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 사회도 이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어떤 힘보다는 어떤 자비 그리고 어떤 꾸짖음보다는 용서로서 상대방을 끌어안고 가족으로 삼아서 역사의 한 획을 그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고려를 창건하신 태조 왕건이 되시는데요.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왕건 그러면 고려를 세운 태조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왕건의 업적을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알려면 일단 당시 시대상을 좀 알아야 될 것 같아요.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등장하잖아요. 신라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보자고요
신라라는 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시대에 들어보셨죠.
그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나라였습니다.
bc 57년에 박혁 것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니까 신라가 가장 먼저 만들어진 거고 그다음에 고구려가 만들어지고 그리고 나서 이제 백제가 만들어져요.
만들어진 건 제일 최초인데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건 가장 느렸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면 여기는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당시 선진 문물을 중국으로부터 주로 받아들였지 않습니까 근데 고구려 같은 경우는 저기는 요화라는 강을 통해서 딱 접하고 있으니까 바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어요.
백제 같은 경우는 고구려보다 머니까 어때요 그렇죠 서양을 통해서 좀 백길로 받아들였겠죠.
그러니까 100년 늦은 한 3세기 되어서야 고구려는 2세기 백제는 3세기 되어서야 고대 국가의 스타트를 끊는데
신라 같은 경우는 고대 국가의 시작이 거의 한 4세기 정도 돼야 됩니다 가장 늦었거든요.
근데 여기서 말하는 고대 국가라 함은 왕권도 강화되고 또 불교를 수용해서 국민들의 정신적 통합도 이루고 그리고 또 윤령 법을 반포해서 나라의 근간을 이루고 영토도 확장하는 이걸 이제 고대 국가라고 부르는데 그 시발점이 각각 달라요 근데 신라가 제일 늦었다고요 그 이유는 뭐냐면 가장 멀죠 중국하고 고구려 백제한테 막혀 있죠 거기다 태백산맥 소백산맥 사이에 박혀 있다.
보니까 선진구물의 유형이 가장 늦었습니다.
그래서
좋게 얘기하면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고 나쁘게 얘기하면 조금 촌스러웠던 이런 나라가 이제 신라였습니다.
근데 여기는 신라가 중국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의 어떤 힘을 빌려서 나당연합군을 결성하고 차례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 통일신라 시대를 맞이하게 되죠.
통일신라 초반에는 신문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왕권 강화에 뛰어난 왕인데요.
이런 왕들이 나오면서 굉장히 전성기를 누렸지만 신라 하대부터는요 별 이상한 왕들이 다 등장을 하면서 신라 아대가 150년인데 150년 동안 20명 이상의 왕이 갈아치워질 만큼 평균 임기가 한 7년 정도밖에 안 됩니다.
엄청난 혼란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다 신라 막바지의 여왕이었던 이제 진성여왕 때에 가서는요 아 참 여기서 질문 들어올 거 제가 답 하나 해드릴게요 학생들이 그런 질문 참 저한테 많이 해요.
선생님 왜 고구려하고 백제는 여왕이 없는데 신라 같은 경우만 여왕이 있습니까 이 질문을 참 많이 하는데 그것은 바로 신라만이 가지고 있었던 폐쇄적인 신분제도 골품제 때문이었습니다.
골품제라는 것은 말 그대로 벽 따위에도 품격이 있다라는 뜻인데요.
성골 제일 높은 성골이 있고요 그 밑에 진골이 있습니다.
여기서만 왕이 나올 수 있고요 그리고 그 밑에 6두품 5두품 4품 22품 1두품 그래서 이렇게 귀족 계급들이 있어요.
31두품은 통일 이후에 평민화가 되는데 이 골품들은요 죄를 지으면 밑으로 골품이 떨어질 수 있고요 대신 아무리 공을 세워도 골품이 올라갈 수 없고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골프문에 따라 그래서 관직 등급의 상한선도 있었고 입는 옷이랄지 타는 술에 심지어는 가옥의 규모에까지 사회적인 차별을 받았던 폐쇄적인 사회가 신라였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초창기에는 성골에서만 왕이 나왔어야 되거든요.
