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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유용한 상식

엘링 홀란드는 어떻게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하게 되었나?

by 로이인랑 202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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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맨체스터 시티 유니폼을 입으며 자신의 꿈을 이룬 것에 만족했는지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뻐하는 이유는, 물론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팀에서 뛸 수 있게 된 것도 있겠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과거 그의 아버지 알프잉의 홀란드가 몸 담았던 팀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영국 리즈에서 태어난 홀란드는 3살이 되던 때에 아버지의 조국인 노르웨이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맨시티에서 뛰던 알피잉의 홀란드의 치명적인 부상 때문이었죠. 
홀란드의 아버지는 맨유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인 로이킹과 가열된 신경전을 하던 중, 로이킨에게 과격한 태클을 당하게 되는데, 이 태클 때문에 알프잉에는 다리가 부러져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고,

그는 결국 가족들과 함께 노르웨이로 돌아오게 됩니다. 
노르웨이로 돌아온 홀란드의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축구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최고의 축구 선수로 만들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그가 살던 도시인 브리네의 축구 클럽의 엘링 홀란드를 등록시켰는데, 이렇게 엘링 홀란드는 다섯살이 되던 해의 축구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축구 선수인 아버지와 7종 63 경기 선수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최고의 유전자를 받은 엘링 홀란드는, 이미 어릴 적부터 남다른 운동신경으로 특출난 두각을 보였습니다. 
엘링 홀란드는 축구뿐 아니라 핸드볼이나 골프, 육상 등과 같이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으며, 남다른 기량을 선보였는데, 그중 제자리 멀리뛰기 종목에서 다섯 살의 나이에 163미터라는 거리를 기록하며, 동 나이대의 세계 어느 어린이보다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했죠.

브리네 축구 클럽에서도 그의 재능은 남달랐습니다. 
동갑내기 중에서도 그의 실력은 월등했기에, 나이 많은 형들과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엘링 홀란드는 현재 홀란드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웃고 있었고, 남들보다 훈련을 많이 했으며, 그리고 늘 많은 득점을 하였습니다. 
축구선수 출신의 아버지를 둔 자녀라면 아버지의 명성에 주눅들 법도 한데, 골을 넣는 방법을 누구한테 배웠냐는 질문에 혼자 터득했다고 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이 매우 높았습니다.

2017년, 엘링 홀란드는 브리네에 이어 노르웨이의 명문팀인 몰데fk로 이적을 하며 그의 축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입단 첫 해에는 20경기에 출전하여 내 골 한도움의 기록에 그쳤지만, 바로 다음해 솔샤르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30경기, 16골, 5개의 도움을 기록하게 되었죠.

이 기록을 세우는 데는 솔샤르의 도움이 컸는데, 홀란드의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직감한 솔샤르가 애정을 갖고 개인 훈련까지 도와주며 홀란드의 든든한 멘토 역할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홀란드는 실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홀란드는 성인 선수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폭풍 성장을 하게 됩니다.

키가 17cm나 크는 등 급격하게 성장한 피지컬 덕에 엘링 홀란드는 동나이대 선수들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눈에 띄는 성장을 했기에 홀란드는 더 큰 무대를 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홀란드에게 처음으로 영입을 제안했던 곳은 아버지가 뛰던 리즈 유나이티드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프리미어리그에 진출을 원했지만, 폴란드는 중간 규모의 클럽을 거치며 성장하는 것이 그의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 것이라 생각하였고, 대형 클럽들의 제안을 거절하며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잘츠부르코의 이적으로 홀란드는 황희찬 선수와 인연이 생기게 되는데,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면서, 국내 팬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황희찬과 그의 동료들에게로 연결이 되었죠. 
폴란드는 이때부터 국내 축구팬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운이 좋게도 잘츠부르크의 주전 공격수가 이적을 하게 되며, 공격수 자리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는데, 폴란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기량을 뽐냈습니다.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두 번의 해트트릭에 이어,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에서 전반전에만 3골을 넣으며, 챔피언스리그 데뷔전 전반전에 해티트릭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챔스 5경기 연속 골을 넣으며, 챔피언스 조별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홀란드가 잘츠부르크에서 세운 기록으로 인해, 그의 실력은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며, 빅 클럽들에게 러브콜을 받게 됩니다.

잘츠부르크에서 활약할 당시, 폴란드는 이미 국가대표에서도 큰 활약을 하고 있었습니다. 
20세 이하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온두라스전에서 9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골든 부츠를 수상했고, 이후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차출되어 다수의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본인의 실력을 입증하였습니다. 
여담으로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준우승을 하였고, 이강인 선수가 골든볼을 수상하였습니다.

메뉴와 유벤투스 등 다양한 클럽에서 오퍼가 있었지만, 폴란드의 다음 행선지는 독일의 도르트문트였습니다. 
그리고 이적 당시, 많은 팬들은 기대와 동시에 걱정을 했었는데, 작은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가 큰 리그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여 사라진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홀란드는 이러한 불안감을 첫 경기만에 불식시켰습니다.

그는 분데스리가 데뷔 전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데뷔 전 해트트릭 최연소 2위라는 기록을 세웠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활약으로 데뷔 첫 달에 이달의 선수상을 받게 됩니다. 
적응기라는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스무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홀란드는 이미 완성형 스트라이커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홀란드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도르트문트에서의 계속된 활약으로 그의 조국인 노르웨이의 축구 스타를 꿈꾸는 유망주들이 홀란드를 롤 모델로 삼으며 축구를 했고, 그의 발자치를 따르길 원했습니다.

사실 홀란드의 실력은 단순히 그의 피지컬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필드 위에서의 여유 있는 모습 이면에는 승부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더욱 훈련에 매진할 정도로 항상 골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경기에서 본인의 플레이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답답할 때, 소리를 지르며 골을 넣기 위해 더욱 집중하곤 하죠. 
이러한 골과 승리에 대한 집착이 결국 그를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상의 팀인 맨체스터 시티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 그의 아버지가 몸 담았던 팀,

폴란드 부자가 염원했던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을 하게 되며, 폴란드는 하나의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빅리그로 이전을 하게 되면서 팬들은 그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많은 우려를 하였지만, 이 우려를 비웃듯 홀란드는 지금까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인 22, 23 시즌 21라운드, 울버햄튼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리까지

폴란드는 이번 첫 시즌에만 무려 네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프리미어리그 최초 홈 3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 세 번의 해트트릭을 가장 빠른 경기 수만에 달성한 선수, 네 번의 해트트릭을 가장 빠른 경기 수만에 달성한 선수, 역사상 최단 경기 20골 기록, 데뷔 후 첫 5경기 최다 득점 기, 데뷔 후 첫 10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라는 전무후무한 경의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시즌 절반이 조금 넘은 시점에 이미 그는 전 시즌 득점왕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가 부상 없이 시즌을 온전하게 마무리하며 새로운 기록을 이어나가길 원하는 팬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폴란드가 이러한 대기록을 써내려갈 수 있는 이유에는 꼭 피지컬이 우수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완벽한 사코홀릭이기 때문이죠. 축구에서만큼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이기에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그는 편하게 잠들지 못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더 몰아세웁니다.

더욱이 유명 인사라면 생길 법한 다양한 이슈에서 어째서인지 홀란드만큼은 배제가 됩니다. 
그는 자동차나 명품에 관심이 없고 비시즌 때면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감자 농사를 짓거나 장작을 패는 것을 취미로 할 정도로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 않은 편입니다. 
그리고 해트트릭한 공을 껴안고 자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추후 덕후의 면모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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