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믿음 엔진이라는 게 있다는 거예요.
생각해 볼 만한 요소가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렇게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종교에서 얘기하는 그 설화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잖아요.
평생 개미 연구하면서 그리고 다른 동물도 연구하면서 왜 다른 동물 사회에서는 종교가 없을
그런 생각 되게 많이 해봤거든요. 종교가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 밖에 없거든요.
우리가 우리 인간은 우리하고 다른 동물하고 어떻게든 이렇게 차별화하려고 무지하게 애쓰잖아요.
가장 차별화할 수 있는 요건이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일 거예요.
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형태의 문화가 인간 사회에는 어디에나 있잖아요.
그게 없는 인간 사회는 아마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뒤져봐도 개미 사회에 무슨 목사님이 계시거나 흰개미 사회에 저 스님이 계시거나 이런 거 아니거든요.
저는 어쩌다가 불교 공부를 조금 이제 한 거죠.
기피하지도 못했지만 불교에 관한 책들을 좀 읽어봤고 작은 절들을 찾아다니면서 스님들하고 밤새 얘기도 좀 해봤고 40년 동안 지금 독실한 기독교인 아내를 따라서 교회에
다녀본 사람으로 두 종교에 대해서는 이제 조금 귀동량을 약간 한 편인데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도 책으로 아마 이렇게 좀 읽어보면 사실은 종교 거의 모든 종교가 교리상으로 보면 포용하고 사랑하고 또 남을 이해하고
다 그래요. 그렇지 않은 종교가 거의 없는데 실제로는 종교만큼 배타적인 그게 없잖아요.
인류 역사의 전쟁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들이 전부 종교 전쟁 드리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믿음이 다른 집단하고의 싸움은 참 힘든 건가 봐요.
이게 참 굉장한 모순이에요. 종교 자체가 가르치는 교리는 굉장히 화합을 가르치면서 실제로 종교와 종교 간의 분쟁은 더 할 수 없이 극렬한 그런 문제 때문에 종교가 우리 인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걸 강력하게 주장하는 건데 더킨스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현실적으로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거고 참 이 문제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류 사회에서 종교가 없어질 리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종교를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게 현명한 일인지 아니면 종교를 어떻게든 사회와 잘 융화되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지 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옛날 원시종교는 어쩌면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공포의 대상이었잖아요.
그래서 공포의 대상에 대한 반향으로 종교가 탄생했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기술을 소나기에 거머쥐면서는 그렇다면 종교는 깨끗이 사라져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이건 사실은 그런 문제로 이해하기보다는 스캡틱이라는 잡지가 있는데 그 스켑틱의 발행자 마이크로 쇼라는 그 양반은 어 이런 설명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믿음 엔진이라는 게 있다는 거예요.
그게 이제 유전적으로 그 프로그램이 된 어떤 리듬 엔진이라는 게
있다는 거예요. 산길을 걷다가 나뭇가지 같은 게 부러지는 소리 같은 우지끈 소리가 났는데 그때 우리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니까 분석할 수도 있어요.
그 순간에 아 이 소리의 크기로 봐서 말이야 다람쥐가 이렇게 뭐 하다가 그런 것 같은데 이건 뭐 별 건 아닐 거야.
근데 만일 그게 호랑이였으면 잡아 먹히는 거잖아요.
우리 인류는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에 일단
놀래가지고 뜁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그런 데서 합리적으로 행동한답시고 소리의 크기나 뭐 이런 걸 분석하고 움직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상당수 되게 죽었어요.
그 분석이 한 번이라도 잘못되면 그 양반은 죽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분들은 후손을 별로 못 남긴 거고 그 순간에는 일단 튀고 보는
그런 다음에 나중에 아 별거 아니었네 그렇게 반응한 조상들이 자손을 많이 남겼기 때문에 우리는 다 그런 사람들이라는 거죠.
이거를 저 화재 경보기 이론이라고도 부릅니다.
우리 인류는 그런 식으로 진화해 왔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엉뚱한 것도 우리는 자꾸 믿게 된다.
가끔 저 인터넷에 보면 뭐 사람 얼굴을 봤다는 등 그런 거를 사람들은 왠지 믿고 싶어 하는 믿음 엔진이라고 마이클 처음에는 표현을 한 거구요.
그런 차원에서 어쩌면 종교도
없어지지 않는 그런 믿음 엔진의 현상으로 계속 나타나는 건 아닐까 뭐 생각해 볼 만한 요소가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렇게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종교에서 얘기하는 그 설화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하는 걸 보면 어떤 우리 인류 문화의 현상 인 거고요.
아무래도 부부가 종교가 같은 게 편안하겠죠.
저도 그런 부부 제법 알고요. 근데 뭐 사실은 제법 안다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의미로는 저도 그렇거든요.
제가 무슨 종교가 원래부터 있었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데 저희 어머니가 뭐 한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저 입시장에 넣어 놓고는 그냥 그 길로 절로 달려가셔서
계속 절하시면서 우리 아들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비치던 분이에요.
그리고 저한테 그 시험 보기 전에 관세음보살 세 번만 눈 감고 이렇게 하라.