근데 성골은 자신들의 어떤 피를 유지하기 위해서 극도의 근친상간이 이루어지게 되고요 그 자식들이 오래 살지 못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이 태어나게 돼요.
그래가지고 완전 성조에서 남자들이 그냥 씨가 말라버린 거죠.
그래가지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결국 나온 게 이제 최초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이었던 거죠.
남자가 없으니까 선글래요 그러다가 여기는 선덕이 또 남자 자식 없이 죽어버려요.
그래가지고 사촌이었던 당시 진도 교황이 또 등장하게 된 거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질문에 대한 답은 좀 궁금하실 수 있으니까 드렸고요 어쨌든 신라에는 총 3명의 여왕이 있는데 상대 쪽에 선덕 진덕이 있고요 중대를 지나 막판 하대 쪽에 진성 여왕이라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너무 정치를 못해요. 그래서 저는 수업 시간에 농담처럼 이 여자 진성이 아니라 완전 진상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요. 당시의 기록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성여왕 즉위 3년에
국고가 바닥이 나서 왕이 사자를 보내서 사자라는 건 이제 세금을 걷는 관리죠 세금을 독촉했더니 원종하고 에노라는 농민들이 중심이 돼서 사발주에서 반란이 벌어졌다.
그래서 관리를 보내서 진압하게 했는데 관리가 두려워 나가지 못하게 했다라는 등 아니면 왜 이런 재앙이 우리 해동 신라에 와서
이렇게 들끓느냐 완전 사방이 전쟁터가 됐다.
이런 기록이 나오거든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못 살겠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반란 세력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신라 하대 쪽에요.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 당시 수도는 경주였으니까요.
지도에 있으면 경주 보이죠. 이 경주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이 거의 극에 달했고요 저는 이 시기를 로마에 비유를 합니다.
로마 같은 경우는
남녀가 한 번에 들어가는 3천 명이 들어가는 목욕탕이 있었다고 그랬죠 엄청나게 큰 목욕탕이 있고 여자들이 몸매를 관리하기 위해서 목욕해야 되니까 아이를 출산하지 않고 이러다 보니까 나라를 지킨 군인이 없어지고 다른 이민족들이 게르만족들이 군인을 서고 하다 보니까 나라의 존재가 없어지고 결국 망하게 됐다.
이런 얘기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리고 로마 같은 경우는 뭐 몸매 관리하려고 노예들이 이렇게 음식을 차려주잖아요.
그럼 천 가지 막 요리를 먹는다고 그러잖아요.
그다음에
금으로 이렇게 얇게 만든 깃털을 끝에다 막대를 입안으로 이렇게 넣죠.
그래서 바로 오바이트를 합니다. 황금 대야에다가 먹고 오바이트 하고 먹고 토하고 이거를 반복하면서 모를 유지했다.
나라가 이러니까 망하게 되죠. 그렇죠 신라도 비슷했습니다.
얼마나 향락적이었냐면 일단 신라 경주는 끊임없이 악공들의 피리 소리가 불리어졌고요 그리고 금입택이라고 그래서 금으로 만든 집
금을 입힌 집이 35채나 됐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사절 유택이라고 그래서 4절 4시즌이죠.
사계절 놀 유자입니다. 사계절 놀 수 있는 오늘날로 따지면 펜션이나 콘도 같은 경우가 이미 그때 있었다는 얘기죠 그리고 오늘날도 전해져 내려오는 13인치 주사위가 있는데 이 주사기가 13년째예요.
굴립니다. 그래서 이걸 갖고 노는데 벌칙으로 이제 놀거든요.
어떻게 노냐면 벌칙 내용이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는데
연속해서 술을 연거퍼 3잔 먹기 지금 우리 민족들 보면 원 샷 원 샷 이거 하지 않습니까 이게 신라 시대 때부터 내려온 거예요.
몸을 간지럼 태워도 웃지 않기랄지 별 희한한 놀이가 다 있어요.
그리고 포석정이라는 데서 물이 막 빙글빙글 돌잖아요.
