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성현이라 불리는 공자 그가 남긴 작품들보다 로마의 키케로가 집필한 의무론이 훨씬 우수하다고 평가한 케겔 그는 자신의 철학사 강의에서 중국 철학은 발전이 없다고 폄하했는데 무엇보다도 공자 사상에서는 사변 철학이란 없고 윤리적인 교육만 보인다고 평가했었죠.
사변 철학 그러니까 경험을 하지 않고도 순수한 사유를 통해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철학
더 쉽게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된다는 것을 일일이 다 경험하지 않아도 추론을 통해서 그러한 앎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러한 철학적 성격이 공자의 사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해결의 평가인 것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봐야겠죠.
경험이 아닌 인간의 논리적 사유를 통한 앎의 추구 바로 이러한 사변 철학만이 진정한 철학이며
공자의 가르침 가령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염려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염려하라고 하는 이런 사상은 수준이 낮은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런 물음의 근본적인 답을 찾기 위해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서로 다른 특징은 무엇이며 어떤 이유로 이 두 지역의 철학적 성격은 달라졌는가 하는 내용부터 알아봐야 합니다.
그래야 동과 서의 사상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는 이 시대에서 우리가 19세기에 세계를 가졌던 편견 그러니까 다른 것을 곧 수준 낮은 것이라고 보는 편견 바로 이것에 빠지지 않은 채 철학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번 주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차이점으로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저는 이 물음을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공지능 z gpt에게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동서양의 철학은 수세기에 걸쳐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철학적 흐름이라고 답을 하면서 다음에 다섯 가지 내용을 주요 차이점으로 꼽았는데요.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끝부분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일반론이며 특히 현대철학에서는 두 전통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과 사유의 교류가 있었다고 덧붙이고 있죠 자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답변이 괜찮았나요.
네 제가 보기에도 그리 나쁘지가 않은 답변으로 보이는데 단 여기서 우리가 잠시 주목해야 하는 내용이 있으니 그게 바로 동양철학의 기원에 대한 부분입니다.
서양 철학은 고대 그리스 및 로마로부터 기원했다고 보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동양철학의 경우는 사실 서양철학처럼 하나의 범주로 묶는 게 쉽지 않습니다 가령 인도에서 태어난 사상 체계와 중국에서 태어난 사상 체계 사이에는 사호 간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강하며 한자 문명권으로 묶이는 한중일과 달리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의 경우는 인도 유럽 어족이라고 해서 유럽 문명권과 더 친연성을 가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불교를 처음 만났던 중국인들은 이것이 자기들 전통에서는 본 적이 없는 낯선 사상이라서 이해를 하는 데 애를 먹었답니다.
따라서 불교의 낯선 개념들 가령 공이라고 하는 것을 노장사상을 활용해서 무라고 이해하는 방식을 취하는 이른바 격의 불교 시대를 보내게 되었던 것이죠.
이처럼 두 문명권에서 태어난 철학은 그 성격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두 문명의 철학적 전통을 서양철학사처럼 동양 철학사라고 하는 하나의 범주로 묻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책 gpt가 제시한 답변과는 달리
동양철학의 범주를 중국 철학의 영양 속에서 성장한 동북아시아의 철학으로 한정할 것이며 이러한 동양철학과 서양의 철학은 무슨 이유로 서로 다른 성격으로 성장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미국 프래그머티즘의 시카고 학파 창시자 존 듀 그로부터 철학을 배운 풍우라는 현대 중국 철학계의 거장이기도 하죠.
그럼 그가 생각하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인식론의 유무 즉 서양철학에는 인식론이 있는데 동양철학에는 인식론이 없다는 것이며 서양철학은 가설에 의한 개념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지만 동양철학은 직관에 의한 개념을 소중히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지금부터 저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푸모라는 동양철학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고대의 중국이 농경에 기반한 문화였다는 점과 서양철학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고대의 그리스가 상업에 기반한 문화였다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우선 농경문화에서 살았던 동양인들은 자기의 감각으로 직접 감지된 것
가령 눈으로 본 곡식의 상태 손에 만져진 흙의 상태 등등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며 이러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농사를 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감지하는 정보를 의심하지 않으며 그 정보를 현실 속에서 그대로 활용한다는 거죠.
