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 덩크라든지 공포의 외인구단이라 갑자기 역경 막 이렇게 해서 어떻게 힘을 할 수 없는 순간에 여자친구라든지 슬피 우는 엄마의 모습이라 갑자기 초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역경을 맞아들이는 나의 마음 근력이 그 마음 권력이 아까 세 가지가 있다고 큰 성취나 큰 발전을 이룬 사람은 다 입니다.
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역경 덕분에 그렇게
회복 탄력성 여러분들 다 아실 거예요.
그래서 회복 탄력성에서 이야기하신 핵심 내용들도 오늘 아주 밀도 있게 이렇게 몰아서 좀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먼저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요 세상이 힘들지 않았던 때가 없습니다.
저 임진왜란부터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요 어느 한 시점에도 그 시대 사람들이 지금은 살 만하다 이렇게 생각한 적은 없고요.
좀 살 만했다라고 과거 돌이켜 보면서 그때가 좋았지 뭐 그 정도가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지금 이 시점도
한참 지나면 아 이때가 그런 점에서 좋았어 이렇게 또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게 우리의 생각의 어떤 습관인 것 같습니다.
지금 힘들다 힘들다 힘든 건 맞아요.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세상은 원래 힘든 거고 인생도 원래 다 힘든 겁니다.
힘들지 않은 삶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아닌데 난 지금 너무 힘든데 주변 사람 보면 멀쩡해 보이는데 멀쩡해 보이는 거죠.
다 저만큼 힘들었거나 지금 힘들고 있거나 아니면 나중에 힘들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뭐냐면 어떤 시련 역경 힘든 거는 기본으로 주어지는데 근데 어떤 사람은 그걸 잘 이겨내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역경이나 실현 때문에 무너지고 좌절하고 마는데 그 차이가 뭐냐
그 차이가 역경 자체에 있지 않다는 거죠.
그 역경을 맞아들이는 나의 태도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마음 근력이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마음 근력이 아까 세 가지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자기 조절력과 대인관계력과 자기동기력이 있는데 이 첫 번째 두 번째를 합치면 그게 회복 탄력성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그래서 자기 동기력과 자기조절력 1 3번을 합치면 그게 어떤 끈기라든지 그릿이라든지 과제 지속력을 발휘하는 그런 힘이 되고요.
그래서 세 가지를 다 키워보자 하는 게 마음 근력 훈련입니다.
다입니다. 다 다라는 게 뭐냐 하면 큰 성취나 큰 발전을 이룬 사람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역경 덕분에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안데르센이라든지 조앤 롤랑 작가들부터 시작해서
처칠 수상 과학자들 누구 그냥 우리가 아는 이승엽 마이클 조단 우리가 아는 누구나가 다 그냥 사례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지 우리가 볼 때 큰 성취를 이룬 그 결과만 놓고 보면 원래 재능이 있어 원래 우이 좋아 저 사람은 이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과정을 보면요 다 역경 다음에 튀어 오르고 역경 다음에 튀어 오르고 그러니까 이게 m자처럼 이렇게 튀어오르죠.
그래서 그 말이 맞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우리가 다 아는 것 같은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실패 많이 그래서 그거 내려가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습니다.
뒤로 움추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거죠.
지금 김 교수님 말씀 다 납득을 하면서 이제 머릿속에 뭐가 남냐 하면 아니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사람들처럼 되는데 이런 생각을 아마 하고 듣고 싶겠어.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문이 들 텐데 아 그 사람들은 좀 선천적으로 그런 탄력성의 힘을 갖고 있었던 거 아니야 나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일단 마음 근력이라는 말이 일종의 은유 메타포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면 학자들이 많은 학자들이 멘탈 머슬즈 마음 근력이라는 그 메타포를 왜 쓰느냐 하면요 몸에 근육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그 얘기는 뭐냐면 몸의 근육 체계적이고도 반복적인 훈련 하면 강해지죠.
그러니까 마음 근력도 이렇게 강해진다 이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보세요. 그러면 이두근이 좀 잡혀요.
