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크고 마초적인 수염과 강인한 체력을 지녔으며, 어릴 때부터 총칼 다루는 법을 배워온 이슬람 전투민족입니다.
풍부한 전투 경험으로 단련된 데다 잔혹한 고문과 살인을 불사해서 일명 악마의 부대라고 불리죠.
정답은 바로 채책 민족입니다. 최근 러시아에선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를 암살하고 오라며 이 악명 높은 체첸 부대를 보내기도 했죠.
이 얘기는 마지막에 하기로 하고, 먼저 체첸이 어떤 나라인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체첸인들이 이렇게 강력한 전투민족이 된 이유는 이들이 나약해선 살아남을 수 없는 아주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 속한 체첸 공화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러시아 남서부 국경 지역을 보면, 흑기와 카스피에로 둘러싸인 카카스 산맥이 보입니다.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이 산맥 북쪽 언저리에 체첸 공화국이 있는데요 이 지역에서는 약 6천 년 전부터 유목 생활하던 체첸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체첸 민족은 사실상 이구역 터줏대감들이죠.
그런데 이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요충지라, 예로부터 외세 침략에 징글징글하게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18세기부터는 러시아 영향권 아래 있게 되죠.
채책인들은 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끔찍이도 싫어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간단합니다. 너네 러시아 슬라브족이랑 우린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니까, 우리끼리 좀 따로 나라 만들어서 살겠다는 거죠.
채체인들은 이슬람 문화로 똘똘 뭉쳐 있거든요.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으로 성장을 시작한 러시아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처럼 식민지를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이때 체첸이 러시아 제국 침략을 받고 강제 편입돼서 자유를 뺏기고 아주 사무치는 원한을 품게 됐죠.
체첸인들은 러시아 제국에 동화되길 거부하면서 고유의 전통과 종교를 꿋꿋이 지켜갔습니다.
체첸인들은 독립과 저항 정신을 몇 세대에 걸쳐 물려주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기에도 이들은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요.
1917년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터진 틈에 식민지를 벗어나보려 했지만, 1921년 소련군에게 완전히 장악되어 소련에 편입됩니다.
소련의 레닌 정부는 그들에게 독립이 아닌 자치권만 줬죠.
1936년엔 체첸과 이웃나라 인구, 시가 합쳐져서, 체첸 인구시 자치공화국으로 소련에 편입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 체첸이 위치한 카카스에
숙청의 피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채친 지도자들이 처형당하자, 채친인들은 대규모 저항을 일으켰는데, 이에 스탈린 군대가 12만 명의 인구를 학살하거나 강제 추방시켜, 분노한 채체인들은 스탈린 체제에 격렬히 저항해보지만, 또다시 진압됩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스탈리는 독일 나치군이 체첸을 잠시 점령했을 때, 체첸인들이 나치군에 협조했다며 응징을 하는데요 이렇게 채친 공화국이 해체되고,
50만 채채민족이 추방됩니다. 채채민들은 주로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 쫓겨났죠.
이 굴욕적인 대규모 이주 과정에서 30% 정도는 계획적인 학살 또는 기아로 죽은 걸로 추정됩니다.
복수심에 타오른 채체인들은 순순히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강제 이주 중 도망에 성공한 최채인들은 카카스 사막에 숨어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소련군을 괴롭히죠. 이 강제 이주와 투쟁 속에서 약 23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스탈린의 강경책 속에서 전체 인구 중 거의 절반이 통째로 사라진 거니까 그 수가 어마어마했죠.
그리고 1957년, 죽음의 투쟁을 하던 체첸인들의 노력과 흐르시초프의 개혁으로 채친인들은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온 이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부의 차별 속에서 채친인들은 범죄조직 집단 취급이나 받을 뿐이었죠.
그렇게 러시아의 시계도 계속 흘러갑니다.
1991년이 되면 소련이 해체되죠. 새롭게 탄생한 러시아는 89개의 연방으로 엮인 다민족 연방국가 체제였습니다.
이 시기, 체첸의 독립 영웅 조아르 두다에프가 등장하는데요.
체친이 강제 이주당했을 때,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두다에프는 소련 해체와 함께
다른 공화국들이 독립을 시도하자, 그 여세를 몰아서 채친의 일방적인 독립을 선포해 버립니다.
이렇게 두다에프가 체첸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죠.
그런데 러시아가 이걸 가만 두고 볼 리가 없습니다.
체첸에게 경제 봉쇄 정책을 펼친 러시아 중앙 정권은 체첸 땅에 대한 관할권을 끝까지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쯤 되니 궁금해집니다. 그렇게 땅도 큰 러시아가, 조그만 체첸 땅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채친 독립을 막으려고 한 걸까요? 이제는 러시아 입장에서 한번 들여다봅니다.
체첸은 크기가 작아도 여러모로 같이 있는 땅입니다.
카스피의 유전에서 러시아 경제 동맥인 원유가 만들어지죠.
