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41년 한나라 황제에 오른 무제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왕권을 강화할 수 있을지 말이죠.
그는 앞시대 진시황제처럼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진나라는 가혹한 법으로 백성들의 원성만 샀죠.
한 무제는 그보다 좀 더 나은 그럴싸한 통치 체제를 갖고 싶었습니다.
선비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찾고자 했죠.
많은 학자들이 대책을 내놨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유가사상을 제시하면서 다른 사상들은 모두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상적 통일을 추구했죠. 무제는 마음에 들어 있고 이후 유교는 본격적으로 국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자가 제시한 유교는 조금 특이합니다.
대체 누구이며 어떤 사상을 말했을까요.
그는 바로 유학자 동중서입니다. 동중선은 기원전 176년부터 기원전 104년까지 살았습니다 한 나라 때 유명한 유학자였죠.
그는 어려서부터 육아 학문에 매진했습니다.
옛 고설을 공부하기 좋아했던 그는 한 번 연구에 빠지면 3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지런히 공부하는 학자였죠. 나중에 다섯 가지 육아 학문에 통달한 오경 박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행동 하나하나가 예법에 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주변의 많은 지식인들은 동중서를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글을 따르고 제자가 되었죠.
동중서는 제자를 가르칠 때 서재에 있거나 장막을 쳐 거리를 두어 가르쳤습니다.
때문에 동중서의 얼굴을 모르는 제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 황제에 오른 한무제는 선비들에게 글을 써 올리라고 합니다.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말이죠.
동중서는 유교 사상에 담겨 있는 글을 올렸습니다 한무제는 마음에 들어 세 차례나 질문을 했고
동중선은 한무제 입맛에 맞게 답해주었죠.
왕은 하늘이 내린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입니다.
권력을 가져야 하는 황제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명분은 없었죠.
동중선은 또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유예와 공자 사상을 배우도록 하고 다른 제자백과 학문들은 모두 없애버려야 합니다.
사상적 통일을 추구했죠. 한무제는 동중서가 마음에 들어 큰 벼슬을 내렸습니다.
또한 국가 통치 이념으로 유교를 채택했죠.
그리고 다른 제자백가 사상들을 배척하기 위해 유학을 배운 사람들을 위주로 관리를 등용합니다.
따로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빼어난 유학자들을 추천받기도 했습니다.
나라에는 점점 유학자들로 가득 찼죠.
한무제가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동중서가 주장한 사상 중 제이설이었습니다.
하늘이 내리는 경고나 재난 같은 것입니다.
왕이 잘못된 정치를 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는 뜻이죠.
당연히 왕 입장에서는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무제는 겉으로는 유교를 채택했지만 강력한 중앙 집권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동중서는 인정받았지만 반면 견제 대상이기도 했죠.
어느 날 오래된 왕릉에 불이 났습니 동중서는 이 일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벌을 내렸다고 생각한 건지 조정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추정되죠 그는 왕에게 올리기 위해 글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동중서를 시기했던 인물인
주부 언니라는 사람이 나타나 동중서가 쓰고 있던 글을 훔칩니다.
그리고 왕에게 폭로하죠. 한무제는 분노했고 학자들을 모아 이 글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아직 동중서가 쓴 글인 줄 몰랐던 그의 제자는 그 글이 형편 없는 글이라 맹렬히 비판했죠.
동중서는 끝내 사형 판결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무제는 동중서의 업적을 생각해 특별히 사면해 주었죠.
이후로 그는 입을 닫고 살았습니다. 교육에 힘쓰기로 마음 먹죠
동중서를 시기하는 사람은 더 있었습니다.
공손홍이라는 사람이었죠. 그는 예전에 자신을 비판한 동중서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 계략을 세웁니다.
당시 폭행을 일삼는 교서왕이 있었는데 이 자를 동중서가 막아야 한다고 황제에게 간했죠.
때문에 동중서는 그 위험한 인물을 맡게 됩니다.
난폭했던 교서왕에게 죽을 수도 있었죠.
그런데 교서왕을 만난 동중서는 오히려 그를 덕으로 인도했고
그곳에서 신임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내심 두려웠던 그는 얼마 뒤 병을 핑계로 그곳을 떠납니다.
조정에도 발을 끊고 정치계를 떠나죠 그는 여생을 학문을 기르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당시 유학자들은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동중서는 한무제를 만나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뿌리 내리는 데 큰 기여를 했죠.
그런데 그가 주장한 유교는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바로 음양오행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점이죠.
이제 동중서의 사상을 쉽고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동양에는 오래전부터 기 음양 오행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동중서는 이것들을 연구해서 자신의 유교 사상에 섞어 넣었습니다.
먼저 모든 만물은 기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기가 생겨나 둘로 나누어지면 그것이 음향입니다.
낮과 밤 남자와 여자 들숨과 날숨 등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죠 음양은 서로를 보완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양은 귀하고 음은 비천하다는 양존 은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훗날 남자를 선호한 남존여비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우열을 가려 신분 질서를 옹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오행이라는 것으로 만물을 풀어냅니다.
오행은 목화 토 금 수의 요소를 가리킵니다.
이 요소들 또한 서로를 보완하는 개념이죠.
사람 몸속에 오장육부를 오행으로 나눕니다.
동서남북 중앙도 다섯 가지입니다. 눈 혀 입고 귀도 마찬가지죠 이렇듯 동중서은 음향 오행을 이용하여 하늘과 사람을 연결지으려 했습니다.
그가 내세운 사상은 어떠했는지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천인합일 제이설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먼저 천인합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천인합일은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뜻입니다.
오래된 유교 사상이죠. 궁중서 또한 이 개념을 적극 사용했습니다.
천인 가흥설이나 천인 상관설이라고도 합니다.
그는 음양오행으로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풀었습니다.
동중서는 자신의 저작 춘추 번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과 사람 하나
같은 것인지 설명합니다. 사람의 작은 뼈 366개는 1년 날수와 버금간다고 합니다.
큰 뼈 12개와 12 달도 마찬가지죠 오행은 사람 몸 속 오장과 같으며 팔 다리 사진은 사계절 숫자와 같다고 합니다.
감정인 희로애락도 사계절과 연결된다고 생각했죠.
눈을 뜨고 감는 것도 낮과 밤으로 표현했습니다.
동중선은 사람이 작은 하늘이라고 생각했죠.
다음으로 제이설입니다. 동중서는 왕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하늘이 경고를 주고 벌을 내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한무제에게 양날의 검이었죠.
왕권을 강화할 명분을 줬지만 왕을 끌어내릴 만한 명분도 주었습니다.
왕이 잘못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고 했으니 말이죠.
먼저 경고를 주다가 그래도 안 되면 재난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는 행동에 따라 자연 환경도 영향을 받는 시기죠 마치 하늘이 인격 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왕이 독단적인 폭정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였죠.
한 나라는 전환과 후환으로 나뉩니다.
동중선은 전환 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죠 도덕성을 중요시한 유학자다운 생각과 하늘을 신처럼 대하는 무속인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한 무제가 만남으로써 유교 사상은 널리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후한 시대에 이르렀을 때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형식만 갖추는 허레허식과 미신을 믿는 풍조가 퍼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런 시대와 함께 동중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사상가가 등장합니다.
바로 후한 시대에 왕충이라는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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