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며 왕이 된 남자 세조의 이야기
30년간 세자로서 세종대왕을 보필했던 첫째 아들 문종 몸이 유독 허약했던 문종은 본인이 오래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본인의 아들인 어린 단종을 걱정했어 왕위에 오르기엔 너무 어렵거든 실제로 문종은 왕에 오른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십이세의 어린 나이에 단종이 즉위하지 문종은 죽기 전 위원으로 영의정 황보인 우의정 김종서 및 집편전 학사들에게 국정을 운영하도록 부탁을 하게 돼 큰 호랑이로 불리던 김종서는 세종시절부터 큰 신뢰를 받던 신화였어
충성심이 깊고 왕을 잘 보필했던 김종서는 문종의 부탁대로 국정에 개입을 하며 단종을 살폈는데 대표적으로 유명한 건 황표정사였지
김종서 대감이 황색 표식을 붙이기만 하면 무조건 등용을 시킨다고 해서 황표 정사라 비웃고도 있소 대사원께서 김종서 대감께 황색 종이 놀음을 당장 중단하시라 강력하게 요구하셔야 합니다.
황표정사는 김종서 같은 대신들이 점찍어둔 사람의 이름에 누런 종이 쪽지를 붙이면 임금이 그대로 임명하는 인사제도야 단종이 어려 정사를 제대로 살피지 못할까 염려한 문종의 유지를 김종서 황보인이 받들어 시행한 것이었어 그러므로 조정엔 김종서의 세력들이 당연히 많았겠지 그 결과로 왕권은 약하게 되고 신하들의 권력이 강해졌지
세종 시절부터 많은 공을 세우던 집편전 학사들도 이걸 비판하는 여론이 많아지면서 신료들 간에도 분열이 일어나게 돼 무엇보다 이런 상황을 도저히 눈 뜨고 못 보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수양대군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은 카리스마가 넘치고 물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어 특히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로 태조 이성계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 그렇게 무사들이 추앙하는 인물이었던 그는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신들이 꼴 보기 싫었겠지 그렇게 정국은 수양대군파와 문중의 고명을 받든 김종서 황보인파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때 김종서는 수양대군을 견제하기 위해서 수양대군의 라이벌이자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과 손을 잡아 수양대군 또한 자기 휘하에 많은 군사들과 한 명의 신숙주 같은 책략가들을 끌어들이면서 입지를 다져가는데 핵심 참모였던 한명회는 제거해야 될 인물들 즉 살생부를 작성하고 있었어 그리고 수양대군은 생각하지
먼저 호랑이 김종서를 죽여야겠다. 그렇게 수양대군은 직접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는데
제가 올해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소원입니까 왕이 되는 것이오
무슨 수작이냐
호랑이 사냥이 끝났다
김종서의 죽음을 시작으로 살생부에 적혀 있던 반대 세력 수십 명들을 대거 학살하고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도에 유배시킨 후 죽게 하지 이 사건이 바로 계유정난 후에 수양대군은 조선의 실권을 손에 쥐게 돼 하지만 실제로 수양대군은 그저 왕에 위협되는 인물들을 죽인 것 뿐 왕이 되려고 한 게 아니라고 말했어 재밌는 건 단종이 왕이 되고 명나라의 왕을 알리는 사신을 보내는데 수양대군이 직접 자원해서 갔다와 난 왕에 관심이 없고 조카를 지지한다는 뜻의 정치적인 행위지
또한 계유정난 이후 바로 왕이 되지 않고 2년 동안 여론을 보며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데 하지만 2년 후인 1455년 단종을 상황으로 몰아내 유배를 보내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수양대군이자 세조 세조가 왕위에 올랐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크게 일어나게 돼 개우정난을 일으킬 때만 해도 많은 신하들은 혼란스러운 정치질서를 회복시키려 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조카를 유배 보내고 왕위에 등극하자 세조를 반역자라고 여기지 이렇게 한 편에선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크게 분노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사육신 성상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여섯명의 충신을 가리켜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상징물인 옥새를 전달하는 위치에 있던 성산문은 슬피 울며 세조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살하려고 했어 그때 절친했던 박팽년과 이야기를 하며 수양대군을 복수하기로 마음 먹었지 그렇게 성산문을 중심으로 집편전 학사들이 세조를 암살하고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우는데
김질이란 사람이 배반을 하고 세조에게 일러바치면서 결국 단종 보기 운동을 실패로 돌아가게 돼 이를 괘씸하게 생각한 세조는 사역신들을 직접 잔인한 고문을 하는데 이때 옛 기록은 이렇게 전해져 왜 나를 배반하였는지 그저 본 임금을 포기하려 함인데 어찌 이를 배반이라 말하는가
나으리가 나라를 도둑질에 빼앗았으니 임금이 쫓겨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한 일이오 이를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세조는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관통시키고 팔을 잘라내는 자악한 고문을 하는데 성산문은 끝까지 나으리라 부르며 왕으로 대하지 않았어 박팽년도 세조를 나으리라 불렀고 유흥부는
아예 당신이라고 했지 이어 나머지들도 끌려나와 진상을 자백하면 용서해 준다는 말을 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잔인한 고문과 형벌을 받게 그렇게 이들은 사지를 찢어 죽이는 최악의 형벌인 거열형을 당하며 고문 속에서 처형을 당하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혁신의 가족으로 남자인 경우 모두 살해당했고 여자는 노비로 끌려갔으며 사육신을 도왔던 사람들 70여 명이 사살당하게 되지 이 사건을 사육신 사건이라고 불러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세조는 단종을 죽이지 않았어 하지만 동생 금성대군이 또 한 번 단종 보기 운동을 벌이니까 살아있는 상황의 존재 단종이 부담스러워 활쉐이로 뒤에서 목을 졸라 단종을 죽이게 돼 심지어 죽은 단종의 시신조차 방치해 버렸지 이렇게 세조는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완전한 왕위에 오르게 되었지 이러한 세조도 업적이 있겠지 대표적으로 왕권 강화를 위해 힘썼어 조선만의 법전을 만들고자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했고
세주의 손자인 성종 때에 완성이 되어 반포가 돼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기존 과전법을 폐지하고 현직자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을 실시하며 국가 수입을 늘렸어 또한 국방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 오늘날의 주민등록제도와 같은 호패법을 시행하지 하지만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의 이치라더라고 학살가였던 세조는 저주받은 왕이라고도 전해져 야사에 따르면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며칠 뒤 세조는 꿈을 꾸게 되는데 죽은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욕을 했어 니가 감히 죄 없는 내 아들을 죽이다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세조는 본인의 첫째 아들인 의경세자가 갑자기 죽었다는 전가를 받게 되지 또한 침을 맞은 얼굴에 피부병이 생기는 기괴한 일까지 발생했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과거의 행실에 대한 벌을 받게 된 걸까 실제로 첫째 아들 의경세자가
19세에 죽고 둘째 아들 예종은 발해 난 질병이 발목까지 올라와서 재위 13개월 만에 생을 마감해 또한 예종의 중전 예종 원자 성종 세자빈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지 이렇듯 세조는 말년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불교에 귀의하여 속죄하였어 게의 장난에 관계되어 귀양 가거나 종이 된 사람 수백 명을 풀어주고는
며칠 뒤 51세의 나이로 피부가 썩어 돌연 죽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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