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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왕이름은 왜 외자일까? 왕의 본명이 특이한 이유

by 로이인랑 2023.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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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이름은? 조선 태조의 이름이 이성계라는 건 누구나 아실 겁니다.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 건국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태종의 이름도 익숙하지요? 왕들은 세종이니 정조이 해서 묘로 불리는데 태조와 태종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특이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또 이름이 많이 알려진 왕

산이다 정조도 드라마 덕분에 이름이 많이 친숙해졌습니다. 
그러면 다른 왕의 이름은 어떤가요? 장희빈과 함께 사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숙종의 이름을 혹시 아시나요?

몇몇 왕의 이름을 한번 보겠습니다. 왕들의 이름을 보면 외자이고 잘 쓰지 않는 글자입니다. 
고려 왕들의 이름도 비슷합니다. 고려 태조의 이름은 다들 아시죠? 태조 왕건부터 마지막 공양왕까지 34대 왕의 이름이 모두 외자입니다. 
왕의 이름이 이렇게 된 것은 피위 때문입니다. 
피를 피한다는 건데 피는 군주의 이름을 뜻합니다.

왕조 시대에 감히 왕의 이름을 부르지는 못했을 테고 왕과 같은 이름을 못 짓는 것은 물론 그 글자를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유교 문화권에서는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나 호를 많이 썼지요. 다산 정약용이니 추사 김정이니 해서 옛날 분들 이름 앞에 호를 붙이는 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왕의 이름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왕 이름에 쓰인 글자가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글자라면 무척 불편할 것은 뻔합니다. 
그래서 왕자들 이름을 지을 때 외자로 짓고 그것도 잘 쓰지 않는 글자로 골랐습니다. 
아예 글자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네요. 
조선왕들을 보면 태조 이성계부터 3대 이방왕까지는 이름이 두자인데 태어날 때는 왕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범하게 두 글자로 이름을 짓고 글자도 따로 고르지 않았던 거죠. 
사실 이성계는 왕이 된 후 이름을 바꿨습니다. 
성자와 개자 모두 흔하게 쓰이는 글자라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였죠. 
바꾼 이름은 새벽을 뜻하는 단위였는데,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과 뜻을 맞춘 거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태조를 이성계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죠. 
정종도 죽이 후 이름을 바꿨습니다.

태종은 방자와 원자 모두 일상에서 쓰이는 글자인데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는데, 특별히 피위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한 글자씩 따로 쓰는 게 아니라 두 글자를 함께 쓰면 문제가 되겠지만, 사람 이름을 방언이라고 짓지 않는 한 두 글자를 함께 쓸 일은 없어서 큰 불편은 없었다네요. 
이것은 무척 예외적인 경우라고 합니다. 
태종처럼 이름이 두 글자인 왕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단종입니다.

단종 위로 왕자가 두 명 있었는데, 모두 어린 나이에 죽자 할아버지인 세종이 오래 살라는 염원을 담아 두자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단종 외에는 왕자들 이름이 외자로 이어졌는데, 조선 후기에 가면 평범한 이름을 쓰다가 왕이 된 후 개명을 한 사례가 다시 등장합니다. 
철종과 고종이 그 경우인데, 두 임금 모두 태어날 당시에는 왕위와 거리가 멀었지요.

철종은 할아버지인 은원 군이 역모 사건에 휘말려 강화도로 유배온 이후 평민처럼 살았고, 이름은 원범이었습니다. 
헌종 사후 느닷없이 왕이 된 강화도령 원범은 이름을 변으로 바꾸었습니다. 
고종 역시 왕실과 촌수를 따지자면 철좀보다 한참 멀었고, 어릴 때 이름은 평범하게 면복이었습니다.

그러다 왕이 계승자가 된 후 항렬에 맞추어 임시로 제왕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가 다시 형으로 바꾸었습니다. 
고종의 적자로서 태어날 때 대군 신분이었던 순종은 이름이 척이었습니다. 
왕조 시대에는 군주에 대한 예의로서 피위를 하는 게 당연할 수 있고, 왕실에서는 백성에게 피해가 덜 가도록 나름 배려를 했지만,

