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같은 해 11월 23일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간의 평가가 정말 극명하게 갈리는 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은 한 가지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이들이 일명 신군부라고 불리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기반으로 정권 창출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에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 또한 군내 요직을 독차지하고 정치권까지 진출하는 등 그야말로 권력의 중심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 소위 정규 육사 1기라고 불리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국내 사조직입니다.
창설 당시엔 이름이 하나회도 아니었고 이들도 육사 생도에 불과했지만 당시 정권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점점 세력을 강화하며 군내 핵심 보직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하나에는 군대를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버렸고 126 사건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하며 권력의 공백이 생기자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 왜 사조직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군대는 사실상 국가의 모든 무력을 독점하는 조직입니다.
누군가가 이 무력을 멋대로 휘두른다면 다른 사람을 억압할 가능성이 있기에 정당한 절차를 통해 쓰여야 하죠.
우리나라에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명령권을 독점하는 것으로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그런데 만약 군내에 사조직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조직은 오직 조직 그 자체를 위해 움직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좋은 자리를 나누고 진급을 도와주겠죠.
여기에는 국민도 정부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의 정당한 무력을 사조직이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며 군대는 그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되겠죠.
따라서 군대 내부의 사조직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실제 이런 사조직이나 군대를 기반으로 정치를 하는 군벌을 방치한다면 민주주의는 허울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습니다.
타국의 사례를 보아도 그렇죠 세속주의를 표방하던 군부가 정국을 주도하던 터키는 1960년을 시작으로 1971년 80년
98년 그리고 2016년까지 자신들과 성향이 다른 이슬람주의 우익 정치인이 집권하면 쿠데타로 나라를 뒤집어버렸습니다.
또한 터키보다는 덜하지만 이집트 아르헨티나 미얀마 등을 보아도 정치군인과 민주주의는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이전부터 하나의 숙청을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하나회를 배후에 두고 있던 민주정의당과 합당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스스로 말하길 합당 이전부터 이들과 더러운 동거를 할 생각은 없었다라며 진작부터 숙청을 생각했죠.
타이밍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군 통수권자가 된 것도 있지만 노태우 계가 전두환계를 밀어내고 대부분의 요직을 차지하는 등 하나회에서 내부 갈등이 있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회가 힘을 합쳐 즉각적으로 대응하긴 어려웠고 여기에 군 내부에서도 하나외에 대한 비아나의 출신의 반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하나회를 찍어내기에 정말 시기적절했습니다.
1993년 3월 5일 김영삼 대통령이 64 49기 졸업식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축사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올바른 길을 걸어온 다수의 군인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영유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잘못된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의미심장한 축사가 불법 사조직 하나이를 향한 선전포고였다는 사실은 얼마 후 모든 사람이 알게 됩니다.
3일 뒤인 3월 8일 아침 김영삼 대통령은 권영일 국방부 장관을 부르더니 대뜸 군 장성들은 언제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장관은 대통령이 통수권을 행사한다면 언제든 가능하다라고 말했는데 대통령은 그 즉시 하나의 핵심인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국군기무사령관을 경질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12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권영일 장관은 정기 인사 때까지 미루자고 건의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단호했습다 4시간 뒤 임명된 후임 인사는 모두 비아나의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이러한 메시지에도 그가 하나회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정의당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사건을 앞으로 있을 숙청의 신호탄으로 여긴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한편 4월 2일엔 용산구 동빙고동 구린 아파트에 이상한 유인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우편함과 주차장에서 발견된 이 유인물은 a4 용지 10여 장으로 만들어졌는데 육사 하나의 회원이란 제목이 적혀 있었죠.
여기엔 현역 중장급인 64 20기부터 중년급인 36기까지 총 142명의 하나회 회원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뉴스에까지 보도되며 군 내부의 불법 사조직 하나회가 존재한다는 것이 만천하에 알려진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백승도 대령이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며 자수했고 조사를 통해 142명 중 105명이 하나의 회원이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일각에선 이 사건이 하나의 숙청을 위한 이벤트라고 보기도 하는데 순서상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습니다.
