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과격해 보이는 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승과 제자를 가리지 않고 고함을 지르거나 몽둥이로 후려쳤죠.
언행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장군이라는 별명도 붙게 되었죠.
다음은 그가 남긴 어록 중 가장 유명한 것입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만나는 모든 것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할 것이다.
그는 대체 무엇을 깨우쳤길래 이런 말을 했을까요.
알 듯 모를 듯한 행동들로 가득한 그는 훗날 한국과 일본 불교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는 바로 임재입니다. 임재는 당나라 시대의 승려입니다.
의현이라고도 합니다. 대략 820년 정도부터 8060 97년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중국 불교인 선종을 이어온 인물입니다.
선종은 앞서 혜능이라는 인물로 크게 번성하게
혜능 이후 선종은 다섯 가지로 나뉩니다.
그중 하나가 임재종이고 임재종은 임재가 창시자죠 임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임재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주변 선승들의 대화 방식은 특이했기 때문이죠.
고함치고 후려치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이들은 애써 말로 설명해 지식을 쌓기보다 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다그치는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인제는 자유로움을 중시했기 때문에 상식을 넘나드는 일화들이 많죠.
이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임재는 어려서부터 불교의 흥미가 있었습니다.
출가한 그는 여러 고승을 찾아다니며 공부했죠.
어느 날 황벽 스님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임재는 그곳에서 3년 동안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이때까진 황벽과 만나지 않았죠. 이를 지켜보던 수자 스님이 임재에게 말했습니다.
황벽을 찾아가 불법의 큰 뜻을 구해보라고 말이죠.
임제는 황벽을 찾아갔습니다. 불법의 큰 뜻을 물어보려고 했죠.
그런데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황벽에게 몽둥이로 20대를 두들겨 맞게 됩니다.
임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뒤
다시 황벽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또 20대를 두들겨 맞았습니다.
세 번째로 또 찾아갔지만
다시 20대를 맞았죠.
총 60대를 맞은 임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두들겨 맞기만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황벽과는 인연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떠날 생각으로 황벽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러자 황벽은 떠날 거라면 자기 친구인 대우 스님에게 가보라고 합니다.
임재는 데우스님에게로 갔습니다.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불법을 구하기 위해 세 번이나 황벽 스님을 찾아 배웠지만 매번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데우 스님이 말했습니다. 황벽이 그대를 위해 이토록 애썼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잘못을 생각하고 있느냐 이 말을 들은 임재는 크게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황벽의 불법은 간단한 것이었군요.
그러자 대우가 임재의 멱살을 잡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황벽 스님의 불법이 간단하다고 뭘 알았는지 빨리 말해보거라 어서 그러자 임재는 주먹으로 대우의 옆구리를 세 번 쳤습니다.
대우는 임재를 밀쳐내면서 말했습니다.
너의 스승은 황벽이다. 내 알 바 아니다.
임제는 대우에게 작별 인사하고 다시 황벽에게 돌아갔습니다.
임재와 황벽은 다시 만났습니다. 황벽은 돌아온 임재에게 야단칩니다.
자꾸 왔다 갔다 하면서 언제 공부하겠냐고 말이죠.
임재는 은혜를 갚기 위해 돌아왔고
대우와 있었던 일로 크게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황벽은 대우를 불러서 한 방 때려줘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임재가 말했습니다. 뭘 기다립니까 지금 한 방 맞으십시오 하고선 손으로 황벽의 뺨을 때립니다.
임재에게 맞은 황벽이 말했습니다. 이 미친 놈이 호랑이 수염을 건드리는구나 그러자 임재는 바로 고함을 지릅니다.
황벽은 옆에 있던 시자에게 말했습니다.
이 미친 놈을 선방으로 데리고 가라 그는 임재가 깨달은 것을 인정했죠.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스님들은 임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호랑이 수염을 만졌을 뿐만 아니라 꼬리도 잡을 줄 알았네 이후로도 임제는 황벽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들은 알았겠지만 지금 우리는 이해하기 쉽지 않죠.
임재는 황벽을 떠나기로 합니다. 황벽이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보니 임재가 말했습니다.
하남 아니면 화북으로 가겠지요. 그러자 황벽이 곧바로 몽둥이로 후려
그런데 임제는 황벽을 저지하면서 오히려 황벽의 뺨을 때립니다.
황벽은 크게 웃으면서 시자에게 말했습니다.
근 스님이 물려준 주장자를 가져오너라 황벽은 임재에게 전해 내려온 물건을 넘겨주려고 했죠.
후계로 인정한 셈입니다. 하지만 임재는 말했습니다 시자야 그것들을 불질러 버려라 임재에게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 없었죠.
황벽은 임재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긴 한데 그냥 가져가거라 그것이 사람들의 입을 맞게 할 것이다.
그리고 임재는 황벽을 떠났습니다. 이후로 그는 임재종을 세우게 되죠.
임재의 특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함이었죠. 임재는 고함으로 유명했습니다.
어떤 스님이 임재에게 물었습니다. 불교의 큰 뜻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임재는 악하고 고함을 칩니다.
그 스님은 임재에게 절을 했죠. 임재는 말했습니다.
이 스님과는 이야기를 나눌 만하구나 이번에는 임재가 어떤 스님에게 묻습니다.
어디에서 옵니까 그 스님은 악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임재는 곧바로 절을 하며 자기 자리를 권했습니다.
그 스님이 망설이던 찰나 임재는 곧바로 후려쳤습니다.