어떤 사람은 근육이 크고 어떤 사람은 잡고 어떤 사람은 많은 걸 들어 올릴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조금 힘이 없어요. 그러면 그게 선천적일까요? 대부분 선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선천적인 요소보다는 대부분 내가 지난 두 세 달 동안 팔을 얼마나 썼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겁니다.
아무리 팔 근육이 많은 사람도요 부상으로 예를 들어 깁스하고 팔 딱 고정시켜놓고 두세 달 팔 하나도 안 썼다 그러면 거의 뼈만 남습니다.
선천적인 게 아니에요. 아니 나 요새 팔 운동 안 했는데 팔 운동 안 했어도 예를 들어 뭐 젓가락질이라도 하고 팔을 어느 정도 움직였을 거예요.
그래서 근육이 이 정도 있는 거고요.
이거 더 많이 하면 더 세질 거고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음 근력 키우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제 강조하는 게 이런 겁니다.
우리가 지금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질문 속에 담겨 있는 게 뭐냐면요 데카르트 철학입니다.
갑자기 웬 데카르트? 왜냐하면 몸과 마음 이원론 심신 이원론은 17세기 데카르트가 아주 적립을 해놓은 겁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렇게 해요.
그래서 아
강한 정신력으로 어떤 거 할 수 있는 거 연결돼 있는 거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것도 이미 이혼론이에요. 그리고 정신이 세고 뭐 이렇게 일을 악 물고 내가 집중하면 갑자기 힘도 세진다며 그것도 이혼론이에요.
그게 무슨 얘기냐면 만화 때문에 많이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만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슬램덩크라든지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든지
갑자기 역경 막 이렇게 해서 정말 뭐 어떻게 힘을 할 수 없는 순간에 옛 생각이 떠오르죠.
여자친구라든지 뭐 슬피 우는 엄마의 모습이라든지 막 이런 게 떠오르면 갑자기 막 이렇게 부글부글해지고 영화라면 막 우글 하면서 갑자기 초능력을 발휘하는 듯한 뭐 이런 게 나오죠.
그런 건 마음 근력이 아닙니다. 그런 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겁니다.
현실적으로요.
어떤 사람이 지구력을 갖고 꾸준히 무슨 일을 한다라고 했을 때 예를 들어서 오래 달리기를 꾸준히 해서 능력을 더 발휘하거나 아니면 꾸준히 더 공부를 오래 한다 지구력 인디오런스를 발휘한다고 했을 때 생각만으로는 도저히 되지 않습니다.
생각은 몸의 일부 작용의 반응일 뿐입니다.
어떤 걸 쭉 해나가려면요 다시 말해서 정신력을 쭉 발휘하려면 몇 가지가 받쳐줘야 되는데 한 다섯 가지 정도가 받쳐줘야 돼요.
뭐가 맞춰져야 되냐면 첫째 뉴럴 네트워크 신경망이 받쳐줘야 돼요.
무슨 얘기냐면 나 해야 돼 해야 돼 이 생각이 있어야 되고요.
그 다음에 그거에 따른 엔도 크로놀로지라고 하죠 이 내분비의 그 시스템 이 뉴럴 시스템 밑에 내분비 호르몬 시스템 그거에 따라 도파민도 나오고 코르티솔도 나오고 아드레날디도 나오고 이 시스템도 잘 돌아가야 돼요.
그다음에 근육 시스템이 돌아가야 돼요.
앉아서 공부만 해도 근육이 필요하고요.
근육 시스템이 돌아가야 달리기도 하고 할 수 있어요.
이걸 또 잘 돌아가게 하려면 혈액순환 심장이라든지 혈액 시스템이 잘 돌아가야 이게 다 잘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게 또 혈액 잘 돌아가고 이거 하려면 폐기능 호흡이라든지 여러 가지가 다 돌아가야 돼요.
그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정신력이에요 이 다섯 가지가 다 정신력을 가능하게 하는 겁니다.
뉴럴 시스템만이 아니고 사실 뉴럴 시스템도 몸의 일부고요.
이 시스템이 다 돌아가야
끈기 이런 게 나오는 겁니다. 겉보기에 저 끈기 있어요.
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훈련하면 됩니다.