어쨌든 특정 글자를 피해야 하는 것은 무척 번거로웠을 것 같습니다. 
고려 말 학자로서 성리학을 전파한 안양은 문묘에 종사될 만큼 존경을 받는 학자였지만, 조선시대에 개명 아닌 개명을 당하게 됩니다. 
문종의 이름이 향이라서 그 글자를 피해야 했던 거지요. 
향자 중에 다른 글자를 쓰거나 어릴 때 이름인 안으로 불렸고, 호가 회원이라서 회원공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안양과 문종은 이름이 어쩌다 겹치는 경우지만, 왕 이름의 흔한 글자가 있으면 정말 난감해집니다. 
당나라 이대 황제인 태종은 이름이 이세민입니다. 
새와 민 모두 흔한 글자이니, 당나라 사람들은 이 글자를 피하느라 고생깨나 했겠습니다. 
당나라 때는 새를 대부분 개나테로 고쳐서 썼습니다. 
절세 가인을 절대 가인이라고 하는 시기지요.

황제의 힘이 무척 막강했는지 불교의 관세음 보살은 관음보살로 불리게 됩니다. 
미는 대부분 인으로 기록했습니다. 당나라 황제 때문에 보니 아니게 고구려 사람의 성이 바뀌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나라를 세운 고조는 이름이 이연인데, 연이 연개소문의 성과 같은 글자입니다. 
그래서 당나라에서 연개소문의 이름을 쓸 때 연과 뜻이 비슷한 천자로 바꾸어 기록했는데,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미처 이 사실을 모른 채 천계소문이라고 한 겁니다. 
이렇게 피위를 엄격히 지키다 보면 번거로움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영조는 40년이나 자신의 이름을 숨겼고, 그나마 신하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도 실수로 그랬다고 하네요. 
영조의 이름은 박다는 뜻의 금입니다. 
한 번은 신하가 상소문을 읽다가 금자가 나와서 차마 읽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영조가 괜찮으니 그냥 읽으라고 한 적도 있다 합니다.

이런 영조에게 피위 때문에 대구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대구에서 국가 공자의 이름과 같은 글자니까 다른 글자로 바꿔달라는 겁니다. 
영조는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슬슬 바뀐 글자를 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이 바뀐 글자로 굳어졌습니다. 
왕이나 성인의 이름을 피하는 것 말고 조상님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고려 말 조선초 문신인 유관의 아들 유괴문이 충청도 관찰사를 제수받았는데, 관찰사에서 관자가 아버지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자리를 사양했습니다. 
직함을 말하다 보면 아버지의 이름을 입에 올리게 된다는 거였죠. 
결국 유관이 임금께 청해 자신의 이름인 관을 다른 글자로 바꾼 뒤에야 유괴문은 벼슬에 나아갔습니다. 
조상의 이름 쓰기를 꺼린 우리와 달리 유럽에서는 조상의 이름을 후손이 다시 쓰는 일이 많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뒤에 주니어라고 붙이는 일은 흔합니다. 
역사를 보면 1세, 2세, 3세 하면서 계속 같은 이름을 쓰는 왕들도 많습니다. 
여러 세대가 지난 뒤에 조상의 이름을 이어서 쓰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피휘와 관련해서 동서양이 공통으로 따르는 게 있는데, 나쁜 건 피한다는 겁니다.

중국인들은 진해라는 인물 때문에 이름에 회자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송의 재상이었던 진해는 금나라와의 관계에서 화친을 주장했는데, 구국의 영웅으로 대접받던 악비를 반역죄로 몰아 처형했고, 굴욕적인 내용으로 금나라와 화친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지요. 
이 일로 지내는 중국에서 대표적인 매국로로 꼽힌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왕 이름의 스티븐이나 존을 쓰지 않는다네요.

스티븐은 왕위를 찬탈하고 재위 중에 내내 왕권 다툼을 하느라 국토가 황폐화되었습니다. 
거기다 영주들의 횡포가 심해 영국 사람들은 역사상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영국 역사상 최악의 왕으로 취급받는 조망은 아버지와 형을 잇따라 배신했고, 정치와 외교에서 실패하고, 꽤 많은 영토를 잃어버렸습니다. 
한일이라곤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한 것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요. 
스티븐과 조는 이렇게 평가가 나쁘다 보니 후대의 이 이름을 쓰는 왕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기피 대상이 있습니다.

나치의 만행 이후 히틀러 집안 사람들은 모두 성을 바꾸었고, 아돌프라는 이름 역시 모두 버렸죠. 
끔찍한 역사 때문에 그 누구도 아돌프나 히틀러라는 이름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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