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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신을 싫어한 학자 왕충 그의 사상에 대한 설명

by 로이인랑 2022.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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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서기 1세기 한나라 시대로 갑니다. 


당시에는 유교 학문이 널리 퍼졌는데 뭔가 이상한 형태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사람을 연결시켜 어떤 일에도 하늘이 내린 뜻과 이치라며 의미 부여를 했죠. 
길흉화복을 예언하기 위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무속 신앙 같은 신비주의 학문이 유행했죠. 


왕과 관리들도 점점 미신에 빠져들어갔습니다. 
날이 추워지거나 더워지는 것이 왕이 어떤 기분인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산불이 발생하거나 홍수가 나면 왕이 뭔가 부덕한 일을 해서 하늘이 경고를 준다고 생각했죠.
하늘은 마치 신과 같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명을 주고 상과 벌도 주는 절대적 존재였으니까요. 
마침 이런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 아닌 그저 우연적으로 생긴 일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죠. 
그에게 하늘은 그저 자연물일 뿐 어떤 의도나 목적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늘과 사람의 연결을 끊어내고 미신으로 얼룩진 사회를 비판했죠. 


그는 바로 왕충입니다.
왕충은 후한시대 유학자입니다. 서기 27년부터 97년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노는 것보다 공부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유학자 반표에게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했던 그는 책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책방을 기웃거리며 잠깐씩 훑어보곤 했죠. 
머리가 좋았던 그는 책을 잠깐만 살펴봐도 하루에 1천 자를 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제자백가 사상을 두루 섭렵하게 됩니다.


그는 지방관직에 오르기도 합니다. 왕충은 종종 충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벼슬을 그만두게 되죠. 
이후로 그는 책을 쓰기 위해 은거합니다. 


바로 논형이라는 책이었죠. 20여 만 자인 엄청난 분량의 이 책은 다양한 사상을 비판 및 수용했습니다. 
특히 당시 유행한 미신 같은 것들을 허망하게 여겼습니다. 
후한 시대에 이르러서는 기륭화복을 예언하는 참이설이 자리 잡았죠.
도참사상이라고도 합니다. 왕충은 참이를 믿는 학자들을 어리석다 생각했습니다. 
이들을 비판하고 널리 퍼져 있는 허구를 밝혀내기 위해 책을 썼죠. 


논형이란 책은 의논을 저울질 한다는 뜻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학문들이 과연 합당한지 검토하고 사물과 현상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했죠. 
시간이 흘러 왕충은 또 다른 관직을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죠. 
나중엔 친구가 그의 재능이 아까워 조정에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왕충은 이미 늙었고 병까지 있어 저술 활동에만 전념합니다.
마침내 책을 완성한 그는 집에서 요양하다 얼마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왕충은 시대를 비판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당시에는 공자를 성인으로 추앙하던 분위기였습니다. 
유생들은 감히 스승의 말에 지적할 수 없었죠. 
하지만 왕충은 공자가 한 말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맹자가 한 말에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봤죠. 
그 또한 공자와 맹자를 높이 평가했지만 그렇다고 비판을 주저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그는 동중서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동중서는 전안 시대의 유교를 국교화하는 데 큰 공헌을 했죠. 
음양오행을 감미한 유교는 신비주의로 변해갔습니다. 
알 수 없는 현상을 정치에 연결시켜 믿거나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왕충은 실체가 없는 것들을 의심했습니다. 