이 지금 말씀드린 다섯 가지 시스템을 체계적이고도 반복적인 훈련 그래서 이 내면 소통 체계 8장, 9장, 10장 여길 보시면 이거를 키우는 여러 가지 전통적인 훈련 시스템을 다 소개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건 운동 같아 보이고
어떤 건 명상 같아 보이고 어떤 건 호흡훈련 같아 보이고 하지만 그 목표는 이걸 키움으로써 역량 정신력을 발휘하게 하는 거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사실 우리의 일상을 치밀하게 한번 생각을 해보면 거의 너무 쉬운 얘기 저 말씀이 옳고 당연하구나 하는 걸 여러분들 금방 느끼실 수 있을까요? 저도 운동 엄청 좋아해가지고요.
제일 심플한 운동 이렇게 아령을 한다고 쳐도 아령 할 때 자기 근육의 움직임을 생각하고
그다음에 시선을 아령을 잡은 주먹이 이렇게 틀어지지 않도록 엄청 집중해서 신경을 쓰면서 아령을 하고 뭐 등등.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육체적 행위를 할 때 정신과 육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걸 우리가 평상시에 경험을 하고 있는데 배우기는 심신 이원론으로 배웠다.
네 그래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정신을 고쳐야 되고 육체적인 문제는 육체를 고쳐야 된다.
이런 이원론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회복 탄력성이란
심신이혼론이 아니라 몸과 정신이 하나인 그래서 이것을 종합적으로 뭔가 하여튼 움직이게 해서 키울 수 있다.
이렇게 우선 큰 틀에 우리가 심신 이혼론을 떠나서 회복 탄력성의 개념을 봐야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고요.
몇 가지 키워야 할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작심 3일이야.
그러면 그 말속에는 과제 지속이 좀 부족해도 있어요.
그 다음에 어떤 집중하는 힘이 좀 부족해도 있어요.
그 다음에 내가 자꾸 주의력이 흐트러져 충동적으로 돼.
그래서 그걸 또 막아야 돼. 여러 가지 요소로 이게 있는 거예요.
그 다음에 결심은 어디서 하냐면요 뇌 과학적으로 좀 보면 전전두피질의 앞부분 판단과 예측을 하는 부분에서 결심을 합니다.
그럼 결심을 했어요.
그러면 교수 말대로 뭘 한다 그러면은 그다음에 따라오는 건 행위잖아요.
그러면 행위를 하려면 전전두연만 갖고는 안 되는 거예요.
여러 가지 감정도 가라앉혀야지 뭐 이렇게 주위가 산만해지는 것도 잡아야지.
그다음에 내가 하기로 한 게 예를 들어 한 시간씩 운동하는 거야.
그러면 운동하려면 몸이 다 가동이 돼야지.
뭐 여러 가지가 있죠 그래서 어디서 약해서 이게 안 되는가 그걸 자기가 이렇게 스스로 바라볼 수 있어야 돼요.
그러면 좀 더 어려워지죠.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어떻게 하냐면 이 두 가지 축을 생각하시면 돼요.
왜냐하면 어떤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내가 그 일을 잘 바라보는 힘이 있어야 돼요.
쭉 내 어텐션을 집중하고 내 자원을 집중하고 그래서 내가 하려는 일이 뭐지? 이렇게 바라보는 힘.
그다음에 중요한 게 뭐냐 하면요 나를 바라보는 힘이 있어야 돼요.
내가 지금 저게 목표인데 글로 가고 있나 근데 내가 나를 바라보는 힘이 떨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내가 나를 바라보는 힘은 어디서 오냐면요 존재하는 능력이에요.
미 존재 나 여기에 그냥 있어요.
저 대상을 바라본다. 이거 해야 돼.
그거는 뭐냐면 행위하는 나예요. 누이.
그래서 행위 모드와 존재 모드 두 개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려서부터 많은 경우 이거 해 저거 해 나 이거 해야 돼 저거 해야 돼.