애초에 숙청은 김영삼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기획했죠.
실제로 그는 이미 해임 대상자를 정확하게 지목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후에 숙청에 성격을 바꿔놓게 됩니다.
하나의 명보가 살포된 4월 2일 그날에도 하나의 숙청은 계속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이 땅에서 군사 쿠데타의 망령을 영원히 지어버리겠다고 하며
하나의 출신 안병호 수도방위사령관과 김영선 특전사령관을 갈아치웠고 이어서 1군 2군 3군 사령관을 갈아치우는 등 하나의 출신 장성들을 예편시켰으며 진급에서 배제시켰습니다.
5월 24일엔 1212 반란에 관련된 고위 장성들을 예편시켜 버렸는데 하나의 회원 중 삼성 장군 이상 전원과 소장급 일부가 군복을 벗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지 약 3개월 만에 떨어진 별의 수가 40개를 넘었다고 합니다.
한편 하나의 내부에선 김영삼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를 배신으로 여겼습니다.
앞서 말했듯 김영삼이 자신들과의 합당으로 당선됐는데 당선 후 숙청은 배신이라는 것이죠.
그러다 7월 9일 사건이 터지고 마는데 현역 장성 20여 명이 모인 합참 회식에서 하나의 회원이던 이충석 소장이 탁자를 내려쳤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군을 이런 식으로 대해도 되냐며 정부가 이러니까 외부에서도 군을 우습게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접시를 던지는 등 회식장을 뒤집어 푸는데 그 자리에 있던 장성들은 이충석에 불만에 동조했던 것인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곧 청와대에 보고됐고 이충석은 일주일 뒤에 해임되었으며 두 달 뒤에 전역당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초기에 하나의 고위 장교만을 숙청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명단이 살포되어 그 존재가 전국에 공개된 상황에서 이러한 반발이 일어나니 그는 하나의 숙청의 범위를 모든 장성으로 확대했습니다.
하나회를 지지하는 군부 일각에선 고려 시절 무신정변이 일어난 이유를 아느냐 라며 문민정부를 겁박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며 숙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대통령은 당시 하나일 뿐만 아니라 군 전반에 만연한 비리를 퇴출시키려 했는데요.
그는 율곡사업이라고 불린 국군 전력 강화 사업에 대해 전방위적인 비리 수사를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이 수사로 인해 과장을 좀 못해 국군 수뇌부가 날아갔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많은 인사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숙청이 끝난 이후 생존한 하나의 회원들은 피해 의식에 빠졌습니다.
1994년 10월 25일 오영근 소장은 생도들과 가족들을 모아놓고는 정치권이 군의 자존심만 짓밟고 분열시키는 일에만 몰두한다며 군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탄압하는지 모르겠다고 선동을 했고 저녁 조치 됐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행동을 통해 하나회를 숙청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회가 지금까지 해체되지 않았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된다면 영상 초반에 언급한 터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군부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인물이 정권을 잡으면 쿠데타가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문민 정부는 언제나 군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집트의 경우를 보면 거긴 군부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넘어서 국가 경제에 유화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도로 건설 리조트 건설 경공업 정유 주유사업 골프장 등의 사업을 하며 심지어 생수와 컴퓨터 판매 그리고 숟가락 공장 분유 사업까지 하고 있죠 한때는 군대가 예산을 요청하면 국가는 지급만 할 수 있고 거부할 수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최악의 케이스는 미얀마처럼 군부 독재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미얀마는 군부가 2011년 형식상 민주주의를 이행했는데 군대가 경찰 특수부대 육해공군 등 무력 조직을 장악하여 자신들이 선거에서 패배하면 쿠데타를 일으키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실제로 2020년 11월 총선에서 패배하자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8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하나회를 해체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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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의 설립과정와 역사 그리고 해체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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