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순자의 성악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by 로이인랑 2022. 12. 23.
반응형


가뭄이 들면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냅니다. 
그럼 신기하게도 비가 오죠. 어찌 된 일일까요. 
이를 두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는 온다. 단지 형식을 갖추고 위안을 삼을 뿐 실령스러운 것이라 여기면 안 된다 그 밖에도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나고 별이 떨어지거나 나무가 울면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드물게 나타나는 물리적인 변화일 뿐
괴상하게 생각할 순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느 시대에나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알 수 없는 자연 현상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죠. 
사람들이 하늘에 소원을 빌거나 원망할 때 그에게 하늘은 의지가 없는 자연물로 생각했습니다. 
세상 일은 하늘에 기대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헤쳐나가는 것이라 생각했죠. 
그는 바로 순자입니다. 순자는 본래 이름이 순황입니다. 
높여서 순경이라고도 부릅니다.
손경 손경자라고 기록된 경우도 있는데 이는 전안 선재 이름 유순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손자는 전국 시대 조나라 출신입니다. 
생물 연대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도 대략 기원전 3 3년에서 기원전 238년까지 살았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그는 육아 인물로 분류됩니다. 순자는 15살에 제나라로 유학을 갑니다. 
당시 제나라 수도인 임치
도성에 직문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 학관을 지어 직학궁이라 불렸습니다. 
거기서 활동한 이들을 지하 학사라고 합니다. 
이들은 제자백가 사상을 배우며 학문을 다듬었죠. 
다양한 인물들도 모였으며 과거에 맹자도 머물렀었습니다. 
맹자보다 한 세대 뒤 인물인 순자도 직화 학사 중 한 명이었죠. 
순자는 여기서 제자백가 학문을 두루 섭렵했습니다. 
대략 총 20년간 여기에 머물렀죠
게다가 지카학궁에서 죄주라는 직책을 세 번이나 역임했습니다. 
죄주는 제사를 주관하는 자리인데 그들 중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맡았습니다. 
수장격이라 볼 수 있는 최고 직책이었죠. 
순자는 지카학궁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당시는 전국 시대였기 때문에 혼란했습니다. 
순자가 지카학궁에 약 10년 정도 머물렀을 때였죠. 
무슨 일인지 순자는 잠시 제나라를 떠나 있었습니다. 
마침 제나라는 공격받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됩니다. 
때문에 지카학궁은 잠시 해체되기도 하죠. 
나중에 제나라가 힘을 되찾고 지카학궁이 다시 세워집니다.
순자는 다시 돌아와 죄주 직책을 맡게 되었죠. 
난세 속에서 순자는 가끔씩 타국에서 지냈지만 결국 제 나라로 돌아옵니다. 
순자는 대략 40대 중반에 잠시 진나라에 방문합니다. 
진나라 왕과 재상을 각각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죠 그는 왕도의 중요성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앞시대 맹자처럼 강경하게 왕도만을 주장하진 않았습니다.
순자는 왕도가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패도를 인정하기도 했죠. 
왕도는 덕으로 다스리는 덕치 패도는 힘으로 다스리는 법치를 의미합니다. 
순자는 필요하면 패도를 행하고 그 위에 왕도를 놓는 선왕 후패의 입장에 있었던 것이죠. 
순자는 제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다시 죄주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렇게 50대 중반이 되었죠. 그런데 순자는 제 나라에서 모함을 받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적인 갈등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때 초나라 재상이 순자를 초대했고 순자는 이후로 제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게 됩니다. 
순자는 초나라에 가서 관직을 얻습니다. 
난릉이라는 곳에서 현령으로 지냈죠. 얼마 뒤 초나라 재상 신군과 갈등이 생겨 잠시 떠나 고향인 조나라로 가기도 했지만 결국 순자는 다시
초나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냅니다. 약 60대부터 10년 동안 관직 생활을 하며 제자들을 기르는 데 힘썼습니다. 
여러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 중 한 비와 이사가 있었죠. 
이사는 순자 밑에서 2 3년 동안 배우고 집 나라로 떠났으며 한비는 좀 더 배우다가 한 나라에 돌아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순자는 그렇게 말년을 보냅니다. 그런데 초나라 재상 춘신군이 피살되는 사건 생깁니다. 
이 여파로 순자는 관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계속 학문을 쌓으며 지냈죠. 
그리고 머지않아 순자는 노환으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 유가사상가입니다. 
그는 제자백가 학문을 다양하게 수용 및 비판했으며 잔혹했던 전국시대에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죠. 
이제 그가 어떤 사상을 펼쳤는지 쉽고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순자는 유가사상가입니다. 공자 사상 중 특히 예를 발전시켰으며 사회질서를 위한 예치로 다듬었습니다. 
덕치와 법치 그 중간 단계라고 볼 수 있죠 이는 맹자와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맹자는 의를 내세워 왕도를
주장했고 하늘이 내려준 선한 마음을 발현시켜야 한다고 했죠. 