행위 모두 행위 모두 행위 모드 이 존재 모드에 대해서 너무 약해져 있는 거
그래서 이거 해 이거 해 이거 해 해놓고선 내가 나를 그러면 글로 몰아가는 그 힘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는 게 내가 나를 바라보는 그 능력 나의 마음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과의 내면 소통 나의 몸의 상태를 바라보는 나의 몸과의 내면 소통 이걸 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조금 이따가 내면 소통 이 책에 사실 여러분들 아 어떤 취지에서 그것이 엄청 중요하고 그것이 정말 가능하다면 회복 탄력성 의 실체랄까 나의 회복 탄력성 같은 걸 발견해내고 나도 뭔가 실천할 수 있을 거야 라는 기대는 갖지만 자 그러면 내면 소통은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이제 이게 궁금증이 있을 겁니다.
이 얘기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요. 이게 이제 조금 논리적인 얘기 앞에 제가 더 여쭙고 싶은데요.
아까 말씀드린 자기조절력 그러면 우리가 보통 어떻게 생각하냐면 자기조절력
내가 조금 더 이성적인 인간이 돼서 이성이 나를 통제하면 자기 조절을 잘 할 수 있겠지 거의 대부분 아마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김영 교수님 다른 얘기하고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이 원인은 어 내가 이성적으로 뭔가를 판단해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를 들어서 완전히 자기 주관에 의한 선택을 하면 자기 조절력이 훨씬 높아진다든지 이런 얘기들을 회복 탄력성을 하고 계시거든요.
지금 말씀하시는 내면 소통이 물론 이제 기본인데 내면 소통을 어느 정도 한다고 가정을 하고 내가 자기 조절력이 없어 그러면 무엇에 더 신경을 쓰면 좋을지 뭐 그런 차원에서 좀 쉽게 말씀을 해 주셔도 좋을 것
먼저 넓은 의미에서 자기 개발이라든지 내가 나를 좀 강하게 하고 싶어 아이캔 유튜브 유튜브 대학에 와서 나를 키우고 싶어 그러면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거거든요.
그러면 대전제가 뭐냐면 내가 나를 변화시킨다는 거예요.
이건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자기 동일자는
a가 a를 변화시킬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콩 씹은데 콩 나죠 콩심은데 팥이 안 나요.
그러면 콩 심은데 팥이 나야 이 콩이 근데 콩이 나는 이제 팥텔레라고 변할 수가 있을까요? 아니야 아니야.
콩을 심으면 씨앗이 말이야 이렇게
줄기가 나오고 이렇게 열매가 열리고 그러잖아요.
변화잖아 아니에요. 그건 변화가 아니에요.
원래 원래 콩이에요. 우리가 원하는 거는 콩을 심었는데 팥이 되는 거 또는 팥을 심었는데 콩이 되는 거 나방이 애벌레에서 나비가 나오는 거 이거를 변화 그런데 그거 하려면 외부에서 유전자 조작을 하든지 외부 무슨 개입이 들어와야 이게 되지 나방이 혼자 나 나비 될레가 되냐 말이에요.
그게 된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핵심적인 게 셀프는 나는 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하나의 실체가 아닙니다. 적어도 세 가지 나가 있습니다.
그게 그래서 경험하는 자 기억하는 자 이 배경자 이렇게 세 가지가 있어요.
그래서 그 자세한 건 이제 책에 설명이 기니까 이렇게 되고요.
그래서 내가 나를 변화시키는 게 가능한 이유는
이 내가 있고 이 내가 있다. 그래서 바라볼 수도 있고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선생님 말씀 중에 조금 의외일 수 있는데요.
결국은 사랑 사실을 되게 강조하고 계시고요.
다른 책에서도 그렇고 이제 내면 소통에서도 그러시고 그리고 존중 이런 걸 되게 중시하시고 이제 그런 것을 반복적으로 하면 전전두피질이죠.
이 여기가 좀 강화될 수 있는 그리고 이제 사실 뇌가 네트워크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여기를 강화시키면 이 네트워크이 움직이는 데 굉장히 중요한 어떤 핵심적인 활성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보시는 건데 그게 사람들이 조금 이해가 안 갈 수 있어요.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나 지잡대야.
어디 가서든 루서야. 나는 한 번도 승리해본 적이 없어.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한국 사회에서 이게 대학 서열에서 결정이 되니까 뭐 3 4 프로 제외하고는 다 말하자면 나는 지잡대 의식을 갖고 있어요.
