렵 불교가 전해지면서 한국인의 육식 문화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불교의 교리는 살생을 금합니다. 때문에 불교에 심취하게 된 한국인들은 동물을 죽이는 것을 점차 꺼리게 되었고 그 결과 육식 문화 자체가 쇠퇴하게 됩니다.
12세기에 고려를 방문한 중국인 서긍이 고려의 돼지고기 요리가 맛이 없었다고 적어 놓았을 정도
고려인들이 육식을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도축 기술이나 요리 기술이 형편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육식 문화의 퇴보는 가축 중에서도 돼지의 인기를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소는 농사를 짓는 데 필요했고 말은 군사적 쓸모가 있었으며 개는 집과 주인을 지켜주었지만 돼지는 별다른 용도가 없었기 때문에 굳이 키울 이유가 없었죠.
게다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닭을 기르는 게 경제적이었습니다.
돼지를 1kg 찌우기 위해서는 4.4kg의 사료가 필요한 반면 닭을 1kg 찌우기 위해서는 1.7kg의 사료만 있으면
돼지를 기르는 것이 이처럼 비실용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돼지고기는 환영받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크게 퇴보했던 육식 문화는 13세기에 이르러 다시 부활합니다 고려가 몽골의 영향 아래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요.
몽골이는 육식을 즐기는 유목민이었고 그중에 양고기를 꼬치에 끼워 숯불에 구워 먹는 요리도 있었습니다.
이 음식을 슈슐륵이라고 했는데요. 꼬치구이라는 뜻입니다.
슈슐륵은 당시 몽골의 영향권에 있던 고려로 전해져 서암역이 됩니다.
설함역은 양념에 재운 소고기를 대나무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굽는 요리입니다.
눈 오는 날이면 찾았다고 해서 설함역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서라역은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꼬치에 끼우는 대신 석쇠에 굽는 형태로 변화하는데요.
이 음식을 너비아니라고 합니다. 너비아니는 고기를 넓게 저몄다는 뜻이죠.
이를 통해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 문화는 한국인이 고기를 먹는 하나의 방법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몽골이 훗날 삼겹살 구이의 단짝이 되는 소주 역시 전해주었다는 겁니다.
소주의 소는 불태우다라는 뜻입니다. 쌀을 발효시켜 만든 곡주에 열을 가해 만든 증류주라는 뜻이죠.
증류주 제조법은 중동에서 처음. 개발되었는데요.
중동을 점령한 몽골인에 의해 한반도로 전해졌습니다.
오늘날 안동과 제주의 소주가 유명한 것도 몽골군의 주둔지였던 것과 관련이 있죠.
13세기의 육식 문화가 부활했어도 돼지고기는 여전히 천대에 맞는 음식이었습니다 한국인에게 고기는 곧 소고기를 의미했고 그 외의 고기는 소고기를 먹지 못한 자들이 먹는 소고기의 대체제 취급을 받았던 겁니다.
때문에 삼겹살이라는 부위 자체도 비교적 최근에야 만들어집니다.
조선시대의 돼지 해체도를 보면 삼겹살에 해당하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죠.
그냥 갈비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삼겹살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20세기 초반에야 발견됩니다.
1930년대 출간된 조선요리제법이라는 요리책에 새겹살이라는 이름이 나오죠 삼겹살의 원래 이름입니다.
삼겹살이 새겹살을 밀어내고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름이 된 건 1980년대부터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산업화는 고기 소비를 함께 증가시키기 마련입니다 한국인에게 고기는 곧 소고기였기 때문에 소고기 수요가 확 늘었고 소고기값 역시 뛰어올라 사회적인 문제가 됩니다.
정부는 소고기로만 몰리는 고기 수요를 분산시켜야 했고 대체제로 낙점한 게 돼지고기였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는 돼지고기에 일본 수출까지 막으며 상당한 물량을 국내에 푼 결과 돼지고기가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에 공급됩니다.
덕분에 돼지고기 소비 역시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노동자들은 하루치 노동에 지친 몸을 다독일 값싼 술과 안주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피로를 충족시켜준 것이 바로 삼겹살 고이와 소주였죠.
가격 대비 가장 기름진 삼겹살과 가격 대비 가장 빨리 취하는 소주의 황금 조합이 바로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삼겹살 전문점이 확 증가합니다.
199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저렴한 음식인 삼겹살에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겁니다.
기존 삼겹살보다 가격을 확 낮춘 초저가 삼겹살도 등장했는데요.
이 초저가 삼겹살 시대를 선도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백종원이었습니다.
백종원이 개발한 대패 삼겹살은 적은 양으로도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죠.
대패 삼겹살이라는 이름은 대패로 썬 것처럼 얇은 삼겹살이라는 뜻입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2천년대 이후 삼겹살 전문점의 트렌드는 고급화입니다.
얼리지 않은 생삼겹살 허브나 인삼 와인에 지운 삼겹살 근 단위로 두껍게 썬 근 고기가 전국적인 유행을 타기도 했죠.
최근에는 전문가들이 고기를 직접 구워주거나 명의나물이나 멜저처럼 차별화된 반찬이나 소스를 내세운 곳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불과 40년 사이에 우리는 제법 다양한 삼겹살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삼겹살은 우리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전히 함께 해온 음식입니다.
전통과 단절되고
산업화를 통해 어떻게든 길을 찾으려 했던 한국인에게 삼겹살은 산업화 이후 우리가 처음.
찾은 정체성이란 상징적인 의미가 있죠.
삼겹살 구이는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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