그런데 바다를 끼고 있는 해양국가 그리스에서는 농사 대신에 물자 교류가 활발한 사업이 문화의 기반이었고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구체적 사물보다는 추상적인 숫자에 먼저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수리적 판단에 의해 파악된 대상 그것을 현실적이라고 여겼으니 그들에게 현실적인 것이란 언제나 추상적인 사고 이후에나 만나게 되는 것이고 확실한 것 또는 명확한 것이란 내 눈으로 직접 간지한 게 아니고 계산 과정이라고 하는 추상적 사고 과정을 거쳐서 얻게 된 그런 하나의 결론이라는 것 따라서 서양에서는 인식론적인 문제가 발생을 했고
동양에서는 인식론적인 문제가 없었다고 풍우라는 주장을 했는데 여기서 인식론적인 문제라 이게 뭐냐 하면 쉽게 말해서 감각하는 나하고 감각하는 대상을 구분할 때 발생하는 그런 문제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농부가 자기의 눈으로 감각을 한 그 벼 여기서 농부는 감각 주체 벼는 감각 대상인 거죠.
그런데 이때 저 농부가 자기의 감각 기관으로 직접 파악한 벼에 대한 정보를 믿지 못한다고 한 번 해봅시다
그러니까 내 눈에는 이 벼가 병든 상태 같아 보이지만 저 벼 속에는 내가 직접 감지할 수 없는 불변의 본질 같은 게 들어있지 않을까 뭐 이런 고민을 한다면 이때부터는 자기가 얻은 지식에 대해 의심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 그 배후에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어떠한 불변의 원리를 찾고자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얻은 지식을 확고한 진리로 뒷받침해줄 어떠한 근거를 더 찾고자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때 발생한 문제 즉 감각 주체가 대상을 감각하여 얻은 지식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그 진위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문제 이것이 인식론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는 이런 추상적인 사고에 따른 인식론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거죠.
자기가 온몸으로 느낀 자연 그 자연의 변화를 직감하면서 곧바로 그에 맞는 농사 활동을 펼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업적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있다가는 송인수에 넘어가기 쉬웠다는 거죠.
그래서 수의적 사고 즉 계산하고 추론하여 보편적인 개념을 적립시켜 놓는 게 중요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감각을 통해 얻는 지식은 불완전한 것으로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문화 속에서 태어난 플라톤은 현실을 가상으로 보고 이대아를 진짜라고 보면서 이원론적 사고를 펼쳤는데 이런 전통에서는 직관적 개념보다는 가설을 세운 후 연역적인 추론을 통해 얻는 개념이 더 중요했죠 따라서 동양철학은 구체적인 현실 속 사항에 집중하면서 그 속에서 내가 집권하여 안 것들에 대해 주목하는 철학적 성격으로 발전을 했고
서양 철학은 현실보다는 이 현실의 작동 원리가 그 배후에 있을 거라고 전제하는 그 전제 속에서 초연적 사고를 통해 명료한 지식을 추구하는 철학으로 발전을 했다는 것이니 이것이 풍우란의 동서양 철학의 차이점에 대한 비교 분석론인 것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노자가 말하는 도와 같은 개념은 현실 속 직관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성격의 개념이지 않냐 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노자 통행본 4장에서 오부지 수지자 즉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자식인지 모른다라고 함으로써 세상 만물의 기초가 되는 이 도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연원했는지 일절 모른다고 선을 그어버리고 있죠 따라서 추상적 원리를 실체화해서 철학적 주제로 다루고 있는 플라톤식 서양 철학과는 달리 노자가 말하는 돈은 인간이 이 세계 속에서 관찰할 때 파악 가능한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동양철학은 현실 속 직관의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앞서 만난 풍무란의 분속론은 지리 문화적 차이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므로 그에 따른 사고 방식도 다르게 펼쳐졌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리문화적 차이 속에는 또 하나 거대한 차이가 놓여져 있으니 바로 그것이 언어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철학과 달리 현대 철학에서는 특히 언어에 대해 강하게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언어란 인간의 생각을 담은 틀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생각을 일으키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근원적 요소이기도 하답니다.