그분들이 어떻게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있으며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해야 타인을 존중할 수 이제 이런 메카니즘 안에서 우리가 이제 전전두 피질 등을 강화시키면서 이제 회복 탄력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건데 제가 이 부분은 김 교수님께 오늘 즉답을 꼭 드리려고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고요. 답이 좀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하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뭐냐 어떤 일을 하고 힘을 발휘하고 이성적이고 이런 건 다 전전두 피질 이 앞쪽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그걸 약화시키는 건 불안감 두려움 어떤 감정적인 겁니다.
감정적인 건 거의 무의식에서 올라옵니다.
저쪽 변연계 쪽에서 무의식 속에서 올라오는 걸 그런 불안감 두려움 이런 거를 내가 어떻게 하냐 몸의 변화를 통해서
뇌에서 알아차립니다. 즉 모든 두려움이나 불안은 몸의 변화를 통해서 그걸 알아차린다.
이게 뇌과학적인 사실입니다. 자 그거 하나 이렇게 놔두고요.
지금 말씀 완전히 새로운 말씀이니까 하나 딱 새겨놓고 얘기를
이걸 왜 강조하냐면 과학에서는 보편적인 너무나 당연한 게 돼버렸거든요.
그런데 아직 일반 대중에서는 감정과 마음이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감정도 생각이고 내 안에 있는 거 아니에요 생각은 전전두 피질에 있어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있고 생각은 어느 정도 내가 하는 거예요.
감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나한테 일어나는 거고 내 몸의 문제예요.
심장 두근두근 뜨는 시계 그런 거예요.
내가 어떻게
반응 같은 거네요.
반응 같은 거.
뭔가 두려운 상황이 되면 반응이 나타나고 그거에 의해서 우리가 몸의 변화가 생기면 그 몸의 변화를 뇌가 인식해서 이제 두려움이 시작된다.
뭐 이런 표현이시거든요. 그 부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면 좋을 것 같아.
작년에 낸 중요한 논문의 핵심 주제 중에 하나가 페인 통증과 이모션 감정은 같은 거다.
같은 레벨의 거다. 그러면 예를 들어 선생님 어디 허리가 아파 그러면 어떻게 침 맞아볼까 여기 두드려볼까 이러지 가만히 앉아서 허리 통증 물러가라.
뭐 이러진 않잖아요. 감정도 그렇거든요.
분노가 올라오면 분노 물러가라. 분노 눌러야지 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분노가 이렇게 올라오면
몸을 어떻게 해야 돼요? 내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든지 내장을 어떻게 하든지 턱 근육 힘 빼든지 뭐 이런 걸 해야 돼요.
그걸 먼저 일단 하나 이해하실 필요가 있고요.
그다음에 그러면 이 변전두 피지를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우리는 그래야 이런 게 되니까. 그러면 언제 얘가 활성화 되냐면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우리가 의도적으로 내 전전두 피지를 활성화 그때 행복감도 느낍니다.
내 전전도 피지를 의도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자기 긍정 타인 긍정이에요.
다시 나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나에 대해 긍정적으로 하면 얘가 활성화됩니다.
기분도 좋아지고
그다음에 타인 긍정 저 사람이 좀 잘 됐으면 좋겠어.
저 사람 너무 멋있어요. 저 사람은 거인 같아.
존경스러워. 그러면 여기가 활성화됩니다.
자기 존중 타인 존중 자기 사랑 타인 사랑 자기 연민 타인 연민 이거 하면 여기 무조건 활성화된다.
그래서 그거를 일단 하나 해두시고요.
그러면 그게 행복감인데 또 사람들이 헷갈리는 게 뭐냐 하면 행복감은
보상에 의해서 행복한 거 아니야 갑자기 보너스 받고 싶고 내가 뭘 갑자기 얻을 때 이때 그거는 쾌감이라고 해서요.
뇌과학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뇌 상태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복 기분 좋아라고 얘기하는 거에 그래서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전전두피질 활성화되는 기분 좋음 도파민스키 보상 체계 활성화되는 기분 좋음.
이거는 완전히 다른 거라고 우리가 용어로 그냥 기분 좋아 행복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다른 거고요.
