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란 고대 동양철학의 근본이죠.
수많은 선생님들과 수많은 학파라는 뜻입니다.
다양한 학파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네 가지 학파를 시대순으로 정리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고대 중국으로 갑니다.
춘추전국시대 500년 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난세 중의 난세였죠.
난세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강력해지거나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를 어떻게 잘 운용하는가였죠.
때문에 인재들이 필요했고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제자백가의 첫 번째 시작 공자입니다.
공자는 유아 학파의 시초입니다. 공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평화로웠던 옛날로 돌아가자고
그러려면 예를 행하여 인을 실현하는 군자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틈만 나면 인이라는 것을 주장했는데 대체 인이 무엇일까요.
넓은 의미의 사랑입니다. 인류의 같은 것이죠.
사랑은 가족 관계에서 가장 끈끈하게 형성됩니다.
이 사랑을 점점 퍼뜨려 온 세상을 사랑으로 버무려진 아름답고 이상적인 세상을 꿈꿨지요.
하지만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라는 것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장례와 제사를 지냄으로써 내 진실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죠.
특히 부모가 죽으면 자식은 3년상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님께 최소 3년은 사랑받았으니 다시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이유죠 이렇게 진실된 마음으로 예를 행하여 인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는 난세였고 필요한 건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부국강병이었지 인이니 덕이니 운운하며 군자 타령하는 주장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을 테니까요.
공자는 벼슬을 얻기 위해 14년 동안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결국 어디서도 채용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죠
그리고 남은 여생을 제자들을 기르는 데 힘썼습니다.
제자백가 중 가장 큰 규모의 학파를 이루었죠.
공자가 죽고 난 후 한 정의로운 사내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묵자입니다. 두 번째 제자백가는 바로 묵자입니다.
묵자는 묵가라는 학파를 일구었습니다.
처음엔 유가를 배웠지만 점점 자신만의 학파를 세우고 공자를 신랄하게 비판하기에 이르렀지요.
묵가에서 주장한 핵심 내용은
겸해입니다. 모두 다 동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죠.
앞서 공자도 사랑을 주장했는데 묵자와는 좀 다릅니다.
공자는 가족으로부터의 사랑을 시작으로 점점 퍼져나가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차별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묵자는 가족이나 동네 사람이나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묵자에겐 평등사상이 깔려 있었죠. 그들은 평화와 신리를 추구한 기술자 및 군사집단이었습니다.
이익을 중요시했으며 전쟁을 절대 반대했습니다.
먼저 공자가 주장한 3년상은 사치 및 인력 낭비라 하여 반대했습니다.
농사 지을 때 지어야 하는데 3년상 때문에 일손이 빠지면 손해겠죠.
그리고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합니다.
전쟁이 나면 백성들만 크게 피해를 입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로 가서 말로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면 집적 무장을 하여 공격받는 약한 나라로 가서 지켜냅니다.
이들이 군인이었던 이유죠 때문에 묵자의 책 마지막 장에는 수성술에 관한 장이
손자병법에 버금가는 뛰어난 수성 기술들이 있어 묵과 병법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당시 여러 나라들은 묵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 밖에도 묵자는 근검 절약을 실천하고 사치를 줄여 모두가 잘 사는 나라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묵자를 바라본 어떤 사람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살아서는 죽도록 일만 하고 죽어서도 장례를 소박하게 치르니 묵가의 돈은 너무도 각박하다 바로 장자가 내린 평가입니다.
세 번째 제자백가는 도가입니다. 장자는 도가사상의 중요한 인물입니다.
앞서 등장한 공자와 묵자는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합니다.
그런데 장자는 이들과는 좀 다릅니다.
흐르는 시대 변화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았죠.
도가사상의 핵심은 무의 자연입니다. 인위적인 것을 거부했으며 자연스러움이 이치라고 보았죠.
또한 절대 자유를 추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제 아무리 높은 벼슬자리에 앉았다 해도 제사상에 올라가는 잘 꾸며진 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장자는 잠깐의 관리직 벼슬을 맡았다가 내려놓고 자신만의 학문과 자유를 위해 평생을 궁핍하게 살았습니다.
나라에서 벼슬을 주겠다 하여도 거부했을 정도였죠.
유명한 우하인 호좀몽이 있습니다. 어느 날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니 내가 나였는지 나비였는지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장자입니다. 인생은 한바탕 꿈일 뿐이라고 생각했죠.
장자라는 책에는 이런 우화들이 수많이 등장합니다.
이야기 하나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나뭇꾼들이 길을 가다 엄청 크고 오래된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나뭇꾼들은 이 나무를 베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나무의 질이 형편 없어 어디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무의 입장에선 이 쓸모 없는 덕분에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장자는 쓸모 없음에 쓸모 있음.
즉 무용지용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혼란해질수록 현실적으로 쓸모 있는 사상을 원했습니다.
때마침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이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법가들이죠.
마지막 네 번째 법가입니다. 제자가 중 가장 현실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입니다.
말 그대로 법을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죠.
오늘날 법치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시는 달랐습니다.
물론 그 시대에도 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법을 적용하는 대상이 백성이었고 귀족들은 훈계 같은 걸로 끝나는 그런 불공평한 법이었죠.
계급제사였으니까요.
그런데 법가가 파격적인 걸 들고 나옵니다.
모두에게 법령을 선포하고 이를 어기면 귀족이든 천민이든 공평하게 처벌받아야 한다고요 물론 왕은 제외합니다.
때문에 왕권 중심인 성격도 강했죠. 대표적인 인물은 한비자가 있습니다.
엄정한 법을 잣대로 신하들을 억누르고 교묘한 속임수 술로 속셈을 파악하는 등 법과 술을 이용한 정치를 내세웠습니다.
권모술수의 사상이었죠. 중국을 통일한 진시왕이 이 법과 사상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마침내 춘추전국시대는 법가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고 진나라가 통일을 하게 되죠.
그러나 법가의 인물들은 대부분 비참한 죽음을 당합니다.
법의 엄정함이 귀족들의 미움을 샀고 결국 왕권이 교체되면 바로 보복을 당한 것이죠.
한비자 이사 그리고 앞시대 인물인 상황 모두가 제명에 살지 못하고 보복을 당해 죽었습니다.
형벌이 많아지고 각종 음모로 죽어나간 인물들을 보면 피로 얼룩진 사상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의 제자백가 사상들의 논쟁을 백가쟁명이라고 합니다.
혼란했던 사회 속에 빚어낸 지혜의 정수들이지요.
동시대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있었고 인도에는 석가모니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인류의 사상이 폭발한 시대였죠.
어떤 철학자는 이 때를 축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제자백가는 사실 더 많은 사상과 인물들이 많습니다.
굵직한 줄기에서 설명하느라 생략된 부분이 많아 아쉽네요.
동양철학의 근본 제자백가에 대해 배워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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