예를 들어서 추상적인 사고를 하려면 그와 관련된 단어들을 알고 있어야 이를 활용해서 그 사고를 펼칠 수가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우리에게도 초상 사고의 대표격이 되는 그런 개념어가 하나 있죠.
바로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서양철학에서 핵심이 되는 존재론의 단어인 것이기도 한데
이것이 우리의 동양 문화권에서는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1871년 제작된 후추와지텐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지속적으로 있다는 뜻의 존과 있음을 뜻하는 제자를 합성하여 만든 그 당시 일본의 신조어였어요.
즉 이 말은 서양과 달리 동양에는 존재론이 따로 없었다 라는 동양의 실종을 말해주는 것인데 본이 존재론이란 있음의 근원에 대해 물으며 있음과 없음의 문제에 대해 천착하여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플라톤의 대화편 소피스테스를 보면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말을 인용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만날 수 있습니다.
있지 않은 것이 있다는 이것이 결코 입증되지 않게 하라 그러니까 서양철학에서는 있음과 없음에 대한 문제를 이와 같이 연구하면서 그 답을 찾고자 노력해 온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동양에서는 이런 문제로 깊게 고민한 전통이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근데 후기에 일본이 서양 철학을 접했을 때 그 내용을 어색해 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고 관련 어휘들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존재라고 하는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없었던 말을 비롯해서 객관 주관 등등의 새로운 어휘들을 그 당시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렇게 태어난 신조어들을 수용해서 일상에서 쓰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미 동서문화의 융합 상태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즉 우리 동양 전통의 사고보다는 동서양적 교류에 따른 사고에 지금 우리가 더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렇게 우리가 쓰는 언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 얘기를 한 김에 동서 철학 차이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얘기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보도록 하죠.
보지 서구권에서는 있음과 이다라는 뜻이 같이 들어있는 비동사와 같은 어휘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동양권에서는 이런 어휘가 없고요 이 둘을 분류해서 표현합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이 표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가 있죠.
그런데 이게 뭐가 그리 중요한 얘기인가 하면 바로 이 두 언어적 전통의 차이가 서로 다른 철학적 전통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 얘기에 주목을 하는 것인데 이제부터는 제가 아주 쉽게 이 내용을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령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죠.
이때 나는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있는 게 아니라 무엇으로 있죠.
가령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학생이다라고 할 수 있고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면 나는 직장인이다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이때 이다라고 하는 것은 있음을 서술 즉 설명해주는 부분이고 있음은 있다라는 뜻을 가지는 부분입니다.
여기까지 잘 이해하셨죠. 그런데 여기서 이 스메 저 자리에 존재가 없다고 한번 해보죠 그러면 아무것도 없으므로 이다라고 서술할 내용도 없게 되는 거죠.
따라서 동물이다. 사람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다.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이다.
등등 수많은 설명들 이 모든 것들은 있음에 기초해야 한다는 이렇게 되면 있음이 궁극적 실제 또는 본질이 되며 이단은 저 본질의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따라서 서양의 철학은 존재론이라고 해서 이다의 영역 배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 본질에 주목을 했고 저것을 파악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는 거죠.
이런 점에서 서양철학은 본질주의를 추구한 철학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양의 철학은 애초에 이더와 있음을 저렇게 본질과 현상으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으로 살고 있는 이 세계를 그 자체로 수용을 했지 굳이 이 세계의 배후에 이음이라는 궁극적 실제의 영역이 있을 거라고 추론하지 않았다는 거죠.
자 이렇게 동양철학은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지 않지만 서양철학은 이 둘을 구분한 후 현상 배후에 본질이 있을 거라고 추론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서양 철학은 이런 전통 속에서 본질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해왔는데 본시 본질이란 남과 구분 지어주는 나만의 고유한 성질이자 그 성질이 없으면 그 존재도 더는 그 존재가 아니게 되는 것을 뜻하죠.
그래서 서양철학은 다른 것과 구분되는 본질을 추구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할 때도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만이 가지는 고요한 본질을 찾았고 이것을 이성이라고 규정을 하는 그런 전통을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이성을 가진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의 관계로부터 구분되며 독자적이고 객관적인 존재로 규정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과 분리된 이 자연은 인간이 탐구하고 연구할 객관적 대상이지 도덕적 존재로 여길 필요는 없었던 것이며 따라서 수리적 사고에 따라 발전한 과학적 분석력을 동원해가지고 자연을 연구하여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적극 활용해왔다는 거죠.