얘는 우리가 원하는 마음 근력이나 회복 탄력성을 별로 높여주지 않아요.
플래주 도파민은 보상은 그런데 자기 긍정 타인 긍정은 사람의 역량을 확 높여줍니다.
그래서 자기 존중 이런 걸 훈련을 해요.
이제 그것까지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말씀하신 대로 나는
환경도 안 좋고 좋은 집안도 아니고 지잡대 나와가지고 말이야.
난 인생 지금 이렇게 되는데 자기 존중을 어떻게 해 이때 주의해야 될 지점이 있는 거예요.
뭐냐 하면 셀프는요. 일단 그거를 아셔야 돼요.
지잡대 나오고 뭐 이렇게 밖에 안 됐어.
그거는 리얼 na가 아니에요. 그러면 이거 우기는 거 아니야 종교적인 얘기 아니 진짜예요.
이 컵 갖고 예를 들어볼게요. 이게 제 컵이에요.
제 먹이고 컵이에요.
마실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이게 나의 일부 같아요. 맨날 내가 들고 다니니까 근데 저는 이거를 나라고 생각 안 하죠.
나의 일부라고 생각 안 해요. 내가 갖고 있는 거예요 나의 일부가 아니에요.
그러면은 이 컵 말고 제 옷은요 지금 입고 있는 이 옷 이게 나예요 나의 일부예요?
아니에요. 내가 잠시 걸치고 있는 거예요.
나의 본질과 아무 상관없어요. 똑같은 게 제 이름입니다.
김주환 김주환이 돼요 아니에요. 나는 있는데 김주환이라는 이름을 이렇게 쓰고 있는 거예요.
이름 바꿀 수도 있고요. 석수로 부를 수도 있고요.
아니면 다른 세려형 아고스티노라고 할 수도 있고요.
이름은 나의 본질이 아니에요. 옷 입고 입듯이 이름을 걸치고 있는 거예요.
연세대 교수라는 직업 정년 퇴임하면 저 교수 아니고 교수라는 건 잠시 쓰고 있는 그것도 직함에 불과하잖아요.
이 컵과 마찬가지예요. 제가 잠시 이거 들고 있는 것처럼 교수라는 타이틀도 잠시 들고 있는 거고 전 교수 되기 전에도 저였고 교수 때려치고 나면 또 저일 거예요.
그러면 교수나
교수라는 직함이나 내 직업이나 이거 하나하나 따져보세요.
그러면 직업도 내가 아니야 제가 몰고 다니는 차도 내가 아니야 집도 내가 아니야 무엇도 내가 아니야 무엇도 내가 아니야 다 하면 남는 게 뭘까요? 남는 게 이거 남아요 이 커브를 볼 때 여기서 나는 어디 있죠? 이게 컵이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그게 나예요.
내가 지금 이 옷을 입고 있나 알아차리는 존재 있잖아요.
그게 나예요. 지금 내가 교수 역할을 하고 있지 알아차리는 나가 그게 진짜 예요.
그 나는 인류에 나오지도 않았고 지잡대 나오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지잡대 나왔다고 좌절하시는 분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지잡 대 나온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도 좌절하죠 좌절하는 주체는 누구죠?
나 지잡대 나온 내 모습이 싫어라고 하는 이 사람이 누구예요? 이게 진짜 그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내 지잡대 인가가 싫어 이 사람은 지잡대 나온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이 모습 지잡 때 나오는 게 싫어하는 사실 내가 싫어하는 것도 아니에요.
내가 생각하기에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이 껍데기로서의 나 옷 같은 그거를 싫어하는 거겠죠.
그러니까 이게 뭐 지잡대 나오신 분 지잡대라고 실망하시는 분 잘 들으세요.
이 옷 같은 거예요. 지금 지잡대는
근데 어떤 사람들이 이 옷을 싫어할 거야 그래서 뭐 어때 그게 나랑 무슨 관곈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아 그래 이 지잡대 옷 입고 있다고 나 무시해 알았어 그럴 만하지 그건 당신들의 편견이고 그게 진짜 난가 아니라는 걸 명료하고 명확하게 깨달아야 돼요.