그래서 술을 마시고 술을 따라서 이렇게 노면 회전 초밥처럼 둥둥둥둥 떠가서 그 사람들이 술 먹고 완전 간염 걸리는 행위죠 뭐 이런 어떤 귀족들의 사치 때문에
백성들은 엄청나게 가렴주구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도저히 못 살겠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이제 반란이 버려진 거죠.
하나만 더 할게요 그리고 안압지라는 곳이 있었는데 안압지라는 건 뭐냐면 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곳이라는 이름의 그런 연못이 됩니다.
그럼 지금도 거기에 기러기하고 오리가 있을까요.
없죠. 지금은 기러기는 없어요. 기러기는 없고 오리는 있더라고요
근처에 오리구이집이 굉장히 많은데 거기서 이제 요리로 나오던데 어쨌든 이런 귀족들의 사치 향락 그리고 백성들에 대한 가렴주구 때문에 못 살겠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막 반란 세력들이 반란을 벌이게 됩니다.
이런 반란 세력들은 보다 강한 세력에 의해서 이제 합쳐지게 되는데요.
여기저기 반란 세력들을 모은 이 수많은 세력들을 호족 세력이라고 부릅니다.
이 호족들은 자기 지역에 성을 쌓고요 스스로를 장군이라고 부르면서 그 지역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어떤 독차지하게 되죠.
이런 호족들이 창고를 하는데 신라 중앙정부에서 이걸 때려 잡아야 되는데 술에 쪄들고 여세개 쪄들어가지고 신라 중앙정부는 그것을 진압할 만한 힘이 없었던 것이죠.
이런 여러 호족들은 보다 강한 세력으로 합쳐지게 되는데요.
급기야는 이들이 나라를 만들게 됩니다 지도를 보시면 첫 번째로 만들어진 나라가 900년에 만들어진 나라죠 10세기의 시작 바로 광주를 중심으로 나라가 세워지고 오늘날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 완산주라고 그랬거든요.
거기에 도읍을 정한 바로 견원의 후백제가 됩니다.
옛 백제의 뒤를 잇겠다. 그래서 이런 나라를 만든 건데요.
견원 같은 경우는 농민 출신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서 본인도 이제 평민 출신에서 장군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어렸을 때 호랑이한테 물려가서 호랑이의 젖을 먹고 살았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굉장히 포악한
강한 카리스마의 1인자가 여기는 견원이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비슷한 무렵에 여기는 개성에서 또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 등장을 해요.
이 사람이 바로 눈이 한쪽밖에 없었던 궁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신라의 왕족이었는데 정실 부인의 자식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좀 목숨이 위태로울 거 아닙니까 그래서 자기 어머니가 일설에 의하면 이렇게 애를 안고 뛰었대요 그래서 목숨이 위험하다 그러면서 2층에서 던졌답니다.
그래갖고 그 밑에서 궁녀가 봤는데 엄지 손가락으로 이렇게 봤는데 이렇게 눈을 찔렀다고 그러죠 그래서 이제 눈이 멀었다는 설이 있는데 어쨌든 이 아이를 속세와 단절을 시키기 위해서 절에다가 이제 갖다 놓죠 근데 애가 뭐 그 dna가 어디 가겠습니까 거기서 중이 되긴 했지만 참을 수 없어 오면서 나와가지고 수많은 거기 있는 호족들을 이끌고 나라를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후고구려 고구려의 뒤를 잇겠다는 거죠.
저기 있는 비겁한 신라 중앙 정부를 몰아내고 옛 고구려의 기상을 얻겠다.
그러면서 개성의 나라를 세운 거예요.
근데 이때 궁해가 부 고구려를 세울 수 있는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예성강 근처 오늘날 개성이죠.
개성의 호족으로서 이름난 왕건하고 그를 부하로 삼았기 때문에 후고구려를 창건할 수 있었다.
이런 얘기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오늘의 주인공 왕건 이 사람은 개성 근처에서 상당히 권세 있는 호족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장차 이 아이가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러죠 할아버지 작재건의 친구인 도성 스님인데요.
이 도선이라는 사람은 통일신라 말에 우리나라에 최초로 풍수지리설을 가지고 들어온 걸로 유명해요.