하지만 동양철학은 이달을 통해 있음을 추론하는 본질주의적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주어진 이 세계 속에서 나와 세계의 관계 문제에 집중을 했고 이 둘을 분리한 채 세계 또는 자연을 객관적 대상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던 겁니다.
가령 천인감응설이라고 해서 하늘과 인간이 서로 감흥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었고 태일 생수에서는 하늘과 땅이 서로를 돕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러한 동양 철학에서는 인간과 구분되는 객관적 자연관 대신에 인간처럼 자연도 도덕적인 것으로 보면서 그 자연 안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주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은 자연을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보면서 눈부신 물질적 발전을 이뤘지만 그 대신에 자연 파괴의 오점을 남겼고 동양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도덕적 관계를 고려하느라 자연 파괴와 같은 오점은 남기지 않았지만 그 대신에 과학적 문명은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
이런 차이가 이다를 현상이라고 보고 있음을 그 본질로 보는 서양의 언어와 이다와 있음을 그러한 관계로 보지 않았던 동양의 언어 이 둘 사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니 하이데거는 이런 이유로 일본인을 상대로 자인 동사도 없는 일본의 언어로 어떻게 존재론을 연구할 수 있느냐 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양철학과 동양 철학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프라이 말한 인식론적인 문제 그리고 언어와 계열부된 존재론적 문제 등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철학적 전통은 객관적 분석 및 주관적 직관이라고 하는 서로 다른 두 성질로 발전해 왔다는 것인데 관계로부터 벗어난 독자적 본질로서의 인간을 추구한 서양철학이 과학 문명을 발전시키는 대신 고립된 개인 나와 무관한 세계 또는 환경이라는 문제를 발생시켰다면
당신과 나라고 하는 관계 구조 속에서의 인간을 바라보았던 동양철학은 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못한 채 도덕적 주관의 세계로만 바라봄으로써 과학 문명의 길은 걸을 수가 없었다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과 자연 세계와 나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탐구할 때 동양철학을 참고하면 좋고요 객관적 분석에 따른 논리적 지식을 수립해야 할 그런 영역에서는 서양철학의 지적 전통 속에서 태어난 자료들을 참고하면 좋다는 겁니다.
가령 논어에 보면 사람의 길을 넓히는 것이지 길이 사람을 넓힐 수 있는 게 아니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러한 내용을 사변 철학이 아니라고 해서 해일처럼 폄하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의미를 충분히 음미하면서 구체적인 나의 삶에 그 상황 속에 적용하여 그 나름의 통찰력을 얻도록 시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살면서 논리적 분석에 힘이 필요할 때는 플라톤의 소피스테스와 같은 그런 책들을 읽으면 분류하고 나누고 나눈 걸 또 분석하는 그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우리의 논리적 지적 사고력을 끌어올려줄 수 있으니 그때 또 이런 걸 참고하면 된다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편견 없이 서양과 동양의 철학을 골고루 공부할 줄 알아야겠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현대철학으로 내려오면서 아 이제 니체를 시작으로 해가지고 플라토닌이 펼쳐졌던 서양의 본질주의적 색체는 약해지기 시작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이제 그 본질주의를 전제하지 않았던 동양철학이 현대 서양철학에서는 주목받는 이 과제 상황이 되었고 이렇게 해서 서로의 교류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이 점을 잘 알아두시기 바라고 나는 서양 철학만 최고로 치지 동양철학은 수준이 낮아서 안 본다 또는 서양철학은 형의 사학적 폭력이 너무 심해가지고 문제가 많은 철학이야 그러니까 우리 동양철학이 최고니까 이것만 봐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현대철학적 사고 방식과 흐름과 경향에서 뒤처지는 사고 방식이라는 것
알아두셔야겠다는 거 꼭 제가 강조해 드리니까요.
잘 참고하셔서 철학 공부를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서양과 동양의 철학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드립니다. 인식론 존재론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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