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고 지금 얘기를 했는데 저는 윤동주 씨 집의 제목이 이거였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아니라 사실은 그 윤동주 선생님의 시를 읽다 보면 인간에 대한 연민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그런 거잖아요.
이 제목 딱 보는 순간 아이 윤동주 시집이 잘못했네.
지워놓고 나서 보니까 사실 하늘이라는 것이 보통 많은 분들이 우주를 하는 하늘이고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간이 떠오르거든요.
바람이 불기 위한 네 그러니까 분다는 것은 운동을 하는 것인데 그렇죠 약자한테는 운동은 시간을 필요로 하거든요.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거고 책에도 있지만 이제 모든 물질이 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저 제목은 이제 물리학자인 저한테는 우주와
시간 공간 그리고 물질 물리학자가 다루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제목 일 수 있더라고요.
저 앞에 있는 부분이 나머지 우주의 모든 걸 다 담당을 하고 플러스 인간 결국은 인간은 따로 떨어뜨려내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네 그래서 정말 제목이 결국은 되게 잘 지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김상욱 선생님한테는 제일 많이 따라다니는 게 다정한 과학자이래요.
진짜 다정하십니까?
그것도 진짜 약간 오해가 있는데 말씀신잡을 찍을 때 유시민 선생님께서 이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김상욱 박사한테 물리를 배웠다면 물리가 좀 더 제정스러웠을 텐데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게 이제 말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다정한 것이 물리가 아니라 다정한 것이 이제 김상호인 거죠.
그 분이 되기 시작한 하길래 어디 가면 저를 소개할 때 제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다정한 물리학자 입니다.
자꾸 하다 보니까 저도 이제 그렇게 믿게 되고 사람들도 그렇게 믿게 되는 듯한 느낌이 제가 보는 저는 다정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 원래가 그 물리학이라는 학문도 그렇고 제 성격도 그렇고 이렇게 사람들을 만났을 때 다정다감하게 막 하지는 잘 못하는 성격이라 많은 분들이 저를 이제 처음 보실 때 깜짝 놀라시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죽음이 혹시 두려우신가요? 과학자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솔직히 얘기하면 죽음을 거의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직 그 죽음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기에는 저 적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고 철학적이거나 그거 가지고 뭐 글을 써야 되거나 그런 식으로 죽음을 접근하고 있지 아직 그게 저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잘
아 그러면 저는 반전을 해야 겠군요.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래봬도 제가 이제 70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현실적으로 이렇게 생각해 봐도 이제는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개인적으로 이제 좀 하게
됐죠. 근데 선생님도 이 책에서 죽음에 대해서 또 많이 얘기하셨지만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할까 그래서 저는 뭐 그렇게 생각은 요즘 하기 시작했는데 두려움이 있거나 뭐 이런 거 거의 없어요.
되게 담담하게 맞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심지어는 가장 깔끔한 죽음이 뭘까 생각을 자꾸 해보거든요.
심혈관 질환이 제일 깔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에 심장이 딱 맞으면 끝나잖아요.
제가 이렇게 이제 요즘 까불고 있으니까 제 의사 선생님 친구가 확실하게 죽으면 괜찮은데 설 죽으면 아주 곤란해.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죽음이 있다는 것이 사실 저는 잘 모르지만 수많은 철학과 사상에서 가장 인간이 갖는 중요한 어떤 특성과 연관돼 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무슨 뜻이냐면은 언제나 우리는 무언가 좋은 거를 찾고 나쁜 건 싫어하고 이렇게 좋고 나쁨이 있잖아요.
그게 사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인데 뭔가 좋다는 것, 뭔가 나쁘다는 것은 죽음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뭐 지금 나쁜 일이 있다고 하는데 죽음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영원히 산다고 그러면 나쁜 일이 한 100만 년 있어도 나머지 무한한 시간 동안 좋은 일이 있으면 되거든요.
무엇에? 가치라는 것이 유한성에 의존해요.
경제에도 그렇지만 무언가 유한할 때 그것이 의미를 갖게 되는 거지.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이 안에서 많은 사건들이 의미가 있고 좋고 나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죽음이야말로 어떤 뜻에서는 우리의 모든 가치를 만들어내는
근원에 있는 어떤 개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까미가 시지프의 신화에서 썼지만 모든 인간은 유연한 시간 지나면 다 죽고, 죽은 만큼 자행한 것도 없고 죽음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대체 우리가 왜 살아야 되는지 허망하다는 거예요.
결국 일해봤자 다 죽을 텐데 뭐 하러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할까? 그래서 까미가 뭐라고 그러냐면은 철학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은 하나밖에 없는데 우리는 왜 자살을 하지 않는가
아무 의미 없는 이 세상에서 왜 살려고 하는가라는 그런 뜻이죠.
빨리 죽으면 끝날 거를 왜 죽기 전까지 고민하고 죽을까 봐 두려워하고.