내적인 것인 마음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자에게 하늘은 그저 자연물에 불과했습니다. 
하늘과 마음은 상관없는 것이죠. 때문에 외적인 것 즉 예로서 사회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자가 말한 예는 마치 법이나 제도에 가까웠죠 성악설을 주장한 배경인 것입니다. 
공자 사상을 맹자와 순자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죠. 
쉽게 말해 맹자는 이상적인 사상으로 순자는 현실적인 사상으로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순자 사상을 핵심 키워드로 쉽게 알아보겠습니다. 
천론 성악설 예치 세 가지입니다. 먼저 천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순자는 하늘에 어떤 의지도 없다고 말합니다. 
현대 과학을 배운 우리는 당연히 하늘이 자연물인 것을 알죠. 
하지만 때는 기원전 3세기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늘은 알 수 없는 커다란 존재였죠.
때문에 기후 변화가 일어나면 두려워하거나 실망스러운 의미를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순자는 알 수 없는 자연 현상에 대해 괴상하게 생각할 수는 있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죠. 
세상 일은 인간들끼리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사람을 분리시킨 천인지분이라고 합니다. 
유교는 하늘과 사람이 합일체라는 천인합일 사상이 있습니다. 
천인 지분을 주장한 순자가 유교에서 2단이 된 결정적인 이유죠
그렇다고 순자가 하늘을 무시하진 않았습니다. 
하늘에 기대는 것보다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환경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보았죠. 
인간의 본성 또한 하늘이 내려준 것이 아닌 날 때부터 이기적인 성질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성악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순자는 그의 책 성악편에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순자는 성악설로 유명해졌죠. 하지만 단순히 본성이 악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인 기질이 있으니 이를 가만히 놔두면 안 되고
교육을 통해 본성을 교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적으로 생긴 이기적인 본능이 사회적으로는 악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악한 본성은 충분히 변화가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이를 화성 기위라고 합니다. 본성을 변화시키려면 인위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악설을 말한 것은 사실 교육의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한 발판인 셈이죠.
순자 책 첫 편부터 학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쇠부치가 숯돌에 갈리면 날카롭게 되듯이 사람도 다듬는다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고 말이죠. 
반대로 이기적이며 질투하고 미워하는 이 본성을 그대로 놔두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진다고 합니다. 
이를 바로잡을 방법으로서 순자는 예를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반드시 규범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순자는 예라는 도구를 이용해 사회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욕망을 절제하는 도구로서 말이죠. 
그래야 혼란을 방지하고 질서가 잡힌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라는 것을 지켜야 할 규범처럼 바라봤죠. 
순자의 제자 한비는 여기서 더 나아가 법과 학문을 집대성합니다 한비야말로 성악설에 더 가까운 인물이죠. 
그는 오직 법과 술책으로 사회를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강제적인 면이 강했죠. 그래도 순자는 본성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예라는 수단은 과도한 욕망을 절제하는 한계선이며 그 안에서 자율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예치 국가를 추구했죠. 
순자가 육아와 법가 사이 덕지와 벅지 사이에 있는 이유입니다. 
공자가 말한 예보다는 규율적인 것이며 법가의 법보다는 자율적인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순자는 유가 학파로 분류가 됩니다. 
그는 법치만으로는 치국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봤으며 법보다 얘가 앞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 밖에도 예악 즉 예를 강조한 만큼 악을 강조했습니다. 
음악을 뜻하죠. 음악은 사람과 뗄 수 없는 즐거움이며 백성들을 화목하게 하고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다고 믿었죠. 
삭막한 법치 사회가 가지는 약점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 시대를 걸쳐 중세 유학자들은 맹자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성리학을 완성시킨 주자에 의해 맹자는 공자의 아성으로 격상됩니다. 
반대로 순자는 그들 사이에서 이단으로 취급받게 되죠.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가 하늘을 의지가 없는 자연물로 취급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공자의 적통은 순자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공자는 인과 예를 강조했습니다. 순자는 공자의 예를 확대시켰고 배움을 강조했기 때문이죠. 
오히려 맹자는 공자 사상을 변질시킨 인물로 보기도 합니다. 
뚜렷하지 않은 공자의 인성론을 의를 내세웠기 때문이죠. 
그것이 발전인지 변질인지는 의견이 다양합니다.
중세에 유행했던 유교를 보면 맹자가 어울리겠지만 고대의 공자 사상만을 본다면 시각이 달라질 수 있죠 때문에 순자는 청나라 때 와서야 이단이란 딱지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근대에 들어서 재평가가 되고 있는 인물인 것이죠. 
순자는 기원전 인물임에도 놀랍도록 합리적인 인물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미신을 믿었지만
순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도 점을 치거나 관상 보는 일에도 의미를 두지 않았죠. 
또한 그는 심오한 철학도 가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물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고민했죠. 
이는 순자 책 해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순자의 인식론을 확인할 수 있죠 순자라는 책은 총 32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순자가 가진 생각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메모
주요 키워드Search keywords순자Search keywords맹자Search keywords성악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