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우리 땅인 증거가 뭐죠 하나 독도를 기록한 문헌 자료와
일본의 억지 주장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 실록 중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우산 무릉의 두 섬은 현의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원래 우산국이었어 우산국이었는데 십일 세기의 여진족이 쳐들어오면서 우상국의 존재는 사실상 사라지고 오케이 이제 빈 섬이 되면서 그때부터 울릉도 울릉도 혹은 무릉도라고 불렸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여기는 지금 울릉도라고 기억하시면 돼요
조선시대에 울릉도 울릉도 울릉도 그리고 독도를 그때는 뭐라고 불렸냐
우산도라고 불렀어
우산도
일본이 대놓고 찾는 거예요. 우리나라 옛 역사 자료를 일제 강점기 때부터 그랬잖아요.
이번 열심히 공부를 해요. 조금이라도 시비걸 거 하나 이렇게 찾아가지고 그러다 찾았어요.
뭐예요. 찾은 게 세종 대에 쓰여지긴 했는데 중종 때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지리서에
포함된 지도가 있어요. 그럼 여기 이제 울릉도가 있잖아요.
근데 우산도가 독도잖아요. 네 근데 우산이라는 이름으로 독도가 어디에 그려져 있냐면 여기에 그려져
일본은 우산도의 위치를 지적하며 독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는데요.
후기에 수많은 실학자와 관리들이 이미 인지를 한 거예요.
실학자니까 그래서 이 이후에 나온 지도들에는 어떻게 됐어요.
전부 다 우산도가 다 여기
18세기 중반 지리학자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대지도
18세기 후반 정조 시기에 만들어진 아국총도 19세기 중반 해저전도 등에는
모두 우산도의 위치가 올바르게 표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우리가 제시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친목
침묵
반박도 안 하고
그러니까 이제 일본이 이제 고심을 합니다.
일본은 울릉도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죽도를 우산도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과는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여긴 뭐라고 그러냐면 맑은 말 맑은 말 우산도가 보인다고 했어요.
그럼 단서를 붙일 필요가 없지 문을 흐리죠 네 흐리 도가 안 보여요 보이죠.
저건 우산도가 아니에요. 저건 선도가 아니지 지금 독도 보여요 안 보여요 안 보이죠.
왜 흐리니까 흐리니까 그래서 2008년부터 9년까지 1년 동안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실험을 합니다.
일 년간
날씨를 계속 이루고 있는
계속 날씨 좋을 때까지는 일 년을 그렇게 지나 씨가 그리거나 말거나 어쩌거나 드라마나 계속 본 거야 그래서 데이터베이스를 냈는데 한 달에 딱 3일씩만 보이들의 독도가 여기서 진짜 맑은 날만 맑은 날만
둘 고종의 울릉도 개척령과 칭령 제41호 울릉도와 독도에서 불법 어업을 계속하는 일본 어보를 막기 위해 고종은 1882년 울릉도에 검찰사 이규원을 파견합니다.
고종이 이제 이규현이라는 검찰사를 파견한 이유는 뭐냐면 이 땅을 개척할 수 있을까 제 세환 정책을 여기서 종식시키고 오히려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울릉도하고 독도를 개척할 수 있다면 일본인들의 침입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파견을 한 것이죠.
그래서 이 일지 보고서를 봤고 그래 한 번 해보자 그래서 다음 해인 천팔백팔십삼 년에
16가구 오십사 명이 울릉도로 이제 떠나게 되죠.
개척하기 위해서
울릉도 개척에도 불구 일본의 불법 침입이 계속되자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이와 관련해 황제의 명인 칙령 제41호를 반포합니다.
구역으로 선포 독도의 영유권이 대한제국에 있음을 알렸다.
아 대단하다 신령 41호의 내용은 뭐냐면 울릉도를 군으로 습격을
주변에 있는 섬들을 부석 도서로 확인 반포 하실 때 거기에 뭐라고 돼 있냐면 울릉도 당시 이제 울도라고도 표현합니다.
울도 울릉도와 죽도 그리고 석도를 우리 땅으로 반포하는 거예요.
여기서 석도는 독도를 의미하는데 일본은 이 부분을 꼬투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석도는 석도가 뭐냐면 이제 돌섬이라는 거죠.
돌섬도야 근데 어제 우리 다리 저편에 관음도 봤죠.
네 그게 돌섬이었나요. 아니 아니요.
제가 소나무 얘기도 했잖아요. 온통 소나무로 가득한데 그게 왜 돌섬이냐 이거예요.