그런데 여러분 다 아시지만 시프의 신화의 결론이 뭔가요? 아무 의미 없이 돌을 굴려 올리고 또 굴려 떨어지고 또 굴려 올리고 제3자가 볼 때는 아무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프는 즐겁게 그 일을 하면 된다는 거거든요.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사실 자연과학은 우리에게 때로는 어떤 삶의 의미를 줄 때도 있고 감동을 줄 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세상의 팩트를 다루는 학문이라 그 자체에는 어떤 가치는 의미가 없거든요.
답은 그냥 시지프처럼 행복한 게 무엇인지를 본인이 정의하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간이 쭉 해오던 방식이고. 하지만 정말 다시 죽음을 시작하면 결론은 언제나 똑같죠.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이성적인 답이 또는 과학적인 답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냥 사는 것
시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뭐 아마 비슷한 답을 드리게 될 것 같은데 옥스포드에 가서 리처드 더킨스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의기투합한 지점이 하나 이기적 유전자에 관한 강의를 하고 나면 가끔 학생들이나 누가 찾아오죠.
그 삶의 의미가 뭐냐 나는 내가 내 삶을 뭐 이렇게 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뒤에서 유전자가 다 이거를 하고 있다는 거냐
그 얘기하다가 정현수가 저한테 묻더라고요.
넌 그럼 뭐라고 얘기를 해 주냐 저도 그 이기적 유전자 책을 독파를 하고 난 다음에 한동안 굉장히 힘들었어요.
너무 허무주의에 빠져가지고 왜 이렇게 애쓰고 살아야 되는지 어차피 내 유전자가 나를 만들어 놓고 언젠가는 나를 죽이고
또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고 뭐 그런다는데 내 삶의 의미가 뭐냐 이랬는데 이 학문을 계속 하다가 보니까 비슷한 책들을 많이 또 읽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조금씩 다른 관점을 배우고 뭐 이러고 난 다음에 어느 순간에 묘하게 편안한 마음이 생기는 데가 있더라고요.
어차피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데 내가 뭘 걱정할 게 있나 나는 그냥 이 삶에 던져줬고 그냥 신나게 잘 살다가 가라고 그럴 때 그냥
가면 되지 뭘 내가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할 게 있을까 어느 순간에 그런 단계에 이렇게 진입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나 그런 어려움을 토로하는 분들에게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읽고 그러면 어느 순간에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 그 얘기를 이렇게 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거 나도 써도 되냐 그래서 내가 아이고 쓰라고 그랬었는데
유전자의 결정론이 사실 처음에는 되게 저도 우울한 얘기였지만 크게 충격을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사실 물리학자들은 더 무시무시한 만큼 그렇죠
우리 가면 더 무시무시한데
우리를 결정한다 이기적 유전자가 유전자도 원자로 되어 있는데 원자들의 움직임일 뿐이에요.
인간의 행복이란 가치는 저는 창발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유전자에서 아무리 자기가 살아남으려고 뭔가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 인간의 개체는 또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것이고 또 이 사회에서 또 창발된 많은 것들이 있고 우리의 이 문화 속에서 만들어낸 행복이나 이런 새로운 의미라는 또 다른 개념들은 또 창발된 것이고
수많은 하이라키가 있는데 어느 지점이라 하더라도 답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역시나 그 인간의 의미나 가치나 행복은 또 다른 레벨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참이고 진실이고 하지만 그것과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거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팩트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 인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과학을 배워야 할
다정하게 얘기해 주십시오.
과학의 지식이 중요하다는 그런 표현을 과학의 사고방식, 과학적 태도라고 부르는 건데요 과학적 태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보기에 과학이 다른 많은 학문 분야와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과학은 그 방법이 다른 겁니다.
그 방법이 과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했던 수많은 학문 분야와 상당히 달랐기 때문에 대상을
바꿔왔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과학의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신다면 또 이것도 어려운 주제 과학적인 어떤 답, 과학적인 결과라는 것은 그것이 물질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전 생각해요.
즉 물질적 증거에 기반을 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 물론 이 물질적 증거라는 것에 단서들이 또 몇 개가 붙어야 되는데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해야 되고 그런 증거들이 있으면 그거는 과학적인 거고 그런 증거가 없으면 그건 과학적인 게 아닌 거죠.
그래서 사실 많은 문제들을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어요.
어떤 것들은 물질적 증거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있잖아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귀신은 존재합니까? 증거가 없다면 그건 과학적이지 않은 것 뿐이죠.
진짜 있는지 없는지 몰라요. 과학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없다라고 단정을 짓지 않잖아요.
증거가 없을 때 우리는 그냥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그 방법과 이런 태도가 과학에 중요한 것인데 사실 이것이 얼핏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이렇게 한다는 뜻은 누가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책에 쓰여져 있는지 이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에요.
자연스럽게 권위보다는 증거 실험을 더 중요시하게 되는 그런 태도가 되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사실 물론 다른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사회에 특히나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은데
그냥 재밌으라고 도전을 한번 해볼까요? 선생님의 지금 정의는 자연 과학만 얘기하는 거 아닐까요?