그리고 이 원유를 러시아로 공급하는 송유관이 체첸을 통과합니다.
그래서 만약 채친이 독립해서 떨어져 나가면 송유관 통과료를 거액 지불하게 되는 등 손실이 큽니다.
무엇보다도 체친 수도 그로즈니에서 새로운 유맥이 발견되면서 러시아 3대 유전 중 하나로 부상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채친을 포기하긴 힘들다는 거였다.
특히 러시아에게 맞서는 채채민족은 러시아 입장에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였습니다.
러시아는 연방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안보를 위해, 이런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독립운동을 막아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소수민족이 자꾸 들고 일어나면 그야말로 국가적 위기니까요.
그래서 결국 러시아는 1994년 체첸을 침공합니다.
이렇게 체첸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러시아 군대가 진격해 들어옵니다.
당연히 러시아군의 병력이 압도적이었지만, 죽기 살기로 몸을 던지는 채친의 저항으로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서 벌어진 시가전에서는 러시아군이 전력을 엄청 손실하는데요.
여기서만 전차와 장갑차가 100대 넘게 파괴되고, 러시아군 약 2천 명이 사망합니다.
당시 채친군 뿐만 아니라 그로즈니 시민들까지 무장해서 목숨을 바쳐 매복과 기습으로 맞섰습니다.
참고로 그로즈니는 러시아어로 무서운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결국 군사력 차이는 어쩔 수 없었는지, 러시아군이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장악하게 되는데요.
패배한 채친군은 이제 정규군이 아닌 게릴라군이 되어 남부 산악지대로 피신해 게릴라전을 이어 체첸의 기세가 정말 대단했던 게 대다수 국민들이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였고, 게릴라 공격이나 자살 공격까지 불사해가며 저항했죠.
이때 다른 이슬람 국가의 지하드 전사들 약 5천 명이 자발적으로 채틴을 도우려고 들어왔는데요.
이때 과격한 테러리스트들도 체친에 섞여 들어오게 됩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1996년, 러시아 군은 체첸 대통령 두다에프 암살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체첸의 끝없는 반격 때문에 결국 완벽히 정복하지는 못했죠.
결국 1996년, 러시아는 체첸과 평화협정을 맺고 물러납니다.
그리고 치첸 독립에 대한 문제는 2001년까지 미루기로 하는데, 이로 인해 러시아 옐친 대통령의 임기는 수직 하락합니다.
막강한 병력을 갖고 소수민족도 제압 못하다니 러시아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래치가 났던 거죠.
그리고 1999년, 보다 참혹해진 제2차 체첸 전쟁이 일어납니다.
왜 더 참혹해졌냐면, 러시아 옐친이 후계자로 지목한 인간 불도저가 이를 갈았기 때문입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푸틴 총리입니다. 2차 채친 전쟁의 명분은 이렇습니다.
체첸의 반군 지도자 샤밀 바사에프라는 인물이 이슬람 신정국가를 건설하겠다면서 다게스탄 공화국을 침략한 건데요.
이걸 본 러시아는 기가 막혔습니다. 이거 연방 체제에 도전하는 거 맞지? 하면서 최칭군을 막아냈죠.
그러던 중에 모스크바 아파트에서 연쇄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파트 한 채가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또다시 평범한 하루를 살았을 300여 명의 주민이 사망했죠.
러시아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테러 배후로 체첸 반군이 지목되면서 제2차 체첸 침공이 시작됐다.
러시아군은 기와 폭탄으로 도시를 불바다로 만든 뒤,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장악하고, 체첸 전역을 그야말로 페어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푸틴 총리는 구석구석 체첸 반군을 제거해 갔죠.
지난 1차 채친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던 러시아는 이번에 전술을 수정했습니다.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트진 반군은 민족주의 세력과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이렇게 두 파로 나뉘어 있었는데요 그중 민족주의 세력을 앞세워서 실러 정부를 수립합니다.
그리고 친러 성향의 체첸군은 산악지대에 거점을 마련한 체첸 반군을 러시아군이 점령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결국 2차 채친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결말이 났죠.
지난 1차 채친 전쟁 때 나약하기만 했던 옐친과는 달리, 푸틴은 강력한 러시아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차 채친 전쟁 이후 푸틴의 인기는 수직 상승하게 됐다.
하지만 전사의 피가 흐르는 체첸인들은 절대로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어진 저항으로 러시아의 테러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는데요 2002년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극장에서 인질 사건이 벌어집니다.
한 50명 정도의 채친 반군이 관객과 배우까지 무려 1천 명 정도를 인질로 잡더니, 러시아 군은 일주일 내로 채친에서 철수해라 이렇게 요구한 거였죠.
시금땀 나는 대치 상황 끝에 러시아 특수부대가 진압하긴 했는데, 그 과정에서 최친군뿐만 아니라 인질로 잡혀 있던 무고한 관객
150명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이 세계를 경악시킨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요 체첸 반군 50명 중 18명이 체첸의 여전사들인데, 이들이 자신의 몸에 폭탄을 두르고 테러에 가담한 겁니다.