근데 이 사람이 야 너는 앞으로 왕이 될 거야 어 그러면서 각종 병법과 비수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리고 이런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또 왕건이 생긴 게요 부잣집 아드님 아닙니까 근데 눈이 부리부리하고 턱이 살쪘고 기구이 장대하고 목소리는 우렁차고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이거는 어떤 집권세력 역사라는 건 승자의 기록이니까 그러면 멋있게 생겼다고 그러지면 거기다 대고 그러면 눈에 힘이 빠지고 간교하고 이랬겠습니까 어디까지는 믿을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기록이니까 일단은 그렇게 여기는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왕건 같은 경우는 어린 나이부터 상당한 세력을 국가하고 있었고 당시 새로운 신라 왕족이었던 궁해의 참모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이 10세기 시대를 뭐라고 부르냐면 다시 신라가 삼국으로 쪼개졌다.
그래서 후삼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기 있는 궁예의 후고구려가 수도를 어디로 그렇죠 철원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국호를 두 번이나 바꾸는데요.
마진이라는 나라 이름으로 바꿨다가 다시 태봉이라는 나라 이름으로 바꾸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궁예가 초장에는 참 용맹스러운 사람이었고 왕건을 보내가지고 견원하고 여러 차례 싸움에서 승리를 얻고 뛰어난 지도자였는데 높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까 사람이 좀 이상해집니다. 그러면서 자기 부하들을 의심하고 그리고 자기한테 조금 약간 직언을 하는 부하들 참모들을 마구마구 죽이기 시작했어요.
심지어는 뭐 자기 부인하고 바람을 폈다는 등 엉뚱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죽입니다.
근데 거기에 왕건도 불려갔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왕건한테 물어봤다고 그러죠 야 너 내 부인하고 바람 폈지 어 너 그리고 나 죽이려고 그랬지 너 사실대로 말해 이렇게 얘기를 했대요 왕건은 그런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혜를 발휘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역모를 꾀했습니다. 죽여주십시오라고 얘기를 했대요 궁예는 그때 빙긋이 웃으면서
내가 눈이 한 짝밖에 없지만 너의 마음을 뚫어볼 수 있는 관심수를 가지고 있어 나는 미래의 올 부쳐 난 미륵이야 내가 네 마음을 다 알아 근데 니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실을 이을 짓고 하니 나의 능력을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증인이 너야 그러니까 내가 널 살려주마 그러면서 오히려 풀어줘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마음껏 이제 죽다 살아 남은 거예요.
완전 요즘 속된 말로 맛이 간 거죠.
그때 수많은 호족들에 와서 물어봅니다.
아니 저 우리 저 왕이 왜저래 좀 맛이 간 거 아니야 그런 거 같아 야 왕건아 그럼 니가 저기 있는 왕 죽이고 우리가 한번 너를 추대할 테니까 새로 한번 나라 만들어볼래 근데 기록에 따르면 실제인지 모르겠지만 아니 아니야라고 반대를 했답니다.
충성할 거야라고 했는데 호족들이 궁예를 죽이고 왕건을 추대했다.
이렇게 기록에 남아 있는데 글쎄요
그것도 승자의 기록이니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성격상 그랬을 수도 있어요.
이 사람은 되게 끌어안는 스타일의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여기 있는 왕건이 이제 궁예를 몰아내고 다시 수도를 개경으로 옮겨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옛 고구려의 뒤를 잇는다고 이름을 고려라고 붙인 겁니다.
원래 고구려는요 이름이 고려 구려 고구려 다양하게 불렸거든요.
그래서 옛 고구려의 영화를 잇는다 그래서 이름을 고려라고 했던 것이고요
그리고 왕건의 고려에 마침 또 북쪽에 있었던 우리 고구려의 뒤를 잇던 발레가 거란족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발레에 있었던 지배층 고시들 그리고 발레를 세운 대조영의 후의 대시들이 대거 여기는 왕건의 고려로 귀속되게 되죠.
그래서 민족의
제통일을 이루면서 왕건은 권력을 굳건히 하게 되는데요.
이 발해에서 넘어온 고구려의 옛 유민들을 그렇게 후하게 대하고 잘해줬다 라는 거 아닙니까 하여튼 끌어안는 데는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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