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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무역과 화폐 그리스 밀레트스 학파 조순교수

by 로이인랑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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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투스의 텔레스가 신에게서 인간으로 세상의 관점을 옮겨 학문을 좀 더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만들 초석을 다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면 오늘은 그로부터 출발한 밀레투스 학파와 제자들을 통해 그들이 남긴 업적과 그리스를 비롯한 세계 경제의 발전사를 간략히 알아봅시다 윌레토스 학파의 자연 철학관이나 기타 논변들이 오늘날까지 그 계보가 이어져 내려온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일렉트스 학파에 각 구성원들이 사유하고 연구한 것들이 당대를 대표하고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펠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아름 제자인 아낙시네메스와 함께 밀레투스 학파의 새 구성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들과 몇 명을 더 포함해 이오니아 학파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그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과 리비아라고 불렸던 아프리카 터키 인근에 소아시아를 포함하는 지도를 그려 남기기도 하였는데 학자들은 지도를 밀레투스의 식민지와 지중해 및 흑해 주변의 다른 민지 간의 항해 및 무역을 개선하는 데 사용했거나 이오니아의 도시 국가들이 지도를 갖고 있다면 후대 페르시아와 마찬가지로 틈틈이 그리스를 노리는 거대 강국
메디아의 위협을 몰아내기 위해 연합에 가입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 밖에도 세계에 대한 지식과 이를 이해하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등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지도를 만들고 그 지도를 통해 무역을 하기보다는 이미 하고 있던 무역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지도를 제작했다고 보는 편이 옳겠죠. 
당시는 기원전 6세기 경이었지만 인류의 무역이 신석기 시대에는 이미 보편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섬과 산이 넘쳐서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하기 힘든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꾸 식민지를 퍼뜨려 인구를 이주시키고 식량과 특산물을 조절하는 무역을 하는 길을 택했고 이들이 발견한 인도 때문에 유럽이 2천 년을 넘는 기간 동안 인도와의 무역을 위한 사투를 벌인 것을 생각하면 우혁이 가져다 주는 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궁금해지네요. 
아마도 당시의 그리스 세계는
상업적으로 가장 발달된 지역 중 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주요 도시 국가가 수십 개 작은 군소도시 국가까지 합하면 수백 개의 거점들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퍼져 무역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주 교역로가 지중해였기 때문에 공로에 비해 대량의 물품을 배로 운반하는 것이 가능했고 넓은 범위의 교역로를 형성하는 데 용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물물 교환하는 형태에는 아무리 바다로 운송을 한다고 해도 고대의 기술력으로는 큰 한계가 있었고 이를 대신해 화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됩니다. 
최초에는 조개가 화폐의 역할을 했다고도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오래 쓰인 화폐는 주로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동전이었습니다. 
물건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물건 대신 받는 화폐는 그 물건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보석으로 인식되는 금과 은이라면 물건 값으로 충분히 납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건을 사면 지폐로 대표되는 종이 쪼가리를 주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종이 위에 가격만 바꿔서 인쇄하면 높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폐 변천과 기준은
금융의 발달과 함께 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영상을 통해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여담 어쩌면 세계 최초의 선물 옵션 거래 이들이 이렇게 자연과 세상에 대해 여러 가지 자연관과 우주관을 피력할 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철학이 맞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런 거 한다고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을 들은 탈레스는 특정 해의 날씨와 풍작을 예측한 후 일레트스에 있는 모든 올리브 압착기를 샀습니다. 
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팔레스가 인쇄기를 할인된 가격으로 미리 예약했고 특히 품장에 대한 그의 예측에 따라 수요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높은 가격에 임대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데 이 이야기의 첫 번째 버전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선물 생성 및 사용을 구성하는 반면 두 번째 버전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옵션 생성 및
사용예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이렇게 한 목적은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밀레트스인들에게 철학이 그들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저와 목적이 비슷하죠. 텔레스의 철학이 유용한 것이라면 왜 아직 불을 얻지 못했는지 묻는 사람들에 대한 자연 철학의 유용함을 알린 것이죠. 
오늘의 요약 1
밀레트스 학파는 팔레스와 그의 세계관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고대 그리스가 이성적 세계로 전환되고 학문적 발전을 이루는 초석을 확고히 함 이 물물교환의 비효율적 한계로 화폐가 발생한 화폐는 단순히 쌀 1킬로그램의 나뭇잎 하나 같은 형태가 아니라 서로 가치를 인정하는 매개여야 함 3
철학과 경제적 원리가 무관하지 않음을 보임으로써 이 부분에 집중한 학문의 발전 가능성을 엿본 외 편 2022년 6월 23일 한국경제학계의 몇 안 되는 유명 인사 중 한 분이셨던 조순천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조순 교수는 경제학과 학생이라면 한 번쯤 그 이름을 듣게 될 정도로 다방면에 걸쳐 한국 경제학계
많은 일을 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이력만 살펴보아도 서울대 교수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초대 민선 서울시장 한나라당 총재 등 남들은 한 가지도 하기 힘든 일을 두루 하셨으니 가히 고인이 되신 김재익 수석비서관과 함께 한국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정치인이나 평론가
기자 등도 논하는 성장과 분배에 대해 다른 나라 특히 미국의 경제학을 갖다 베기는 수준의 협소한 한국 경제학계에서 학파를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경제학파를 굳이 나눴을 때 크게 서강 학현 조승학파로 나눠지는데
그중에 유일하게 이름이 학화명으로 사용될 정도로 학계에서의 위상 또한 높으신 분이시죠 경제학자로서의 조순 교수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미국에서 공부한 정통 자유주의 경제학 이론을 현실 정치에 참여해 경제학 이론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정책 방향과 이념 속에 심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순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로서
당시 거의 문맹 수준이거나 반공으로 난립하던 비시장적 경제 정책과 생각에 마치 등불처럼 길을 제시해 의식의 한 편에 자리 잡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조순 교수와 조순학파는 완전한 방임주의를 주장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개발 독재나 분배 우선 주장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속에서 현실적인 균형점을 찾아
조금씩 목표를 향해 개선해 나갔을 뿐입니다. 
실제로도 좌와 우에 걸쳐 방대한 스펙트럼을 갖는 인물들이 소속돼 있지만 바꿔 말하면 이념이 혼재된 모호한 학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경우와 달리 이것이 문제되지 않는 이유는 조승 교수 본인이
조선학파는 없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언론이 편의상 조순 교수에게서 배운 제자들과 그 제자들을 묶어 지칭한 것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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