채책 여성들이 이토록 분노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으로 아버지와 남편, 가족들을 잃고, 러시아 군의 온갖 방법으로 인권을 유린당하면서 이미 죽음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채친과 러시아는 서로 무시무시한 피해 역사를 이어갔죠.
2004년, 북 오세티아 소도시인 베슬란에서는 한 초등학교에 채친군이 기습해서 어린이와 민간인 3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비극도 일어납니다.
러시아 심장부까지 밀고 들어가 폭탄 테러를 일으킨 이들의 정체는 바로 여성 부대인 검은 미망인 러시아와 싸우다 죽은 남자들의 아내들입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테러가 지속되면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가자, 러시아 국민들은 앞뒤 안 가리는 채태인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2006년에 러시아 군은 샤밀 바사이프를 사살하고, 채친 반군들을 계속 죽여나가면서 사실상 채친군을 멸망시키는데요.
1, 2차 체첸 전쟁 끝에 120만 명이었던 채친 인구는 80만 명이 돼버렸죠.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2022년 현재, 체첸 공화국의 수장인 람잔 카디로프는 푸틴의 옆을 지키는 측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를 끔찍히 혐오하던 체첸의 수장이 어떻게 푸틴 라인을 탄 걸까요? 사실 카디로프는 1차 체첸 전쟁 때 체첸 반군으로 러시아와 싸웠는데요
2차 채친 전쟁 때는 노선을 바꿔 러시아랑 손잡고 분리주의 반군을 공격한 인물입니다.
이 때 푸틴에게 잘 보인 카디로프가 지금까지도 채팅에서 권력을 잡고 있지.
카디로프는 자신의 전투 부대를 향해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를 끝장 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야말로 러시아 비장의 카드가 된 체첸 특수부대가 키eu 외곽에서
젤렌스키 암살을 시도했지만, 3월 1일 젤렌스키에게 닿기도 전에 전멸하는데요.
놀랍게도 우크라이나에선 이미 체첸 특수부대의 작전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3월 3일, 국제 해킹단체 어나니머스는 우크라이나에 젤렌스키 암살 부대 정보를 넘긴 곳이 바로 러시아 연방보안국 fsb라고 밝혔습니다.
fsb에게 정보를 받은 우크라이나는 즉시 이를 미국에 알렸고, 미국이 다시 채친 부대를 추적해서 우크라이나군에 좌표를 제공해줬다고 하죠.
예전에 세계 최고의 첩보 기관 중 하나라 불리던 옛 소련 국가안보위원회 kgb가 현재 fsb가 된 건데요.
fsb는 국내 특수 작전, 테러 대응, 비밀 작전을 담당하고, 첩보를 책임지는 러시아 핵심 정보기관입니다.
kgb 출신 푸틴은 항상 보안 기관 출신 측근들에게 의존해 왔는데, 안 그래도 전쟁에서 고전하는 게 너네 탓이라며 fsb에 잔뜩 짜증이 나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fsb가 푸틴에게 올린 최종 보고서에는, 우크라이나 상황이 제대로 보고되지도 않은 데다, 내부 간부들이 정보를 조작해서 푸틴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만 보고한다는 얘기도 나왔죠.
fsb에서 이런 중요한 정보가 흘러나왔다는 건 곧 러시아 내부의 푸틴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거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공화당의 한 상원의원은 우크라 사태를 끝내려면 러시아의 누군가가 푸틴을 암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런데 체첸 부대가 제거됐다고 해서 젤렌스키의 안전이 보장된 것도 아닙니다.
최근 체첸의 지도자 카디로프는 자신이 이끄는 체첸 특수부대 요원들과 우크라이나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최근 3월 13일에는 카디로프가 키오에서 포착됐다는 소식
전해졌습니다. 그는 최채인 1만 명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됐고, 전투에 최대 7만 명을 투입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군의 진격이 계속 지지부진해진 상황에서, 시가전에 능한 용병들이 투입됐고, 그중에서도 세창군과 러시아 민간 용병업체인 와그노그룹 요원이 전진 배치될 것으로 전해졌다.
교착 상태에 빠진 러시아군이 병력을 증언해서 공세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용병들이 뛰어드는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모여든 외국인 의용군은 약 2만 명으로, 대부분 유럽 출신이며, 미국과 한국 등도 포함됩니다.
러시아 측에는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전투원들도 많은 데다, 각자가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분 하에
극단적인 무력이 행사되고, 전쟁이 더 잔인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쟁 3주차에 들어선 지금, 젤렌스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딸려 있는 한 지방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독립국으로 남는 것이고, 푸틴에게 중요한 건 러시아의 승리입니다.
카테고리 없음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체첸 부대에 대해서 젤렌스키 암살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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