때문에 귀신 같은 것도 믿지 않았죠. 
그는 하늘과 사람을 연결짓는 피련을 끊어놓고 자신만의 사상을 펼쳐나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왕충의 사상을 쉽고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동양에서 하늘이 갖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여기서는 주제에 맞게 하늘을 인격천과 자연천으로 나눠보겠습니다. 
인격천은 도덕성을 갖춘 의지나 목적을 가진 하늘입니다. 
자연처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물이죠. 현대과학을 배운 우리 입장에선 당연히 하늘은 자연물이지만 2천 년 전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자연 현상에 대해 의미 부여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이 임금을 내리고 산과 벌을 내리는 절대적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의심을 품는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왕충은 하늘을 자연천으로 바라봤습니다. 
반대로 동중선은 하늘을 인격 천으로 바라봤죠. 
전한시대 유학자 동중서와 후한시대 유학자 왕충은 서로 사상적 차이가 컸습니다. 
왕충의 사상을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자연천 기론 두 가지입니다. 먼저 왕충이 생각한 자연천을 알아보겠습니다.
왕충은 동중서가 주장한 천인감응설을 부정했습니다. 
천인감응설은 하늘과 사람이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이 분노해 재앙을 일으키거나 왕이 바람을 부리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왕충은 이런 사건들은 단지 우연일 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은 마치 벼룩이 옷 속에 있는 것과 같다. 
하늘과 인간은 그저 개별적인 존재라는 뜻이죠. 
기이한 현상에 의미 부여를 하는 이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땅 위에 개미들이 지나갈 때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
어떤 것은 살고 어떤 것은 죽는다 또 들불에 불이 나면 어떤 것은 타고 어떤 것은 멀쩡하다 사람들은 멀쩡한 풀을 행운의 풀이라 부르지만 이 모든 것은 단지 그저 우연일 뿐이다. 
왕충에게 하늘은 어떤 목적도 없었습니다. 
세상 일을 하늘에 핑계 삼는 것을 허망하다 생각했죠. 
반대로 동중서은 제이서을 주장하면서 왕이 잘못된 정치를 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 말했습니다. 
왕충은 이 또한 거짓이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에는 하늘이 주는 벌이라는 것은 없었다.
순박해서 서로를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혼란해져 서로를 비난하고 재난이 생기면 그것을 버리라고 여기니 이것은 단지 사람들 마음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하늘의 뜻이니 어쩌니 해봤자 정치적으로 이용한 도구였을 뿐이었죠. 
다음으로 기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왕충은 모든 만물은 원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원기는 맑고 탁함이 뒤섞인 상태입니다.
흐릿하고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지각도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원기를 가지고 있는 하늘은 목적과 의도가 없습니다. 
그는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유학자들은 천지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이 또한 허망한 말이다. 
부부가 길을 합할 때 단지 정욕에 이끌린 결과로 의도치 않게 자식이 생긴 것이다. 
이렇듯 만물은 우연히 생길 뿐 어떤 목적이나 의도는 없다. 
기는 단지 모이고 흩어질 뿐 다른 의미는 없었죠.
왕충은 귀신의 존재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은 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로 이루어진 만물은 개별적인 것이었죠. 
짐승은 죽어서 귀신이 되지 않는데 사람만 죽어서 귀신이 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기가 흩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지각도 없고 귀신도 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왕충이 생각한 기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는 본성론을 이야기합니다.
왕충은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참고해 성선 악혼설을 주장했죠. 
본래 본성에는 선과 악이 둘 다 있다는 말입니다. 
선을 기르면 선해지고 악을 기르면 악해진다는 뜻이죠. 
성유선유학설이라고도 합니다. 후천적인 교화가 필요하다는 의미였죠. 
전환시대 동중선은 하늘과 사람의 필연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후한시대 왕충은 필연을 끊고 우연의 철학을 이야기했죠.
왕충이 생각한 자연처는 무이자연했습니다. 
그가 도가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의도나 목적 없이 스스로 그러한 존재였으니까요. 
우연히 발생한 현상에 괜히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었죠. 
길흉화복도 예언으로 어찌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은 우연의 연속일 뿐이죠. 그는 논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어질일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화와 복을 만나는 것은 우연이다.
하는 일이 옳을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산과 벌은 우연적인 것이다. 적을 만나 죽거나 살 수도 있고 설리를 만나 해를 입거나 입지 않을 수도 있다. 
대체 무엇이 거짓이고 참인가 모든 것은 우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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