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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유재산과 계급의 발생과정에 대해 설명해 드립니다.

by 로이인랑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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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재산과 계급의 발생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봅시다 
관심사가 달라서 철학을 소 닭 보듯 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결정적으로 현대인들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일하고 놀고 자는 시간을 빼면 언제 생각하고 언제 연구하며 언제 검증을 하겠습니까 심지어 지구에는 아직도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인구가 7억 명을 넘는다는 월드뱅크의 자료도 있습니다.
월드뱅크는 저소득 국가나 저소득 국민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빈곤을 대출로 해결해 줄 생각은 없는지 어떤 나라 국민이 얼마나 어떻게 구체적으로 못 사는지만 주고 장창 조사되면서 실질적으로는 뱅크라는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못하는 이상한 집단이라는 생각은 접어든다고 하더라도 현대인들도 이렇게 빠듯한 생활에 여력이 많지 않은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소피스트라는 입맛 놀려서 먹고 사는 직업이 생길 정도로 논리와 철학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처음의 시작은 이랬을 것 같습니다. 
신석기 시대에 농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잉여 생산물이 생겼습니다. 
딱히 더 열심히 해서 내가 먹을 것보다 많이 재배해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모자르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환경에 처할 수 있기에
요력이 닿는 만큼 소비되는 것보다 많이 생산했겠지요. 
처음에는 누구나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어디에나 계열은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열심히 안 했다고 가정하면 다 굶어 죽었을 테니까 그냥 열심히 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결과까지 좋지는 않은 경우가 발생합니다 가령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당시 인력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홍수 가뭄 병충해 등 말입니다. 농사를 망친 농부는 앉아서 굶어 죽을 수 없으니 옆집에 곡식을 얻거나 빌리러 갑니다. 
얻을 경우에는 날은 발휘를 해두는 조건으로 빌릴 경우에는 이자를 붙여서 갚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이 문제가 여기서 해결되면 다행이겠지만
악순환이 계속될 경우 농사를 망쳐서 먹을 게 없게 된 쪽은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거나 혹은 자신이 남은 것까지 담보로 곡식을 빌려야 합니다. 
이렇게 땅이 넘어가고 농사 지을 땅이 넘어갔으니 굶어 죽을 수는 없고 자신의 인신마저 넘기게 됩니다. 
이렇게 노예 비슷한 종류의 계약이 성립했을 테지만 이런 계약관계를 성립시키려면 사회가 모두 인정하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가령 족장이라던가
법 같은 것 말입니다. 이런 사회적 규정이 없다면 옆집에서 빼앗아 먹거나 죽여서 차지해버리면 그만인데 누가 스스로 인신을 구속해 갖다 바치는 일을 하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신변의 안전 보장이 필요해졌고 점점 힘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힘 센 사람 가진 재산이 많은 사람 종교적
중심 역할을 하는 샤먼 등 다양한 형태의 권위로 뭉치고 배를 넘기면서 점점 중앙 집권적인 형태의 공동체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또 이 중앙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지킬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협조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고
여기에서 또 여러 계급이 발생합니다. 
촌락 내에서도 계급이 발생 가능하지만 이것이 더 큰 범위로 이웃 부족이나 국가 간의 전쟁이나 약탈로 번질 경우 더욱 엄격한 계급이 형성되겠지요. 
이렇게 생긴 계급이 그리스 사람들이 철학에 전념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바로 노예가 그들의 농사와 집안일을 대신 해줬기 때문에
그들은 손가락 까딱 안 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더 고상한 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의 잉여 노동력이 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관점으로 이것이 부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대다수의 생산 인력의 노동을 바탕으로 나온 소량의 잉여 생산물은
당시에는 소위 엘리트 계층이 생기고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게 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으면 이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 사회의 발전은 몇백 년 혹은 몇 천 년이 늦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1세기 현재도 지식의 생산은 세부 사항은 다르지만 그 구성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가령 이제는 누구도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고 고대 그리스 시대 당시에는 80%에 육박했던 농민의 비중이 오늘날 미국에서는 1 3만의 인구가 농사에 종사할 정도로 생산성이 급격하게 늘어났기에 남은 사람들은 각종 다양한 직업과 취미 활동을 가질 수 있게 됐으며 여전히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잉여 생산물로 살아가고
물론 이제 희생은 없어졌죠. 한 연구에 의하면 아테네에서는 보통 한 시민 가구당 노예 34명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훨씬 이전 시기인 미케네 문명 시기에 노예가 확인된다고 하지만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후 아무기가 도래해 몇 백 년의 기록 이 부실에 정확히 언제부터 일반 가정에까지 노예가 들어오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어
다만 아테네 시민들의 풍요로움이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테네가 자리 잡고 있었던 그리스의 아티카 지역은 항상 농지와 수자원의 부족에 시달렸으며 얼마 되지도 않는 농경지는 일부 귀족층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고 정치는 평야파와 해안파 사학파로 나뉘어 이권을 놓지 않으려는 기득권과
이권을 빼앗으려는 빈민들이 정쟁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별세를 끌어들여 참주가 되려는 자가 암살당하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때 솔론이라는 아테네인의 인기를 얻은 정치인이 등장해 개혁을 실시하는데 재산에 따라 정치적 권한을 나눠주되 재산이 없는 사람도 최소한의 역할을 분배해 줍니다.
차등 의결권이라는 게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에 비춰보면 매우 불합리해 보이지만 근대 이전까지 민주주의 제도라고 불리운 제도들은 전부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자는 무보수로 정치에 헌신해야 하고 상류층과 중산층은 스스로 기병과 보병으로 무장해 아텐에 헌신해야 했으며 아류층은 아테네의 무역을 위한 상선의 선언으로 일을 하면서
역시 노동에 헌신해야 했습니다. 일단 계층 간의 불을 인정하면서 본래 노예가 아니었던 시민들을 해방시키고 남는 인력으로 수출품 생산과 무역을 진행시키자 곧 아테의 군대는 강력해졌고 시민들은 풍요로워졌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이웃 나라에서 노예를 잡아오거나 모욕으로 사왔기 때문에 아테네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의 평균 생활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솔론 사후 참주정을 거쳐 좀 더 발전한 민주주의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알아채셨나요. 솔론이 개혁을 실시할 때 재산에 따라서 정치적 권한을 나눠줘 계급을 나눈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재산을 국가가 아니라 그들 개인의 것으로 인정해준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적 의미 사유재산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인데 차이점이라면 그 재산의 사용처가
대체적으로 나라에 봉사하는 데 쓰인다는 정도죠 이것은 시민에게 시민의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재산을 확정해 준 것이므로 시민의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다른 계층에게 뒤처지거나 재산을 몰수당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생기면 사람은 그 재산을 지키고 불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합니다. 
노예는 자신의 재산이 없기 때문에
딱 적당한 만큼만 일을 하고 실제로 세계에서 노예제가 사라진 근본 원인이 이것입니다. 
그 이후에 아테네가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에게해에서 독보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보면 사유재산과 자유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증명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우리나라가 아테네 시민들이 솔로의 기억으로 각자 제자리를 찾아 맡은 바를 통해서 스스로의 번영과 아테네의 안녕을 가져온 것처럼 영상을 통해 한국 경제의 모순을 해결하고 한국인을 부유하게 만들 방법을 제시하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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