그럼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것도 니가 이것도 그게 이제 네티네디라는 명상법이에요.
진짜 나를 찾아가는
그 진짜 나를 찾아가면 거기 뭐가 있냐면 정말 스피리츄한 셀프가 있습니다.
아무거에도 흔들리지 않는 어떻게 묘사 불가능해요.
인식 주체예요. 이게 컵이네라고 알아차리는 인식 주체예요.
그걸 배경자라고도 부를 수 있어요. 그 인식 주체는 직업도 없고 학력도 없고 나이도 없고
다만 인식 주체예요. 고요해요. 텅 비어있어요.
그게 존재하는 상태인 거예요. 지잡대 나왔다 뭐 했다 이건 누 누잉 누잉 누잉 누 누잉 하는 거 얼마든지 변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걸 먼저 확실하게 나라는 거는 뭐냐 많은 분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시달리고 멘탈 때문에 시달리시는 많은 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 비판 혐오 있어요.
나를 미워하고 나를 혐오하고 나를 미워하고 나를 맨날 자책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멘탈이 약하고 굉장히 불안한데 그때 깨달아야 되실 건 뭐냐면 내가 내 모습이 너무 싫어 할 때 시름을 당하는 내가 있고 싫어하는 내가 있죠.
예 얘가 진짜 여러분 그거는 이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그걸 찾아가는 게 이런 내면 소통 훈련의 아주 기본 방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답이 됐나요? 제가 하다 보니까 너무
너무 깊어서 안 됐어요. 좀 구체적 농담 농담입니다.
제가 또 이부에서 계속 그 내면 소통 이 책에 들어가 있는 내용들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서 다시 얘기를 할 거니까 여러분들이 이 영상을 통해서 그리고 2부 영상을 통해서 답을 얻으실 거고요.
그런데 이제 방향성은 조금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아서 이거는 이제 회복 탄력성에 쓰신 내용이고 내면 소통에도 기본적으로는 그 정신을 유지하고 계신데
이제 인도의 인사 나마스테 얘기를 이제 시빌리언 측에서 하셨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이 여기에 뭐 속된 말로 뻑 갔어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사람을 볼 때 그 안에 존재하는 신에게 경배하는 그런 느낌의 인사란 말이죠.
그러니까 김장영 교수님은 11년 전작을 내실 때부터 사람 안에 존재하는 신 얘는 신과 상관없이 철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그걸 존재라고 봤죠.
그러니까
그런 퓨어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자기가 가까이 가면 거기에서부터 내면 소통 그러니까 그 행위 자체가 내면 소통이고 거기에 도달하면 그 다음에 근력을 키운다든지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기본적으로는 보고 계신 것 제 설명이 맞습니다.
맞아요. 너무 다행이네.
그래서 자기 가치감으로 연결이 돼서 자기 가치감이 모든 마음 권력과 회복 탄력성의 핵심 근거가 되는 거죠.
실제로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내 안의 존재라든지 내 안의 어떤 영성이라든지 이것을 느끼는 것보다 타인에게 느낀 것이 계기가 돼서 어 내 안에도 그런 존재가 있었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나의 학력이나 기타 등등 나에 대한 주변의 평가나 이것보다 내가 나를 훨씬 더 사랑하는 게 나의 삶에서 출발이네.
이런 걸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기가 지금 이제 이 그 이제 마음 수련을 중심으로 하시니까 자기가 자기를 보는 걸 되게 강조하시는데 타인을 통해서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깨달음 이런 거를 많이 느끼고 하지 않습니까?
거의 뇌과학적으로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 처리 영역과 타인에 대한 정보 처리 영역은 거의 비슷합니다.
많이 구별이 안 돼요 이렇게 그렇군요.
그래서 자기를 존중하면 타인 존중력이 생기고요.
네 타인을 자꾸 존중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존중하게 됩니다.
나를 높인다고 그래서 남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같이 갑니다
여러분들. 조금 긴 얘기이면서도 이제 우리가 내면 소통의 본질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어찌 보면 가장 근원적인 문제이자 힘을 찾아가는 그런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좀 길게 근원의 얘기를 쭉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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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탄력성 자기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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