자연 과학만 이야기하는 건 논리적인 해도 이런 건 사실 과학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철학은 아주 옛날부터 논리적으로 어떤 사고를 해서 결론 내리는 것을 추구해 왔고 과학은 그 흐름의 가치 안에 들어있어서 어떻게 보면 철학의 일부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자연과학이 특별했던 것은 그 방법을 자연에 사용한 거죠.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저도 하나 좀 보태고 싶은데요.
선생님은 지금 본질적인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신 거고 현실적인 분야에서는 우리가 과학을 알려야 하는 아주 현실적인 그런 게 저는 하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과학은 참 얄궂은 운명을 갖고 태어났어요.
과학이 없이는 현대사회가 존재할 수가 없는데 과학은 우리 과학자가 자기 입으로 중요하다고 얘기 안 하면 아무도 중요한 줄 몰라요.
이해를 잘 못하니까.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계속 광 예산을 줄일 가능성이 훨씬 큰 거예요.
미국에서 저 공부할 때 제 지도 교수님들 보면 그 바쁜 분들이 과학 알리는 거에는 시간을 절대로 아끼지 않으시더라고요.
제 지도 교수님 월성 교수님이 법대 과목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쳐들어가서 항의를 했어요.
왜 우리는 안 가르쳐주시고 그런데 그때 아주 명확하게 우리한테 답변하셨어요.
평소에 굉장히 온화하신
그런 분인데도 저 법대 놈들을 제대로 가르쳐 놓지 않으면 쟤네들이 이 다음에 사회에 나가서 여러 가지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는데 과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면 아주 엉뚱한 결론들을 내린다.
나라도 저쪽 분야의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선생님이나 저나 우리 사회의 이른바 과학 커뮤니케이러들 사실 뭐 우리 연구만 해도 되는데 우리 이렇게 애쓰고 살잖아요.
알리려고
쓰고 사는 그 이유가 어떻게 보면 떼법이 통하는 말도 안 되는 사회에 좀 멈추고 증거에 입각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우리가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한다.
과학적 방법론 이런 것들을 많은 분들에게 심어보려고 이렇게 애쓰는 거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 이 시대에 과학이 가장 중요한 많은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잖아요.
인공지능도 그렇고 얼마 전에 그 팬데믹도 그랬고 인류 전체의 많은 문제들이 이제 과학의 문제인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고 민주주의가 지금 우리가 믿기로는 가장 좋은 정치 체제인데 민주주의라는 것에 중요한 가정은 가수의 의견을 모아서 그 길로 가면 그것이 올바른 결정일 확률이 크다라고 믿는 거예요.
근데 여기에 깔려 있는 중요한 가정은
다수의 의견이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다수가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가 예를 들어 투표를 할 때에도 후보들이 1, 2, 3, 4가 있으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각자가 선택을 했을 때 그 결과가 모여서 어떤 한 사람을 고르게 되면 그것이 아마 그들이 결정할 최선의 답일 수가 있는 것인데 만약 그 사람들이 그냥 후보가 누군지 모르게 된다면 그냥 나는
진짜 이 가족이니까 2번 찍을래 3번 찍을래 2번 찍을래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린다면 민주주의야말로 최악의 정치 제도가 될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오는 당연한 귀결은 각자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서 다들 어떻게든 이게 저게 오라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데 과연 과학 기술에 대해서 그런 태도를 갖는가 만약 우리 모두가 완전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지 이런 식으로 했을 때 그것이 과연 다스의 결정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정치사회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어떤 내용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자격이 없는 거죠.
그래서 선거를 할 때에도 후보가 누군지를 알아보듯이 인류의 중요한 문제인 과학기술의 중요한 어떤 이슈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이라도 자신의 의견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과학을 알아야 하고 우리는 알려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썸네일 나오는 거죠 자준 교수님하고 할 때 경제를 모르면 민주주의 없다 과학을 모르면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생각하는 시민들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저는 민주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맞는 제도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인간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그 전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하는 거는 정말 많은 교육과 깊은 생각을 통해서만 나오는 결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이게 계속 굴러가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끝없이 그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가정이 필요한데 좀 약간 두려운 것이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는 거를 피하기 시작하는 sns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어요.
소수자 문제 나는 소수자가 아니니까 생각 안 하겠다 그럴 때 과연 소수자 문제에 대한 국가의 결정이 민주적 결정이 올바른 답을 낼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과학만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 뭐 어차피 장 선생님하고도 말씀하셨다.
자신의 즉각적, 직접적 이익이 걸리지 않은 이슈에 대해서도 생각을 깊게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그런 깊은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다 알았으면
얼마 전에 우리 편 편향이라는 거에 대해서 잠깐 얘기했는데요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너무나 빼도박도 못한 정말 명확한 증거들이 앞에 있는데도 그걸 그냥 굿세게 아니라 그러는 사람들 아니 일단 자기 위치를 다 정해놓으면 증거를 들이대도 보려고 하지도 않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분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증거가 차고 넘치니까
점점 지금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기후변화의 문제만이 아니라 거의 우리 사회의 모든 이런 문제들이 시간이 가면서 과학자들이 증거들을 계속 축적해 나가면 저절로 줄어 나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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