임재는 많은 스님들을 만났습니다. 그중에서도 보화 스님과의 만남은 특별합니다.
보화는 임재보다 더 이 진정 거침이 없는 인물이었죠.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밝음이 오면 밝음을 때리고 어둠이 오면 어둠을 때린다 하루는 임재와 보아가 공양을 받아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임재가 보아에게 묻습니다. 털 하나가 바다를 삼키고 겨자씨 하나에 큰 산이 있다네
이것은 신통한 작용일까 아니면 근본일까 크고 작음이 없는 무분별에 관한 물음이었죠.
그러자 보하는 밥상을 엎어버립니다. 임재는 말했습니다.
너무 거칠구나 보화가 대답했습니다. 여기에 거칠고 미세한 게 대체 어디에 있는가 다음 날 식사에도 임재가 묻습니다.
어제 식사에 비해 오늘은 어떤가 보화는 또다시 밥상을 엎어버립니다.
임재가 말했습니다. 울기는 하지만 너무
그러자 보하가 말했습니다. 이 눈 먼 사람아 불법에 무슨 거칠고 미세함이 있겠는가 임재는 감탄했습니다.
임재는 보아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둘은 평생을 함께하게 되죠. 임재는 열반에 들기 전 자리에 앉아 말했습니다.
내가 죽고 난 후 나의 정법 안장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자 제자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감히 누가 없앨 수 있겠습니까 임재는 말했습니다.
나중에 누가 너한테 법을 묻는다면 어떻게 말해주겠느냐 제자는 악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임재는 말했습니다. 내 정법안장이 이 눈먼 당나귀한테서 없어질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말하고선 임재는 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 제자는 임재가 남긴 말과 행동을 기록했습니다.
임재록은 선승들의 어록 중에서도 유명합니다.
난해한 선사상의 가르침을 정리했다는 특징도 있죠.
이제 임재가 추구한 사상은 어떤 것인지 쉽고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임재에게 불교는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자는 일상 자체가 불교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불교는 이미 불교가 아닌 것이죠.
불교의 큰 뜻을 구하겠다고 난리치는 이들에게 임재는 어김없이 고함을 내뱉습니다.
다른 곳에서 불교를 찾으려는 집착 자체를 버리게 하기 위해서죠.
고함을 들은 사람은 깜짝 놀랍니다. 망상 같은 허튼 생각에서 깨어나게 되죠.
물론 다양한 의미로도 할이 사용됩니다.
임재에게 고함 할은 상징적입니다.
임재의 사상을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자유 참사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자유입니다.
어딘가에 얽매여 있으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한 자는 여전히 불법에 마음을 두어 전전긍긍하죠.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깨달은 자는 결코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임재는 수행자들에게 벼락 같은 사자후를 내뱉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다른 사람들의 속지 말라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만나는 대로 다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며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래야 비로소 해탈할 것이며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간단하게 살불살조라고 합니다. 유명한 말이죠.
죽인다는 말이 다소 과격해 보이지만
사실 내가 만들어낸 망상들을 죽이란 말입니다.
망상에 갇혀 있지 말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라고 합니다.
내가 생각한 부처나 조사에 얽매여 있는 것이 집착입니다.
좋다고 생각한 것들에 집착하면 결국 괴로움만 생길 뿐이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최고 자유 상태를 말합니다.
자유는 주인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임재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라고 말합니다.
어디를 가든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거기가 참된 자리라고 합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고 합니다. 타인에게 휘둘리거나 끌려다니면
주인이 아닙니다. 책임을 피해 도망가는 것도 주인이 아닙니다.
오롯이 당당하게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참된 자리이며 주인이라고 할 수 있죠 다음 키워드로 참사람입니다.
아무런 차별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무의진인이라고 합니다.
임재가 말하는 궁극적 인간상이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붉은 몸뚱이에 한 사람의 무의진인이 있다.
항상 얼굴을 통해서 출입한다 아직 못 본 사람은 잘 살펴보아라 어떤 스님이 나타나 물었습니다.
어떤 게 무의진인입니까 그러자 임재가 스님의 멱살을 움켜잡고 말했습니다.
말해 보라 말해 봐 그 스님이 머뭇거리며 입을 떼려고 할 때 임재가 밀치며 말했습니다.
무위 진인이라니 이 무슨 똥막대기인가 이렇게 말하고 임재는 방장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무위 진인이란 차별 없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죠.
또 무의 진이는 마치 똥 막대기와도 같다고 표현합니다.
차별 없는 참사람은 귀하거나 하찬함의 구별 자체가 없습니다.
따라서 참사람이나 부처는 똥 막대기와 다를 게 없습니다.
다르다고 생각하면 구별 짓고 있는 것이죠.
구별 짓게 되면 부처 같은 존재에 집착하게 됩니다.
집착은 곧 괴로움이죠. 부처든 무의진인이든 어딘가에 매달리지 말고 스스로 내 안에 무분별한 참사람을 발견하라는 뜻입니다.
당나라 때 불교는 크게 번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몇 번의 불교 탄압으로 많은 불교 종파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선정은 오랫동안 살아남았습니다.
불상 경전 사찰에 의지하지 않았으며 노동을 중시했던 특징도 있었기 때문이었죠.
선종의 사상은 유교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아무리 불교를 싫어하는 유학자라도 선종의 영향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죠.
불교의 철학적 깊이는 상당했고 이후 동아시아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