돌섬이는 나무 어떻게 잡아요. 말이 안 되죠 근데 우리가 잠시 뒤에 가보겠지만
독도가 완전 도위섬 맞아요. 다위섬이에요.
근데 왜 그럼 여기 속도란 말이 나왔을까 그 전라남도에 가면 저기 거문도라는 섬이 있거든요.
거문도에 있는 어부들이 남해안을 건너서 이렇게 돌아가지고 울릉도까지 굉장히 많은 어떤 그 이동을 해가면서 수산업에 종사를 했거든요.
전라도 사투리로 돌이 독이에요. 아주 돌섬이네 거식이죠.
돌 섬 독도요 이렇게 되는 거죠. 돌 도니까 독도서 독도가 되는 거야 그래서 독도다
그래서 실제로 그 조선어 사전 천구백삼십팔 년에 최초로 발행된 조선어 사전에 그 십만 개 정도의 우리말 어휘가 있는데 독은 돌의 사투리다 그래서 돌다리도 독다리라고 한 적이 있다.
예 뭐 그런 용례들이 나오면서 어 이거 뭐 빼박 그걸 다 설명을 해놨습니다.
셋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스케핀 문서 육백칠십칠호 샌프란스코 강화조약은 1구백오십일 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국과 일본이 맺은 조약입니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이렇게 써있어요.
독도가 안 써있다니 안 써있는 거예요.
일본은 어
말도 안 되는 얘기 하고 있어요.
근데 이제 우리 입장은 울릉도 안에 부속도 그럼 일일이 이 섬들 다 써요 그렇죠 울릉도 44개랑 여기는 독도 89개를 다 쓸 수는 없잖아 써야죠 그렇죠 그러니까 여기는 울릉도와 여기는 주변 섬으로 우리는 해석을 하는 거고 미국이 일본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이제 맺는 걸 알고 그래서 우리가 서한을 보냈어요.
뭐라고 서한을 보냈냐 미국에다가 미국에다가 우리 보낸 게 있구나 일본이 포기해야 될 영토에
독도를 포함시켜 달라고 우리가 요구를 했어요.
독도가 빠져있는 걸 알고 그가 독도를 포함시켜야지 이거 나중에 문제 된다 그렇죠 우리가 이미 알았던 거예요.
그거를 상견지명이 주정 그렇죠 그런데 그런데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복
러스크라는 사람이 답신을 보내요 러스크가 뭐라고 왔냐면 왔는데요.
아 독도는 다케시마 혹은 리앙쿠르 바위로 알려진 섬에 관해서 말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일단 독도라는 표현은 아시죠 리앙크로 데시마 이렇게 알려진 섬에 대해서 답을 하자면 로묘한 것 같아요.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결코 없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자기네 정보니까 그렇지
천구백오 년 경부터 일본의 시마네현 오키섬 지청의 관할이 아니었느냐 일제의 조선이 영유권을 주장했다고 볼 수 없다.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이라고 했지만 시마네용 오키섬 지청 관할이라고 하는 거 보면 그 정보가 어디서 왔겠냐고 그렇죠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죠.
태도가 바뀐 거니까
한국 이후에 연합군 문서 스케핀 문서 육백칠십칠 호 조항에 보면 확실히 울릉도 독도까지 다 명시가 돼 있어요.
독도가 서있으니까 독도가 써 있어 오케이 스핀 문서에 스케 문서 이 스케핀 문서에는 일본으로부터 우리 이 한반도가 완전히 분리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각서의 목적을 위해 일본은 일본의 네 개 본도 훗카이도 제일 위에 있는 큰 섬이죠.
혼슈 본섬 큐슈 시코쿠와 약 일천 개의 더 작은 인적 섬들로 구성된다 라고 스케핑 문서에 명시를 했어요.
네 근데 이제 일본 입장에서는 그 일천여 개의 작은 섬 중에 독도가 있었으면 하겠죠.
지금 입장
그래서 그때는 별 생각 없었겠지만 근데 일천 개의 작은 인접 섬들에서 제외되는 것은 울릉도와 독도 점점점 들이다라고 독도가 일본 섬이 아니라는 걸 연합군 스케피 문서에서 명시를 한
이렇게 자세하게 나
맞아요. 끝을 그어준 거죠. 그렇지
스케핀 문서에는 어 독도라는 말이 명시돼 있는데 어 왜 여기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에게는 누락이 됐을까 이때 대한민국은 이 전쟁 전쟁 후에 그 힘이 없었다는 거죠.