그러다가 제 아내를 만났습니다. 제 아내는 외할아버지가 우리나라
초창기 목사님 유명한 목사님 중에 한 분이셨을 정도로 굉장히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여성이고 결혼 조건으로 저도 교회를 가겠노라 더 대단한 거는 저희 어머님인데요.
저희 어머니는 그렇게 오랫동안 절에 다니시던 분이 제가 결혼할 여성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난 다음에 몇 달 후에 저희 어머니가 교회를 가기로
결정을 하신 겁니다. 참 놀라운 일이죠.
그래서 주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시냐 그러니까 한 집안에 종교가 둘이 있으면 행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종교를 따르시기로 하신 겁니다.
참 참 그거는 저희 어머니로서는 굉장한 결심이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제 결혼식 날 우리나라의 유명한 목사님이
주례를 해주셨는데 문중의 어른들이 다 오셨는데 네 그분들이 결혼식장으로 들어오면서 전부 받아 게 찬송과 이렇게 프린트한 거 다 받으셔서 같이 찬송가도 부르시고 다 그렇게 결혼식을 했습니다.
근데 그게 굉장한 문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저희 어머니가 그냥 한 번에 평정을 하신 거죠.
나도 기독교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바람에 아무도 문제 제기를 심지어는 저희 아버지도 문제 제기를 못 하고 조용히 결혼식을 마쳤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겠다 하는 생각해 봅니다.
저 한때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이 한 10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막 그랬잖아요. 그때 제가 독일 역사학자 하라 미러가 쓴 책을 같이 이렇게 비교하면서 서평을 써본 기억이 납니다.
독일 학자는 한 문명이 한 문명을 집어삼키고 뭐 이런 형태로 벌어지는 거 아니다 서서히 스며들면서 두 문명이 시간이 가면 알게 모르게 이렇게 섞이고 이런 면들이 굉장히 많다
저는 그렇게 믿거든요. 때로는 문명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명이라는 게 그렇게 뭐 몇 시간 만에 부딪혀가지고 막 스파크가 일어나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굉장히 오랜 시간 두 문명, 두 문화가 이렇게 겹치기 시작하는 거니까 저는 오히려 헌팅등 교수의 주장보다는 하트 뮬러 교수의 판단을 저는 오히려 따르는 편인데요.
뭐 제가 생물학을 한 사람이라서 잘못하면 제가 말 끝마다 해답을 똑같은 해답을 줄 것 같다 생각하는 걱정스럽지만 다양성 이라는 키워드를 좀 얘기하고 싶어요.
제가 평생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자연이 찾은 최종 답안이 전 다양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뭐 자연인이라는 존재가 무슨 생각할 줄 아는 존재라서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야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게 다양성 아니겠냐 이런 건 아니지만 저 대자연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현상들이 그 안에서 벌어지면서 언제나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건 다양성이라는 형태로 늘 나타나더라는 거죠.
그렇다면
그 다양성이라는 게 갖는 엄청난 어떤 힘이 있을 거라는 거를 우리가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생기면 상대를 어떻게든 제압해야 되겠다라는 그래서 하나로 통일해야 되겠다라는 그런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하게 만들어 볼 수 있을까 하는 거를 노력해보면 결과적으로 굉장히 살만한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근데 저랑 아마 제가 이런 얘기 하면
반대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실 텐데요 뭐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 지금 자꾸 외국인들이 들어와 있고 심지어는 회교 믿는 분들도 와 있고 뭐 그분들이 사원 짓는다는 거를 주민들이 막 반대하고 뭐 이런 상황에서 저 양반은 골치 아프게 왜 자꾸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이렇게 복닥거리게 만들려고 그러나 다양성이라는 건 우리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세상은
시간이 가면 언젠가는 이전보다 점점 다양해질 수밖에 없어요.
다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상하게 그 도도한 흐름 속에서 자꾸 다양성을 줄이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사는 것 같아요.
일사불란해야 되고 질서정연해야 되고 그런데 그런 사회는 건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사회를 이뤄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양함을 즐길 줄 아는, 즐기려는 그런 마음의 태도가 참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저는 늘 합니다.
그래서 종교의 문제에서도 혹시 우리가 할 수만 있다 그러면 오히려 다양한 종교가 있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저는 합니다.
이렇게 끝내면 종교를 제가 폄하하는 것 같아서 한마디 보태면 제가 40년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느끼는 거는 종종 교인들이 부러울 때가 많아요.
굉장히 어려움을 당했는데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더라고요.
이런 어려움조차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다 하는 것을 믿으면서 그걸 이겨내는 모습을 종종 보거든요.
그걸 보면 하 참 놀랍다 그래서 그 뜻밖의 그런 역경들을 비교적 쉽게 이렇게 헤쳐나가는 걸 보면 부러울 정도고요.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하는
선한 영향력이 분명히 있잖아요. 저는 제 지도 교수님, 수 교수님 하신 말씀을 따르고 있어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두 축은 종교와 과학이다.
그게 저는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하고요.
종교를 말살하려고 하거나 종교를 배척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요.
종교와 과학이 함께 손을 잡고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공존을 추구하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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